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연, 몹시 상기된 표정으로 안경원 앞에 섰다. 얼굴 가득 행복감이 스멀스멀 피어난다. 반면,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빠 얼굴은 못마땅하기만 하다.
“좋냐? 안경 쓸 생각하니 날아오르겠어?”
“그럼요! 떴는지 안 떴는지 잘 구분되지 않는 저의 눈에 강렬한 포인트를 줄 수 있게 됐잖아요. 눈이 나빠져서 정~~말 좋아요. 개그맨 유재석 아저씨도 안경 하나로 메뚜기에서 훈남으로 급변신 하잖아요. 저도 거듭남의 기적을 맛보겠어요!”
“안경 쓰고 싶어서 보여도 안 보인 척하는 거면 아빠한테 아주 혼날 줄 알아. 뭐, 아빠가 안경을 쓰니 너도 근시일 가능성이 높긴 하지만.”
“근시도 유전인거죠?”
“유전의 영향이 있지. 물론 자라면서 받는 환경적인 영향이 더 크지만.”
“우리 반에 안경 쓴 애가 벌써 열 명도 넘거든요. 그래서 애들마다 근시는 유전이다 아니다,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면 근시가 된다,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눈이 나쁘다, 근시도 예방할 수 있다 아니다, 엄청 말이 많아요. 대체 뭐가 맞는 거예요?”
“일단, 근시가 무엇인지부터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리가 어떤 물체를 볼 때 그 상(像)이 망막 앞쪽에 맺히는 걸 근시라고 한단다. 그래서 먼 곳은 잘 보이지 않고 가까운 곳은 잘 보이지. 하지만 근시의 문제는 단지 앞이 잘 안 보이는 것만이 아니야. 여러 안과 질환의 원인이기도 하거든. 눈이 지나치게 부시거나, 눈앞에 이물질이 날아다니는 것 같이 보이는 망막이상, 또 물체가 안개 낀 것처럼 뿌옇게 보이는 백내장도 근시가 원인인 경우가 많단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WHO)는 근시를 질병으로 분류하고 있어. 그런데도 근시로 안경을 쓰고 싶냐?”
“흠, 좀 찝찝하긴 한데, 그래도 안경은 꼭 쓰고 싶어요.”
“아이고 못살아. 암튼, 아까 질문이 또 뭐였지? 그래,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면 근시가 되냐고 물었지? 아빠 생각엔 확실히 그런 것 같은데, 아쉽게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단다.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근거는 스마트폰이나 PC가 많이 보급된 유럽과 같은 선진국의 근시질환자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훨씬 많다는 거야. 또 앞으로도 이런 첨단기기가 점점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2050년에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이 안경을 쓸 거라는 주장이지. 현재는 28.3%인데 말이야. 반면에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는 20년간 4,500명이나 되는 어린이를 추적조사 했는데도 PC 화면을 보는 것과 근시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기도 했단다.”
“어쩐지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을 믿고 싶어져요. 그래야 눈 나빠지니까 컴퓨터 좀 그만하라는 어른들 잔소리를 덜 들을 테니까요. 그럼, 동양인이 서양인보다 눈이 나쁘다는 얘기는 맞아요?”
“그건 맞아. 동양인의 70~90% 정도가 근시 유병률을 보이는 반면, 유럽과 미국은 30~40%, 아프리카는 10~20% 정도의 유병률만 보이거든.차이가 엄청나게 크지. 그래서 우리나라나 일본, 중국 사람들이 안경을 많이 쓰는 거야.”
“와, 그 말이 진짜였구나. 그럼, 근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얘기는요? 이건 거짓말일 거 같아요.”
“아니, 예방은 확실히 가능하단다. 방법도 아주 간단해. 나가 놀면 되거든.”
“예에?! 그건 제 특기잖아요!”
“그래서 아빠는 네가 눈이 나빠졌다고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닐까 심각하게 의심하고 있어요. 2011년 미국 안과학회는 일주일에 외부활동을 한 시간씩 더 할 때마다 아이들이 근시에 걸릴 위험이 2%씩 감소한다고 발표했고, 2013년 대만에서는 외부활동이 많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2배 이상 근시발병률이 낮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단다. 이유는 신경전달물질 가운데 하나인 도파민 때문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야. 도파민은 햇빛이 많은 낮에 다량 분비되고 밤에는 적게 분비되는데, 낮에 자주 나가노는 아이들은 도파민의 분비가 자연스럽게 이뤄져서 안구가 정상적으로 성장한다는 거야. 반면에, 낮에도 실내에만 있는 아이들은 도파민 분비리듬에 교란되면서 안구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결국 근시가 된다는 거지.”
“햇빛이 근시를 막아준다니 진짜 신기해요.”
“전문가들은 근시 예방을 위해 아이들이 매일 3시간 정도 1만 럭스(lux) 이상의 빛을 쬐는 것이 좋다고 권장하고 있단다. 1만 럭스는 맑은 여름날 그늘에 있을 때와 비슷한 밝기니까, 계절에 상관없이 볕이 좋은 날 3시간 이상 나가놀면 좋다는 얘기지. 그나저나, 넌 오늘부터 아빠랑 붕어빵이라는 얘기를 훨씬 더 많이 듣겠구나. 안 그래도 닮았는데 안경까지 쓰면 정말 똑같아질 테니 말이야.”
“예에?! 그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얘기세요? 전 단지 콤플렉스인 단춧구멍 눈을 가리고 싶었을 뿐인데, 아빠랑 더 똑같아 진다고요?”
“당연하지! 아빠처럼 멋져지고 싶어서 안경 쓰고 싶어 한 거 아니었어?”
“아빠, 실은 저…, 너무 나가 놀았더니 앞이 정말 잘 보여요. 1km 밖에 있는 개미똥구멍까지 보인다니까요. 어떨 땐 제가 몽골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시력이 5.0일 지도 몰라요. 다신 안경 쓰고 싶다는 말 안 꺼낼게요, 흑!”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