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 - <가례도감의궤>로 본 왕실의 혼례문화
신병주 지음 / 효형출판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조선왕조실록은 물론이거니와 승정원 일기, 그밖의 이 책의 바탕이 된 의궤 등... 조선의 기록문화는 실로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 뚜렷하고 철저한 직업의식은 거의 장인의 경지가 아닐까 싶다. 

꽤 긴 제목의 이 책은 영조의 재혼(^^;;;) 과정을 준비부터 마치기까지를 적나라하게(?)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풀어써준 글이다.

제목만 보면 아주 따분하고 재미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재미있었다.  동저자의 다른 책들에 비해서 오히려 즐겁게 읽은 셈^^;;;

거기에는 그림들이 단단히 몫을 해낸 것 같다. 칼라로 실린 그림들은 실제 의궤에 담겨있는 그림들이어서 역사성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당시 화공들의 정교한 수작업에 감탄하며, 또 그 속에 담겨있는 '정치'도 같이 읽어내는 게 꽤 재밌는 작업이었다.

생각해 보면 수원 화성 행차에 나오는 그림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지만, 그림 한자락에도 유교적 정신와 의식이 드러나는 것 같아 몹시 기묘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를테면 지존하신 임금을 감히 그림 위에 묘사하지 않고 빈 말을 그려넣는 것 등등.

이 책이 단순히 영조의 결혼식 장면만 실었다면 그게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인데??? 하며 삐딱하게 보겠지만, 당시 영조가 살고 있던 조선의 정치적 문제, 사회적 대립, 문화적 특징 등이 잘 녹아 있고, 정순왕후 김씨가 왕비로 간택될 때의 에피소드 등이 적절히 잘 어우러져 대중적 재미도 잘 갖추고 있어 역사 공부를 즐겁게 한 셈이 되었다.

책이 가로가 좀 길어서 책장에 꽂으면 약간 삐져나오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이 역시 생각해 보면 그림 실리는 책치고 가로 폭이 작았던 책을 보지 못한 것 같다. (도면이 실려야 해서 어쩔 수 없는 부분인 듯)

그나저나 이건 다른 얘기지만, 15세 소녀의 나이로 66세 파파 할배에게 시집간 정순왕후는 과연 행복했을까. 평생 아이도 갖지 못했고, 영조가 오래 살기는 했지만 어쨌든 더 긴 시간을 홀로 살아남아야 했던 그녀다.  곱게 늙기라도 했다면 측은하기라도 했겠지만, 정치 투쟁에 뛰어든 그녀의 활약(?) 들은 솔직히 추악했고, 1801년 신유박해의 배경 속에 있는 그녀는 너무나 많은 피를 묻힌 까닭에 죽어 성불했을 것 같지도 않다.  세도정치 몇년에 순조가 친정을 하자마자 뒷방에 물러나 일년 만에 죽은 것은 권력의 단맛을 잃어버린 허탈감 때문은 아닌지...

잠시 얘기가 샜다. 아무튼, 별 다섯 만큼은 아니어도 넷은 충분히 줄 만큼 재미과 학습 효과를 두루 갖춘 책이다.

우리 학교 도서관에 이 책이 비치된 것은 나의 공로^^;;;; 내게는 필요한 부분만 발췌한 복사본만 남아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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