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사레 보르자 혹은 우아한 냉혹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18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정환 옮김 / 한길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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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오노 나나미가 주목하는 역사적 인물들은 비슷한 매력을 갖고 있다. 하나같이 뱀같이 지혜롭고 용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것. 

마키아벨리란 이름도 '정치적'인 카리스마가 있는데, 그가 모델로 삼았다고 하는 인물이니 체사레 보르자가 어떤 성격을 가졌을 지란 이미 상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데 캐릭터보다도 내게 매력을 주고 이 책을 보게 만든 것은 바로 '제목'이다. 우리나라 번역에서만 이렇게 지은 것인지, 혹은 시오노 나나미 그녀가 이렇게 지었는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제목이 너무 근사하다. '체사레 보르자'와 '우아한 냉혹'은 대구를 이루고 있는데, 동일성격이 아님에도 둘은 같은 것이고 '우아한'과 '냉혹'도 동일 성격의 대구가 아닌데도, 동일인물을 묘사하면서 하나의 의미가 되어버렸다. 대체 우아하면서 냉혹하기까지 한 이 잔인한 전략가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작품은 마치 소설책처럼 읽혀진다. 난 이 책을 역사책으로 분류하곤 했지만, 막상 리뷰를 쓰자니 역사책으로 골라 놓기가 조금 망설여졌다. (알라딘 분류는 인물/평전이다.) 아무튼 이것도 시오노 나나미의 전형적인 특징인데, 너무 드라마틱하게 글을 써서 그것이 소설인지 역사책인지 모호하기까지 하다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어쨌든 내 입맛에는 그래서 더 맘에 들지만. ^^ (무조건 쉽고, 감동적인 글을 좋아한다.)

페이지가 짧은 편이 아니지만 마치 스릴러 영화를 보듯이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에 책은 금방 읽을 수 있다. 읽으면서 체사레 보르자에게 어느덧 동화되어 마지막에 비참한 죽음에 이르는 장면에선 안타까움마저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서는 뭔가 찜찜하다. 마치, 세뇌된 기분이 들었다.

그건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나서의 느낌과 조금 비슷한데, 몹시 매력적이고 몹시 탁월한 전략가이며 너무 뛰어나서 이런 사람은 죽으면 안 돼!!!하고 마구마구 외쳤던 카이사르가, 그래도 사실 독재자였던 것은 사실이지 않은가....라는 중얼거림과 비슷한 울림이다.

이를테면, 인기 드라마에 등장하는 '멋진 악역'을 보면, 그 사람이 그렇게 악독해진 데에는 이유가 있고, (더군다나 잘 생기기까지 한) 그래서 일종의 '모성애'를 자극하며, 그의 악행에 면죄부를 주고 싶어지는 마음 같은 것. 체사레 보르자가 카리스마 빵빵한 냉혹한 우아함을 마구 발산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좋은 놈은 확실히 아니었고, 그 죽음에 있어서는 인과응보적 성격도 있는 것인데,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고 그저 죽음만이 안타깝게 느껴지니, 읽고나서도 나의 편애에 내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냉정해지기로 했다. 이 책의 수확은 황미나 作 '불새의 늪'의 '쥬델'같은 캐릭터 체사레 보르자의 우아한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 시절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눈치챈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어쩐지 부끄러워지니까..;;;;

덧글, 그래도 나는 시오노 나나미의 이런 글쓰기가 좋다. 그녀의 에세이들은 사실 공감도 별로 안 되고 너무 딱딱해서 오히려 역사물을 쓸 때보다 더 건조하기 이를 데 없으니 내 취향은 절대 아니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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