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속의 독백 나남신서 168
리영희 지음 / 나남출판 / 2002년 1월
평점 :
품절


리영희씨의 이름은 익히 들어왔지만, 그의 저작물을 직접 만나보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발견했는데, 앞서 그가 출간했던 유명한(^^;;;) 책들에 실린 소제목들과 그가 지금껏 써온 글들 중에서 비교적 소프트(?)한 글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읽게 되었다.

몹시 두꺼운 양장본인데, 주제별로 묶었기 때문에 시간 순서는 아니다.

처음 "자유인의 단상"은 읽는 데에 조금 시간이 걸린 편이지만 뒤로 갈수록 더 재밌었지고 관심이 생기고 감탄도 많이 하게 되었다.

누군가, 그가 앞서 출간한 책들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스핑크스의 코> <반세기의 신화> <자유인, 자유인>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등은, 당시에는 혁명적인 글이었지만 지금은 드러나고 밝혀진 것들이 많고 대중화된 정보가 많아서 그때만큼의 충격은 없다고 쓴 글을 보았는데, 나야 발췌본을 본 셈이지만, 독재정권 하에서 모든 정보가 가려지고 눈멀고 귀멀던 그 시절에 이런 글을 보았더라면 그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참담함을 어느 순간 알아보았을 때의 끔찍함 같은 것. 너무 무서웠을 것 같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공격을 위한 공격으로 짜깁기 편집에 희생되기. 무고하게 이어지는 옥살이, 해직. 그 과정에서 희생되는 가족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협하지 않고 올곧게 한 길을 걷는 지식인의 모습이라니, 어쩐지 너무 숭고해 보여서 눈물이 날 것도 같았다.  그렇지만 저자는 결코 잘난 척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참 잘난 사람인 것은 맞다...;;;;;) 늘 건조한 말투로 냉정하고, 또는 시니컬하게 글을 써나가는데, 그가 한 때 지식인으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노동으로 살아보려다가 참담하게 실패한 일화들은 몹시 인상적이었다.  인텔리로서 사는 것도 만만치 않구나. 물론, 노동자로 사는 것도 만만치 않구나. 자신의 주제 파악(?)을 하는 그의 솔직한 인정조차도 나는 존경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그가 취조를 받을 때 마르크스를 못 알아본 그 서울대 졸업생 검사의 황당해한 표정이란, 주눅들고 겁 먹고 위축되었던 그가 한순간 승리자의 표정을 짓는 모습이란, 으하하핫 웬만한 스릴러 영화 못지 않은 반전극이었다.  한참 웃다가, 친한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했는데, 그 언니도 마르크스를 몰랐다.. 헉....;;;; 그래도 이름은 들어보았을 텐데..ㅠ..ㅠ

난 사람 곁에 난 사람이 모이나 보다. 그의 제자들, 후배들,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 역시 이 사회에서 그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한홍구 교수님의 결혼 주례사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요즘의 결혼식 모습과 너무 비교되어서, 그 만남으로도 한홍구 교수님은 참 축복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한 시대를 민주화를 위해서 누군가는 몸으로, 또 누군가는 펜으로 투쟁을 하며 살았다는 게 고맙고 감동스럽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시절과는 참 다른 모습, 사실은 그들의 노력으로 일궈진 바탕들, 그렇지만 여전히 완성되어지지 않고 갈 길이 먼 우리 사회의 현주소. 평택이 그랬고, FTA가 그렇고, KTX여승무원들이 그렇고... 또 많은 우리들의 모습이 그렇고...

아직 갈 길이 먼 것처럼, 선생님 같은 분이 건강히 오래 사셔서 그 날카로운 펜을 계속해서 들어주셨으면 한다.  그 꼬장꼬장함과 결코 타협치 않을 대나무 같은 기개를 가진 이들이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그렇게 우리 사회가 더 아름답게 변화되어갔으면 한다.

아니, 저녁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감상적이 되어버렸을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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