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국사기 (전3권)
이덕일 지음 / 김영사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이덕일씨 자신이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역사서의 대중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가 쓴 책들을 살펴보면 전문서적의 내용을 다루지만 모두 쉽게 서술했다.  마치 소설가가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처럼 그의 말/글 솜씨는 옛 이야기 들려주듯 자연스럽고 흥미 진진하며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마력까지 보여주었다.  기존의 역사서가 이러이러했다. 저러저러했다. 라고 표현했던 내용들을 그는 보다 극적으로 전개했다고 보면 아마 비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그가 또 비판을 많이 받기도 한다.  한마디로 주류가 아니라는 것이다.  역사를 소설화시켰다는 말을 듣는다. 로마인 이야기의 시오노 나나미가 받는 그런 비판이랄까.

내 생각은 다르다.  쉽게 풀어 쓴 것과 멋대로 지어 쓴 것은 구분해야 한다.  그는 다작을 하고 있지만, 결코 학문 연구를 게을리해본 적이 없다고 당당히 고백했다.  그가 쓴 책들과 그가 참고한 사료들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결코 거짓이 아니라고 본다.

내게 있어 이덕일씨의 역사서들은 역사를 드라마틱하게 전개시켜주는 좋은 교과서인 셈이다.

이책 오국사기의 오국은 그동안 우리가 받아온 역사 교육의 편협함을 단적으로 지적해 준다.

고구려 백제 신라, 이 세 나라가 삼국시대라고 불릴 만한 시기는 그들의 전체 역사를 통틀어서 백년도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도 당연하게, 그리고 익숙하게 삼국을 말한다.  북쪽에 있었던 부여도, 남쪽에 있었던 가야도 말하지 않는다.  교과서에서도 그들은 찬밥 신세다.  그런 나라가 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 까마득히 잊어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물론, 이 작품에서의 오국은 중국과 왜/일본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저자의 윗 생각은 변함 없지만, 책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또 시기적으로 이 책에서는 부여와 가야가 망한 시점이다.) 오국은 중국과 우리나라 일본까지의 범위이다.  당시의 동아시아 국제정세를 유기적으로 연결시켰다고 보면 된다.

고구려 영영왕때나 연개소문의 일화등은 작가적 상상력이 들어갔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무작정 애국심으로 그들을 미화한 것은 아니다.  설득력 있는 상상력이랄까. 

이 책은 고구려의 추운 날씨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는데,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반도 북쪽 땅을 중국 땅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 그 지역은 북방 민족이 차지해 왔었지, 중국의 영역이었던 적은 드물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위쪽은 중국 땅..이라는 공식이 자리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선입관을 깨부술 수 있었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그들이 잃어버린 고구려의 땅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나 역시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은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구려나 백제가 아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라는 사실이다.

이덕일씨는 김춘추가 고구려 보장왕을 만났을 때 토끼와 거북이 일화를 이용하여 위기를 벗어나는 장면을 맛깔스럽게 묘사했다.  당시 국제외교에 익숙하지 않았던 김춘추의 촌스러움은 동시에, 이미 거짓말히 횡행하는 고구려 외교 모습의 썩은 단면도 보여주는 것이다.  아쉽고 또 아쉽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신라의 복잡한 성관계(?) 혹은 주도권 싸움을 잘 풀어준 것도 고마운 일이다.  화랑세기에 기초한 관련된 책들을 찾아 보았지만, 이덕일씨만큼 명확하게 그들의 독특한(유교적 윤리의식에 길들어진 우리 눈으로 보았을 때의) 성문화와 정치 주도 세력을 설명한 사람을 보지 못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역사 대중서이기에 쉽게 썼지만 결코 가볍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세권에 달하는 내용이지만 읽은 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재미 있고 흡인력 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익숙한 수/당과 삼국의 이야기보다 왜의 이야기부분이 잘 흡수가 되지 않았는데, 익숙치 않은 이름들이 큰 걸림돌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아울러 우리와 일본의 역사 관계에서 "가야" "왜" "임나 일본부" 등등에 관한 일들은 아직도 사료가 부족하고 더 많은 연구가 되어야 할 영역인데, 이러한 것들이 보다 활발하게, 그리고 정직하게 연구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족한 사료를 어떻게 메꾸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기존의 학설을 부정하는 것이 괘씸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고대사는 광활한 만큼 아득하다.  그 넓은 대륙도, 호방한 기상도 지금의 우리에게는 참으로 먼 이야기로 보인다.  그러나 멀고 아득하다고 아예 제낄 수는 없지 않은가.  더 잊기 전에 재빨리 멀어져가는 끈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럴 때에 흩어져 있던 우리의 고대사 조각이 하나 둘 퍼즐 조각을 맞추면서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까

욕심같지만, 이덕일씨처럼 역사를 대중적으로 소개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애쓰는 학자가 더 많이 나왔으면 한다.  그리고 그들이 연구를 맘껏 할 수 있는 풍토와 여건이 마련되기를... 그리고 그 고마움도 잊지 않는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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