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정제 이산의 책 17
미야자키 이치사다 지음, 차혜원 옮김 / 이산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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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는 이민족이 세운 왕조이지만 중국의 문화를 사랑하고 잘 이해한 황제들의 연이은 집권으로 가장 漢化한 왕조이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유명했던 초기 황제는 강희-옹정-건륭제로 이어지는데, 이 책은 그 중 상대적으로 각광을 가장 덜 받았던 황제 옹정제에 관한 기록이다.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철저한 고증을 거친 내용을 몹시 담담한 어조로 서술하는 것이 특징인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 역시 옹정제와 같은 근검 절약의 깐깐한 노인네가 아니었을까 상상했다.  이 책보다 앞서 읽은 "중국의 시험 지옥 과거"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옹정제의 치세는 13년으로 비교적 짧은 편이었다.  어렵게 황좌에 오른 것에 비하면 영광의 순간은 그렇게 긴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영광을 두루두루 즐긴 황제도 아니었다. 일벌레, 워커홀릭이었으니까.

황제가 국가의 전반적인 일을 모두 관장하는 체제... 으, 중국처럼 큰 나라를 환경설정해 두고 상상해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때문에 황제는 놀고 있을 틈이 없다. 아주 바쁘다. 일하다 일하다 지쳐 잠드는 게 일상일게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국사를 돌보는 모습은 그 아래 사람들이 피곤할 지 모르지만 인민에게 있어서는 축복일 수도 있다. 물론, 그냥 부지런한 것이 아니라 '독재자'이기도 하다는 점이 문제지만.

그러나, 전근대 사회에서의 황제 체제 하에서 '독재'란 피해갈 수 없는 환경이었다.  그러한 때에 열심히 일하고 깐깐하게 관리들을 평가하는 황제가 있다는 것은, 백성들이 만날 수 있는 것 중에서는 제법 큰 복일 것이다. 

황제께 올리는 보고서에는 빨간 줄이 그어지기 마련이고 불호령을 피할 수 없자, 관리들은 나중에 잔머리를 굴린다.  사소한 것에서 틀려서 관심사를 돌리고, 어려운 부분은 은근슬쩍 넘어가기. 으하핫, 관리들이 황제를 얼마나 어려워했을 지 생각해 보면 무척 재미있다.

고등학교 시절 국사샘이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세종은 무척 부지런한 임금이었다고. 그래서 모시는 내관도 승지도 모두 긴장 상태로 깨어 있어야 했고, 황희 정승은 집에 돌아가서 관복도 벗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고. 왕이 호출하면 벌떡 일어나 후다닥 밥 먹고 등청, 가마꾼도 일찍 일어나야 하고, 집안의 가솔들도 모두 일찍 일어나야 했다고. 그게 나라 전체로 이어져 온 국민이 부지런 떨며 살았더라고...

글쎄, 조금 과장이었을 지도 모르지만 아주 근거없는 소리는 아닌 것 같다.  중국으로 돌려보면 옹정제가 그런 성격이지 않았을까. 완벽주의. 그러나 다른 게 있다면 세종의 왕권은 옹정제의 황권에 비할 바가 못 되지..ㅡ.ㅡ;;;;

잠시 얘기가 새버렸다.

아무튼, 친한 지인이 이 책을 즐겁게 보았다고 소개해주어서 보게 되었는데 나도 만족스러웠다. 페이지도 금방 넘어가는 편이었고, 옹정제라고 하는 깐깐하고 혹은 소심하기도 했던 완벽주의자 황제를 만난 것도 반가웠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상사는 결코 만나고 싶지 않다. 피곤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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