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로 보는 친일파 역사 - 역비의 책 15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 역사비평사 / 1993년 3월
평점 :
품절


오늘도 일본의 독도망언과 의도가 수상한 행적들에 관한 뉴스를 보았는데 친일파 얘기를 하자니 그보다 더 속이 쓰리다.  저들의 작태야 대놓고 욕이라도 할 수 있지만, 우리 스스로 곪겨버린 상처와 치부는 부끄러워 손가락질 하기도 힘이 든다.

이 책은 꽤 오래전에 쓰여졌다. 십년도 더 된 책. 그러나 지금 보아도 여전히 준엄한 목소리로 울린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있는 공간 안에서 읽기에는 너무 심각했었던 기억이 난다. 주변에선 텔레비전에서 연예인이 등장해서 마구 망가지는 쇼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소란스러운 수다가 진동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 시끄러운 환경에서도 이상하리만큼 집중이 잘 되었다.  너무 익숙한 이름들이 버젓이 들어가 있는 그 페이제에서 받은 충격이 꽤 컸던 탓이다.

이 책은 친일파에 대한 여러 강사분들의 강의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인데, 마치 현장에서 듣는 것같은 사실감이 느껴져 더 쩌릿했던 기분이었다.  게다가 청중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변도 함께 옮겨 주었는데, '이병도' 선생의 이름이 정면으로 나왔을 때는 통쾌한 느낌마저 들었다.ㅡ.ㅡ;;;;

십수년 전에도 조심스럽게 말해야 했던 이름들, 그러나 피할 수 없었던 그들의 이름은, 지금도 더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서 이름이 들먹여지며 공개되고 있다.(드라마 '서울 1945'에서는 정신대에 나가야 한다는 모윤숙의 강의 내용이 나왔다. 대사로만.) 그러나 여전히 심판은 더디기만 하다.  첫 단추를 바로 끼우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단추를 채워 놓았어도 결국은 다시 풀러서 시작해야 하건만, 우리는 해방 이후 60년이 넘는 시간을 흘려보내면서도 아무 것도 바로 잡지 못하고 있다.

시간은 흘러 저들은 자연의 시간을 다 보내고 이 땅을 떠나는데, 그들의 이름과 흔적은 아직도 이 땅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심지어 국립 묘지에서까지.ㅡ.ㅡ;;;;) 대체 어느 때까지 미루고 관망할 것인가.  기다리기만 하면 역사의 심판이 뚝 떨어진다는 말인가..  생각할수록 답답한 노릇이다.

일제 때 법관 노릇을 했던 아버지를 둔, 그 자신도 민족일보 사장의 재판 때 사형 선고를 했던 법관 출신의 이모씨는 마치 출사표를 던지듯 자신을 '활'로 비유하며 당신(그의 표현으로는 '주님'이었다.)께서 당기시면 부러져도 좋을 각오를 밝혔다.  그가 같은 당의 대표로 모시고 있는 여인네는 과거 독재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국민들 여럿 잡고 나라 경제 초석을 엉성하게 쌓았건만, 여전히 추앙받고 존경받기까지 한다.  참 헛움음이 나온다.  그들은 이번에도 지방 의회 선거에 표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며, 그들의 뿌리가 어떠하든지 망각의 샘물과 세뇌 교육을 받은 국민들은 표심을 나눠줄 테지. 답답한 마음 가득이다.

우린 역사 교육부터 다시 받아야 한다. 그리고 산수 공부도 다시 해야 한다. 갚을 것 같고 되돌려 줄 것 줘야 올바른 거래가, 관계 유지가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테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