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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어린왕자
장 피에르 다비트 지음, 김정란 옮김 / 이레 / 199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어린왕자를 만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너무 예쁘고 순수해서, 사막에서 그를 만난 생떽쥐베리가 너무도 부러웠던 나였다. 중학교 2학년 때, 교생 선생님과의 국어 수업, "선생님, 생떽쥐베리가 정말 사막에서 어린 왕자를 만난 거죠?"라는 질문에 교실은 온통 웃음 바다, 졸지에 난 현실 감각이 없는 학생이 되어버렸다. 소설이 허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 있어 어린 왕자는, 그 허구 속에 틀어박힐 수 없는 대상이었다. 때문에 소설임에도 어린왕자는 내게 실존인물이었다. 그것이 깨졌던 바로 그날, 집에 돌아와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웃음거리가 된 게 챙피해서가 아니라, 좀 더 오래 내 안에 있어도 좋았을 어린 왕자를 내 스스로 보내버린 것 같아서...
그래서, "다시 만난 어린왕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이 반갑지 않았다. 다시 만나봤자니..ㅡ.ㅡ;;; 요런 시니컬한 반응. 친한 동생이 이 책을 추천해 왔을 때에도 그닥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그 아이의 안목을 믿었던 터라 한 번 들여다 본 책은, 너무 예상 밖이었고 내 기대를 한참 비켜나갔기에 꽤 충격적이기도 했다.
책은, 원작 어린왕자를 패러디한 내용이다. 그러나 단순한 패러디가 아니라 몹시 철학적으로 접근했다. 생떽쥐베리 대신 장 피에르 다비드를 만나 준 어린왕자의 이야기. 조금은 달랐던 그의 여행기, 그의 요구 조건, 그와의 대화...
몹시, 이뻤다.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까닭도 모른 채 눈물이 날만큼 그리운 기분이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책을 덮으며 참 마음이 벅찼었다. 역자의 후기는 또 다른 해석을 남기며 내 지적 만족감을 채워주기도 하였다.
패러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원작을 해치는 다시 쓰기도 좋아하지 않던 나였는데, 이 책은 그 모든 것에서 예외가 되었다. 역시 스스로의 습관을 너무 고집하면 편벽될 수밖에 없는가 보다. 고집 꺾고 보았더니 좋은 책을 만나지 않던가. 호불호야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좀 더 마음을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세한 책 이야기는 직접 읽고서 느껴보시기를... ^^ 멋진 당신의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날 것이다. 어릴 적의 어린왕자와 달리, 성인이 되어서 만난 어린 왕자도 여전히 매력적일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