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 마실 각오로 읽을 책

조선 왕 독살사건 -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수많은 의혹과 수수께끼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5년 7월

이덕일씨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린다. 내 경우 역사를 피부로 느끼게 해준 사람이었고, 접근 방식에 있어서 기대치를 준 분이기에 호감이 훨씬 큰 편이지만, 그를 마치 소설가처럼 보는 사람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  각자 관점이 다른 것이고, 전혀 들을 가치가 없다고 폄훼하고픈 마음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저자가 역사의 대중화를 위해서 애쓰고 노력한다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할 듯 싶다.  이 책도 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처음 이 책은 누가 왕을 죽였는가... 라는 제목으로 읽었다.  책이 절판되어서 구할 길이 없어서 도서관의 책을 빌려 책을 다 복사하고 제본도 떴건만, 그리고 몇 달 뒤 개정판이 나왔다.ㅡ.ㅡ;;;; 좀 더 기다릴 것을...;;; 결국 책은 새로 다시 구입했다.  그래도 아깝지 않았으니까. ^^

읽다 보면, 열불이 확확 인다.  우리 역사 속에서 가장 성공한 혁명으로 보였던 조선의 등장이, 그렇게 곪고 또 곪아 썩어가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란 결코 유쾌할 수 없다.  학자들이 왜 조선은 임진왜란 때 멸망했어야 했다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했다고 구구절절 얘기하는 지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소위 지식인들 혹은 지배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권력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  그런데 반성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힘이란 결국 스스로 뿐 아니라, 역사 자체를 망치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욕심이라는 것은 무서워서, 손에 움켜쥔 것을 놓치지 않으려 더러운 수도 마다하지 않게 되고, 나아가 임금을 죽이고 상대당을 죽이는 데에도 주저하지 않게 된다.  조선의 지배층들은 그랬다.  모두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권력을 쥐고 그 권력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쓴 이들중 많은 사람이 그랬다.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은 없지만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썩어가고 망가져버린 조선의 끝이 어떠했는 지를 아는 우리이기에 답답함은 통증을 동반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E.H.카가 말했듯이, 현실과 전혀 동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고, 여전히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채 청산하지 못한, 정리하지 못한 역사의 조각들은 계속 우리의 목을 죄어오는 역할을 할 것이 분명하다.

조선의 수구 세력을 보면서, 현재의 수구 세력도 같이 겹쳐 보인다.  멀리 예를 들 것 없이 사학법 개정 하나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상식'이라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리고 더 기막힌 것은, 그게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먹힌다는 것이다. 이럴 수가...;;;;

얘기가 잠시 샜지만,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조선의 왕들이 어떻게 죽어갔는가, 그들의 죽음 이면에 어떤 사연들이 있는 가를 책은 친절하게 전달한다.  마치 드라마 몇 편을 시리즈로 보는 기분이 들 정도인데, 찬물 여러잔 마실 각오로 보아야 한다.  저자의 의도가, 단순히 이랬다!라는 고발로 끝난다고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이미 지난 과거의 흔적들을 왜 살펴보아야 하는 가의 이유,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를 돌아보고 이 사회를 돌아보는 일.  그리고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일.  더는 힘에 의해 진리가 짓밟히지 않고 왜곡되어지지 않게 감시하고 애쓰는 일.  우리에게 늘 숙제로 남겨져 있는 그 일들에 부담을 갖고 사는 것. 

덧글, 이 책에는 자매품이 있다.  이 책에는 빠져 있지만, 독살된 임금들보다 더 기막힌 존재 하나, 바로 사도세자.  사도세자의 고백도 꼭 읽어보길 바란다.  그 다음엔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거의 연속 시리즈 소개하는 기분이다.  어쨌든, 강추.  품절일 경우 도서관을 이용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