지울 수 없는 이미지 - 8.15해방에서 한국전쟁 종전까지
박도 옮김,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NARA) 사진 / 눈빛 / 2004년 6월
평점 :
품절


며칠 전에 한국 전쟁 56주년이 지났다.  내게 있어 6월 25일 당일은, '아, 오늘이 6.25구나...'라고 한마디 하고 지나간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무감각해졌다고 해서 우리가 전혀 무관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잠재적으로 의식하려고 한다.  그래서, 한장의 사진만으로도 울컥할 수 있는 나는,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분단된 조국에서 살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이다.

이 책은, 사진첩이다.  구구절절한 설명은 별로 나오지도 않는다.  다만 앞에 들어가는 말로 한국전쟁에 대한 설명이 나오고, 뒤에 이 책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과정이 덧붙여져 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사진으로 말한다.  그런데, 하나의 사진만으로도 한장 두장 설명하는 것보다 더 가슴을 후벼파며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던 이 사진들이 얘기하고 있다.

앞에 박태균씨가 얘기한 것처럼, 한국전쟁을 얘기할 때, 단순히 '누가 먼저 총을 쏘았는가'의 문제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1년 동안의 전투, 2년 간의 휴전 협정... 왜 그렇게 오래 걸린 것인가... 거기에는 포로문제가 걸려 있었다.  제네바 협정에 의하면 전쟁이 끝나면 전쟁 포로는 마땅히 본국으로 송환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못했다.  마지 치금의 이라크 포로들처럼... 더군다나 전쟁 당사자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토록 죄없는 수많은 피를 뿌렸음에도... 마치,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들처럼....

전쟁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남과 북의 정권은 책임을 지기는커녕 전쟁 전보다 더 안정된 시스템을 구축하고 독재자로 군림하였다.  반대파를 제거하는 일은 너무도 간단했다. "빨치산" "부역자" 이런 단어만 등장하면 이유를 묻지 못하고 죽어야 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침묵을 배워야 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지만, 생존을 위한 본능이 그들이 입다물 수밖 없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우리의 전쟁사 책들을 보면 어떤 전투에서 어떻게 싸웠는가, 몇 명이 죽었는가... 라는 수치만 나온다.  마치 무생물을 다루듯이... 그 시절, 군인들보다 더 많이 죽임당한 사람들, 민간인들의 이야기는 애써 외면한다.  여전히 고통 당하고 있는 그들의 상처는 끝을 모르고 외면당하고 있다.  지금도 태연히 살아 숨쉬며 강력히 기능하는 국가보안법처럼...

더 이상 북한 사람들이 도깨비라는 단체 주문이나 세뇌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넘어야 할 산이 깊고 높다.  결코 피할 수 없다.  우리가 끝내 끌어안아야 할 우리 역사이며 상처이니까...

이 책의 시작은 1945년부터 출발한다.  일본천황의 항복문서 조인 사진부터...

그 다음은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올라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역사에서, 빼앗긴 주인이 일본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것처럼...

두번째 장은 미군과 UN군이다.  일촉즉발의 38선을 가리켜 시를 읊을 만큼 조용하다고 말했던 덜레스의 사진이 등장한다.  설명은 짧다.  그가 떠난 지 사흘 뒤에 전쟁이 발발했다고(ㅡㅡ;;;)

국방군과 인민군... 대체로, 군인들은 키가 작았다.  그건 그들의 발육상태가 단순히 좋지 않다는 의미이기보다 그들이 그만큼 어리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상적이었다면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어야 할 학생나이일 텐데, 그들은 동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군인의 모습으로 찍혀 있었다.

당시 난무했던 벽보들도 보인다.  기억을 짚어 보면, 초등학교 시절 학교 가제로 반공 포스터, 반공 글짓기... 이런 것을 해마다 했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면서 사라졌다.  정권이 바뀌고 세상이 바뀌는 것처럼 보였다. 단지... 보였을 뿐이다...;;;

이승만과 신성모 사진을 보는 순간 울컥!! 하고 피가 솟는 기분이었다.  열 받아서 다음장으로 빨리 넘겼다...ㆀ

전쟁 중임에도 평화롭게 보이는 어느 농촌 마을이 찍혀 있었다.  그 불협화음과도 같은 평화가, 언제 부서질 지 모를 그들의 안정이 서럽고 아파, 그래도 질긴 목숨 살아남은 생명줄이 안타깝고 기가 막혀 오래오래 가슴이 뭉클했다.

이어진 사진들은... 학살....

사형수를 처형하는 장면을 15장의 사진으로 연속해서 보여주었다.  몸을 묶고 목을 묶고, 일제히 사격한다.  목숨이 끊어졌는지 확인한다.  아직 숨이 붙어 있으면 지척에서 권총으로 확인사살을 한다.  이미 축 늘어진 시신을 끌어내 관에 담는데, 확인사살로 머리 반쪽이 날아간 시신이 적나라하게 피를 흘리고 있다.  오, 맙소사...

어디 전쟁 뿐이던가.  전쟁통에 발생한 피란민과 전쟁고아, 그들을 덮친 추위와 기아....

죽은 목숨도 가혹하고, 살아남은 목숨도 가여웠다.  그들의 경계는 모두 비참의 끝을 벗어나지 못한다.

포로들의 사진과, 전정회담과 휴전까지의 과정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는 한국 현대사 연표가 실려 있다.

사진을 보기 전에는... 한 장의 사진이 열마디 스무 마디의 설명보다 더 진솔하고 진실될 수 있다는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어쩐지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많이 아프다.

작가가 왜 이 책의 제목을 "지울 수 없는 이미지"라고 했는지 절실하게 공감했다.  그리고... 지워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힘으로, 우리의 의지로 이 분단의 책임을 마무리 짓고, 그 상처를 모두 치유하여 다시 만날 때까지는 결코 잊을 수 없으니까... 마땅히... 기억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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