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백지영, 기분좋게 웃다

5집의 발라드 곡으로 재기 성공한 그 가수의 묵묵한 버티기…잊혀진 연예인을 인정하게 만든 건 춤도 끼도 웃음도 아닌 노래

▣ 이문혁 CJ미디어 기획특집팀 프로듀서

음악은 원래 독재자다. “감동을 얻으려면 나에게 너의 시간을 지불해”라는 원칙에서 한발의 물러섬이 없다. 예쁘지만 까탈스런 여자친구랄까. 이제는 지쳐서인지, 생일 케이크에 올라가는 초의 수가 점점 늘어날수록, 그림 보는 재미가 새롭다. 5분을 주면 5분만큼 얘기를 걸고, 1시간을 주면 그만큼 소곤대는 것이, 넉넉한 친구의 느낌이라서다. 그럼에도 여전히 온몸을 휘감는 전기의 떨림이 가끔 그리운 것은 그림을 보고 울었던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음악만이 줄 수 있는 날벼락 같은 감동. 남의 말은커녕 자기 자신의 말도 안 들을 것 같은 짐 모리슨, 커트 코베인도 음악이 장악한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시어머니 앞의 새색시처럼 복종하고, 그 박자에, 놀랍게도 그 박자에 입을 연다. 그들이 인정한 유일한 복종의 대상이 음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의 독한 외면에 사산아가 된 3,4집

요즘 재기에 성공했다는 가수 백지영을 보면서 저 사람도 사로잡혔구나 싶었다. 오기로 버티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기에, 국민 정서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음흉함이 너무 야비했기에, 포기의 유혹이 어느 정도 무게였을지 짐작됐기 때문이다. 음악이 아니더라도, 가수가 아니더라도 할 일은 세상에 많다는, 남이 혹은 자기 자신이 보내는 위로에 어떻게 솔깃하지 않았으랴.


△ 참으로 더디게 대중은 대답했다. 2집 뒤 황망히 떠났던 백지영은 긴 인내 끝에 5집으로 대중 가수의 이름을 되찾았다.

억울함이 화로 변한 다음에 오는 체념 그리고 미련, 이런 과정들 속에서 굳이 어려운 길을 가시 밟으며 가기보다는 안 갈 이유를 찾기가 더 쉬웠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낙담의 시간 또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길지 않았다. 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녀에게는 음악이 있었다.

“백지영이 5집 앨범에서 발라드 가수로 변신, 재기에 성공했다”는 단순한 한 줄 속에는, 황망히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던 것이 그녀의 2집 때였다는 사실이 흐릿하게 묻혀 있다. 그녀의 앨범 목록을 유심히 찾아본 이들은 알겠지만 그녀는 데뷔하고 지금까지 음악에서 벗어나서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녀는 이제 다시 일어선 것이 아니라 계속 일어서 있었다는 말이다. 더 이상 그녀를 외면할 핑계가 없어진 사람들이 그들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누워 있던 그녀를 이제야 슬쩍 일으킨 것뿐이다. 시험에 떨어진 것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시험을 볼 기회조차 박탈당했을 때다. 세 번째, 네 번째 앨범이 사산되었다는 사실보다 사람들의 독한 외면으로 죽었다는 것이 그녀를 더 절망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녀는 또 다른 출산의 고통과 두려움을 뚫고 나왔다. 음악에 사로잡힌 영혼으로 말이다.

시련이 주는 가장 큰 보상은 역시 성숙인 것. 요즘 오락 프로그램에 나온 그녀의 웃음 속에는 여유가 보인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느라 50곡을 녹음하고 고르고 고르던 노력이 주는 자신감인지, 노래를 이렇게 잘했나 하는 겸연쩍은 주위의 칭찬 덕인지 모르겠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던 시절을 슬쩍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 때문인지, 자신감이 넘치던 그녀의 2집 시절 모습보다도 지금이 좋다. 오락 프로그램에 가수가 출연하는 것은 많은 경우 프로그램 말미에 뮤직비디오 30초를 트는 불공정 계약의 대가다. 텔레비전이라는 재판정에서 그녀가 기꺼이 자신의 피 맺힌 웃음 한 파운드를 잘라 바치며 돌파해나가는 모습을 볼 때 살짝 아리기도 하다. 예쁘지 않으면 웃기기라도 해야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줄 정도로 왜곡된 지금, 예쁜 그녀가 웃기려고까지 하는 것 또한 가수이기 때문이라고 믿어서다. 그런 그녀의 내던짐이 음악 포털 사이트 다운로드 1위라는 결과로 돌아왔을 때, 그래서 뜨겁고 진한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 때, 사로잡힌 이의 행복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음악에 사로잡힌 이는 결국 음악으로 구원받는다. 잊혀진 연예인 백지영을 사람들에게 가수 백지영으로 인정하게 만든 것은, 그녀의 춤도 끼와 웃음도 아닌 그녀의 노래였다. 직업을 바꾸는 것보다 더 힘든 게 가수가 자신의 장르를 바꾸는 일이다. 그녀는 감수하고 도전했고 사람들은 그에 반응했다. 가수란 성대를 울려서 공기를 통한 진동을 매개로 울림과 감동을 전하는 직업이라는 기본에 충실했던 것이다. <사랑 안 해>라는 그녀의 노래에 대해서 어떤 이가 “이건 사랑을 안 한다는 게 아니라 너만 사랑한다는 뜻입니다”라고 댓글을 붙여놓았다. 그녀에게 다시는 안 하고 싶은, 그러나 그것만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음악이었고, 그 사랑에 대해서 음악은 참으로 더디게, 하지만 확실히 대답했다.

오락프로그램 버티기, 가수에 충실하기

필요 이상으로 성에 대한 묘사가 사실적이지 않느냐는 시비에 대해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당신들은 집에서 당신 부인과 어떻게 부부생활을 하는데요? 그거에 비해서 제 주인공들이 심한가요?” ‘죄 없는 자 돌 던지라’는 말씀에 대한 표절의 의혹이 짙지만, 모난 군중의 가면을 자기를 비추는 거울로 바꾸는 재주만큼은 일품이라 느꼈다. 호통쳐주는 예수님의 도움도 없이, 그렇다고 하루키처럼 되받아 야유를 보내지도 않고, 백지영은 묵묵히 돌든 군중 사이에 홀로 버티고 서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을. 그리고 지금 그녀에게 그 군중은 돌 들었던 손을 들어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이라는 그녀의 이번 앨범 제목처럼 그녀는 기분 좋게 ‘다시 웃고’ 있다. 가수 백·지·영으로 우뚝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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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서 퍼왔어요. 공감가는 글과, 또 감탄스런 표현들에 혹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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