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누의 집 이야기
이지누 지음, 류충렬 그림 / 삼인 / 200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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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책을 구매했는데, 이지누의 집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소책자가 같이 왔다. 책의 일부 내용이 실린 광고지였는데, 한 부분을 읽고는 덜컥 구매해 버렸다.  난 낚인 것일까...;;;;;

그러나, 낚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이 책에는 사진 대신 삽화가 실려 있는데, 저자의 취지에는 더 맞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의 전통 집... 그 안에 담긴 지혜와 생존의 몸부림, 그리고 추억까지... 자로 잰 듯 정확함이 아닌 얼핏 눈대중으로 맞추는 얼기설기 느낌이 꼭 이 책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

사실, 나는 작가 이지누가 추억하는 그런 한옥 집에 살아본 적이 없다.  어려서 시골 집에 가면 이 책에서 묘사하는 부엌과 대청과 마루와 우물, 구들장이 있었지만 그조차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양식 집으로 개조하면서 더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서울 사는 우리 집보다 시골 큰댁이 더 도시적인 집이었으니까.

그러니 그가 누린 골목 어귀의 놀이와 장난 등은 내게 생소하다.  전혀 못 들어본 바는 아니지만 대개 문학작품이나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다만 남달랐던 것은, 그 추억을 재생산해 내는 틀이 우리 전통의 '집'이라는 게 이 책의 특징이다.

사계절이 모두 나타나는 기후의 특징을 지닌 우리나라로서는 그 기후에 맞는 생존전략이 필요했고, 그 지혜가 총집합된 것이 바로 집이었다.  대문에서부터 가장 안쪽의 방까지 동선이 고려되지 않은 것이 없고, 채광이나 통풍도 모두 과학적인 구조를 갖추었다.  심지어 불편하게만 보이는 부엌의 계단과 대청에 오르는 댓돌 계단까지도 모두 최소한의 스트레칭을 시켜주는 건강 도우미였으니, 집이 곧 웰빙 그 자체였다.

담장과 대문에서 사람 사는 인심이 드러나고, 마당과 마루, 그리고 방까지 드나들 수 있는 행보에서 예의를 살필 수 있었고, 마을 공동의 우물과 냇가를 보존하려고 하는 의도에서 지어진 이야기꾸러미조차도 모두 인간적이기 그지 없다.

이지누는, 그러한 집의 이야기를 추억을 담아 사색적으로, 그리고 철학을 담아 인문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가 인용한 많은 책들에서 저자의 박학다식을 엿볼 수 있는데 감탄이 절로 나왈 지경이다.  더불어 선조들의 멋스러움과 지혜도 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흔한 자조지만, 너무 서양식을 좇아간 우리는 우리 고유의 멋을, 합리성을, 지혜를 많이 잃어버렸다.  지붕의 기울기조차도 자연과 그곳 생태에 맞게 융통성을 보인 우리 옛 지붕의 성실함을 현대의 콘크리트 건물은 따라잡지 못한다.  창이 갖고 있던 드나듦의 기능을 꽁꽁 막은 채 오로지 밖이 것이 새어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만 중요시한다.

집만 따져서 무엇할까. 바로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우리들이 아니던가. 우리 옛 것은 고루하고 답답한 것이라는 잘못된 편견은 또 어찌 고칠까 한숨도 나온다.  그러나 더 깊은 한숨을 자아내는 것은, 작가 이지누처럼 그 시절의 집에서 쌓은 추억이라고는 갖지 못한 나는, 상상만으로는 몰라도 그런 한옥에 들어가 살라고 하면 도리질 을 칠 것이라는 사실. 내가 알지 못한, 내게 쌓여있지 않은 추억에 대한 미련이 내게는 없다.  머리로는 전통을 생각하고 고유의 멋을 떠올리지만, 이미 익숙한 편리함을 버릴 마음이 내게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것에 대한 애착과 애정은 오로지 책볼 때만 나올 뿐, 나의 생활과 사고 구조는 여전히 서구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아마도, 살아가는 동안에도 크게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그저, 이런 책을 통해서만이라도 우리 전통의 흔적과 멋, 아름다움을 상상해볼 수만이라도 있다면 다행일 터...

하지만 친구의 작업실에서 가져온 마루에 애착을 갖는 이지누의 그림은 내게도 부러움을 자아내게 한다.  나도 그 마루 냄새를 좋아했으니까.   어릴 적 집 앞에서 고무줄 놀이하고 땅따먹기 하고 바깥 놀이를 나도 꽤 했었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학원가기 바쁘고 과제다 수행평가다 도통 뛰어놀 짬이 없다.  그래서인지 키는 부쑥 더 큰 아이들이지만 체력은 더 형편 없고, 양호실도 뻔질나게 드나든다.  나 자신도 지극히 도시 아이들에 속한 편이었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내가 가진 추억조차도 없을 것이니 나는 안타깝건만, 정작 그 맛을 모르는 아이들은 무엇을 아까워해야 할 지 알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지누의 집 이야기를 읽으며 브라보를 외칠 수 있는 세대가 지금의 내 세대에서 끝은 아닐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진맛'을 본 사람이라야 그 맛을 그리워하고 탐을 내지, 아닌 사람은 꿈조차 꾸지 않을 테니까.

마치, 내가 이 책에서 그려지는 그 아름답고 조화로운 집을 멋있다!라고만 감상하고 이지누처럼 그리워하지 않는 것처럼...

그래서, 좋은 책 잘 읽고 조금은 씁쓸해진다.  그래 봤자. 내일 새벽이면 대~한민국을 외치며 금세 잊을 테지만...(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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