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빠름보다 더욱 빠른 속도감으로 대중화의 바람을 탄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단연 마술이다. 우리나라에 붐이 일기 시작한지 불과 몇 년 만에 이미 보편화된 문화로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해리포터라는 마법소설과 영화의 등장, 신세대 얼짱문화의 동조, 홀연히 나타난 신세대 마술사들, 그리고 오락문화의 급성장에 힘입어, 마술은 청소년 문화 속에 단숨에 뿌리를 내렸다. 아마 과학자의 눈에는, 마술보다 과학이 이처럼 빠르게 대중화되고 생활 깊이 뿌리내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럽고 안타까움이 자못 클 것이다.

필자가 마술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마술 속에 많은 과학이 녹아 있다는 점이다. 마술을 알기 전에는 과학과 마술은 서로 공존할 수 없는 상반된 분야로 생각했다. 과학은 믿을 수 있고 객관적인 사실이지만, 마술은 거짓이거나 전혀 객관성이 없는 착각이나 환상이라고 단정지으며 바라보았다. 대부분 과학자들의 생각도 크게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마술은 비과학적이라거나, 오직 속임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세월이 필요치 않았다. 흥미롭게도, 과학이 마술을 비과학적이라는 편견으로 멀리하는 동안, 마술은 끊임없이 과학의 원리와 법칙과 소재와 장치들을 활용하고 있었다. 마술사들은 보다 효과적인 마술을 위해서 과학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예를 들어, 마술사들은 자석이 보편적으로 알려지기 이전부터 자석을 이용한 마술을 해왔다. 지금은 누구나 자석의 보이지 않는 힘(자력 또는 자기장)을 안다. 그래서 더이상 전혀 신기한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아직 이 자석의 원리를 모르는 상황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마술사가 자석을 이용한 마술을 보여준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신기한 마술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과학적인 원리가 대중화되기 이전에는 그것이 과학이 아니라 마술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마술사들은 이점에 착안하여 지금도 발 빠르게 최신 과학기술을 마술에 이용하고 있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컵에 물을 붓고 관객의 머리 위에 그 컵을 뒤집었는데, 물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빈 컵만 남는 마술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마술은 첨단소재를 이용한 마술이다. 이미 우리생활에 활용되고 있지만 그 원리는 아직 대중화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마술이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이 첨단소재는 기저귀나 여성용품에 사용되는 흡수제다. 이 흡수제는 5초 이내에 자기부피의 수백 배 물을 흡수한다. 물을 머금은 가루는 곧바로 젤의 상태가 되기 때문에 컵을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웬만한 마술에서는 늘 등장하는, 불로 하는 마술 중에 종이조각을 태우면 갑자기 장미가 나오는 마술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사용하는 종이는 그냥 종이가 아니라 니트로셀루로스 처리를 한 종이다. 이 종이는 탄 후에 거의 재가 남지 않는다. 또 불이 순식간에 타오르기 때문에 관객의 눈을 속이기에 충분하다. 우리 눈이 밝은 곳에서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때 사물을 순간적으로 볼 수 없는 현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렇듯 첨단소재나 특수재료를 비롯해서 착시, 무게중심, 수학, 기하학, 심리학 등 다양한 과학적 원리가 마술에 활용된다. 물론 흥미를 높이기 위하여 적당한 연출(마술을 공연예술로 보면 속임수가 아니라 연출일 뿐이다)이 가미되기는 한다.

사람들에게 궁금해 하는 마술을 들라면, 세계적인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빌드가 만리장성을 통과하거나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꼽는다. 이러한 거대한 마술일수록 아주 단순한 과학원리를 활용하는데 대개 착시(눈이 일으키는 자연적인 착각현상)의 원리를 이용한다. 일부는 공개되기도 했다. 다만 그 착시를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가는 마술사의 연출에 달려있다. 말하자면 마술은 과학원리를 이용한 거대한 쇼다. 그래서 카퍼필드는 수 십 명의 과학기술자와 함께 팀을 이루어 마술을 개발한다. 과학기술이 없이는 더욱 놀라운 마술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외 사람의 목이 360도로 회전하는 마술은 거울의 반사원리를 활용한다. 이처럼 마술은 그 깊숙한 곳에 과학이 있다.

역으로 말해서 과학은 곧 마술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자, 만약에 우리가 자기부상열차의 원리를 전혀 모르고 그에 관한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어느 날 마술사가 나타나 그 육중한 기차가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그 모습을 보고 우리는 무엇을 보았다고 할까? 그 자체로 놀라운 마술을 본 것이다. 눈으로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분명한 마술이다. 굳이 마술로 연출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일부터 달나라를 가는 일, 줄도 없이 전화(휴대폰)를 하는 일은 과거의 사람이 보면 마술 이상의 현상이다.

원리를 알면 과학이지만, 원리를 모르면 마술로 보일 뿐이다. 정말 재미있는 발견이 아닌가. 그래서 과학이 녹아있는 마술을 잘만 활용하면 과학을 더욱 재미있게 만드는 교육적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소위 과학마술(기존의 실험쇼나 매직사이언스와 다른 공연마술의 개념)이다. 마술이 만드는 강인한 호기심 유발, 집중효과, 신속한 인지(기억)효과, 높은 강도의 흥미, 이 모든 것들이 더할 나위 없는 학습동기 유발의 핵심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술을 즐기면서 그 속에 녹아있는 과학을 즐길 수 있다면, 마술과 과학의 만남은 참 좋은 만남이다. 이제 서로의 장잠을 가지고 함께 만나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할 시기다. 더 나아가 과학기술은 이제 더욱 놀라운 모습으로 우리의 미래를 마술처럼 열어가기를 소망할 따름이다.

사실 누구나 마술에서 과학을 만날 수는 있다. 마술을 실제로 할 수는 없지만 그 마술이 어떤 과학원리를 사용하였을 지에 대한 추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추측의 과정이 곧 과학이다. 예를 들어 사람의 목이 360도로 회전하는 마술이 있다면 과연 어떤 과학적 원리를 사용하면 좋을까? 그 원리는 누구나 아는 과학 원리이므로 여러분의 능력에 맡깁니다. (글 : 이원근 ? 과학기술평론가/ 프로매지션, 한국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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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05-03 2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네요. 예시가 더 많았으면 좋았으련만... 지난 주에 데이비드 카퍼필드는 마술을 이용해서 강도에게 아무 것도 빼앗기지 않았다고 뉴스에 나왔던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