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최후의 19일 1
김탁환 지음 / 푸른숲 / 199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김탁환씨 소설을 자주 찾아 읽기는 했는데, 재밌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았지만, 좀 실망스러웠던 적도 여러번이다.  이를 테면, 똑똑한 것도 알겠고, 많이 공부한 것도 알겠는데, 난 척하는 것은 그만했으면 하는 바람...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 있다.  그래서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도 전에 거부감이 일 때가 많다.  이 작품이 그런 편이었다.

작품의 시작은 허균이 자신의 정치 행보에 중요한 결심을 갖는 장면에서 시작되는데, 뜬금 없이 수년의 세월을 건너 뛰기 때문에 처음엔 어떻게 이어지는 지 이해가 잘 안갔다. 나중에야 알아차렸는데, 작품의 외형적 멋....대사처리.. 이런 것에 신경을 너무 많이 써서 오히려 작품의 이야기 구성에 덜 치밀해진 것으로 보인다.

대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유독 김탁환씨 소설에는 따옴표 없이 주인공의 과도한 독백(그것도 감정이 철철 넘쳐서 과잉된)이 많이 나오는데, 솔직히 이런 구성 너무 촌스럽게 느껴진다.ㅡ.ㅡ;;;;(그런데 역사소설에선 전부 그런 대목이 나왔다.....;;;;;;)  뭐, 작가 스타일이 그렇다는데 독자가 딴지 거는 게 우습지만, 그런 면에서 나랑 참 안 맞는다^^;;

그리고, 이건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 속(역사 소설을 이야기한다) 여자 인물들은 어째 남자의 부수물 정도로 표현되는 것 같아 불쾌한 면이 많다.  시대의 풍운아 허균은 부인 따로, 찾는 여자 따로, 좋아하는 여자 따로... 가지각색이다.  그러면서 우리의 영웅 허균은 호탕하고 기운(...;;;)도 넘쳐 열 여자도 문제 없다. (실제 허균이 그런 면이 다분했음을 인정한다.  다만 스타일의 문제인데, 이번엔 읽으면서 좀 역정이 난 편이라 심통 부리는 중...;;;)

어쩌면, 내가 광해군을 더 많이 좋아하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총기를 잃은, 초심을 잃은 사람으로 묘사된 광해군이 안타까워서 이리 말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마 그런 것을 기대했는가 보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였지만, 시대의 반역자로 낙인 찍혀 능지처참으로 다스려진, 조선시대 기피 인물이었던 그 허균의, 우리가 짐작하지 못한 남다른 내면이 궁금했었는데 두권에 걸친 이야기를 읽었음에도 특별함도 없는, 그의 고뇌에 그닥 동조할 수 없는 평범함에 기대를 배신 당한 느낌이 들었나 보다.

제목도 근사하고 표지도 멋진데, 내용은 지극히 평범한 별 셋 수준이다. 아마 내가 김탁환씨 글에 매긴 별점 중 가장 야박한 것 같다.  그의 조선 역사에 대한 끝없는 관심과 애정은 내게도 즐거운 일이고, 독자로서 늘 새 작품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뻔~한 줄거리 구성은 이제 사양하고 싶다.  자신을 한단계 뛰어넘는 작가 김탁환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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