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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 것이 없어라 : 김종서 평전 - 불우했던 완전주의자 김종서의 비장한 생애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지금도 품절로 기록되어 있지만 거의 절판 수준이 아닐까 싶다. 여러 서점을 알아보았지만 결국 책을 구할 수가 없어서 출판사로 문의 메일을 보냈다. 친절한 답변이 왔고, 창고 속에서 재고를 찾았다고, 깨끗하지는 않지만 원한다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참으로 오랜만에 온라인 입금을 통해서 책을 구매했다. 우려했던 것에 비해서 책 상태도 깨끗했다.
이 책은, 사실 나보다 내 지인이 더 읽고 싶어했다. 난 '평전'이라고 붙는 제목을 좋아하지 않아서 (어릴 때도 전기문은 엄청 지루해 했다.) 못 구하면 못 구하는 대로 넘어가려고 했건만, 너무 읽고 싶어하는 지인으로 인해 오히려 사명감을 갖고 구해본 케이스다.(재밌는 것은, 내가 읽고 빌려주었는데 나의 지인은 아직 못 읽고 있다....;;;;;)
김종서에 대해서 그다지 많이 알지 못했다. 세종 때 6진을 개척했다고, 교과서에 실린 짧은 기술이 내가 아는 전부와 그닥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책을 살펴 읽어 보니 좀 더 흥미롭다. 그는 문과에 급제한 인재였으며 무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대 제일의 성리학자였고 또한 역사가였다.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편찬의 주인공이 바로 김종서였던 것이다. 그에 대한 기록이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계유정난 때문이었다.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왕위를 빼앗아 세조가 된 그 순간부터, 그를 반대한 사람들의 운명은 모두 역사 앞에 사라져가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평전이므로 그 성격이 연구 대상의 일생의 궤적에 맞출 수밖에 없으므로 이 책도 그 룰을 따라가지만, 의외로 생각만큼 딱딱하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초심을 지키고 올곧은 한 길을 가는 사람의 이야기도 때로 이렇게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 점에서는 이야기의 서술을 드라마틱하게 완성하는 재주를 가진 이덕일씨의 힘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계유정난이 일어날 때에 첫번째 걸림돌로 김종서가 제거되는 장면은 몹시 괴로웠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아무 방비도 못한 채 그렇게 스러져 갔다는 사실에 화가 날 지경이었다. 한 사람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는, 단종이 얼마나 서럽게 죽어갔는 지가 증명한다. 세종은 문종에게 뒤를 맡겼고, 문종은 아들을 돌봐 줄 어머니도 할머니도 없는 상황에서 원신들에게 뒤를 부탁했다. 그 중심에 김종서가 있었건만, 그가 무너지자 단종은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
성공한 쿠데타에는 죄를 묻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러나 세조의 왕위 찬탈이 성공한 쿠데타라고 믿겨진 것은 충분히 미화된 업적일 뿐이다. 그의 자손이 대대로 왕위를 이어가고 권신들이 세도를 누리긴 했지만, 긴 조선의 역사에서 잘못 꿰었던 단추는 결국 무너져가는 조선의 이름으로 그 답을 가르쳐주었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세조를 김종서보다 훌륭한 인물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당대에는 증명하지 못했을지언정, 역사는 결국 도도한 흐름으로 누가 옳았고 누가 그른 사람이었는 지를 명백히 가르쳐 준다.
그렇기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그였음에도, 저자는 책 제목을 '거칠 것이 없어라'로 지을 수 있었다. 후회 한자락 없이 삶을 충실히 살아낸 사람. 그래서 후대인들에게 그 대쪽같은 기상을 아직도 전하고 있는 사람...
조선 선비들에게는 이런 멋진 정신이 있었는데, 조선의 선비, 유생, 양반을 떠올리면 유독 나쁜 이미지가 많이 겹쳐서, 그런 이미지의 정화작업에 이런 책이 도움이 되리라 본다. 물론, 영악하고 독한 수양대군을 보면 기분이 좀 상할 지두.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