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도 꽤 찡했었던 기억이 난다.  부러 왼손잡이 연습을 하며 투혼을 보여준 이범수가 찡했고, 저 오늘 컨디션 최곤데요, 라고 한마디 대사밖에 없었지만 온화한 카리스마를 보여준 공유도 참 멋있었다.  그런데 그 영화의 재미란 상대가 안 될 만큼 멋진 책이 있다는 것을 영화를 보고 나서 알았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제목만 보면 이 요란한 표지의 책이 그저 과거 야구사에 화려한 한토막을 장식했던, 그러나 그만큼 빠르게 스러져갔던 그 구단의 팬 이야기인가보다 지나치기 쉽다. 뭐,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니었다.

작가 박민규가 서문 격으로 써낸 몇 페이지만으로도 배꼽 잡고 웃던 나는, 거기서부터 작가의 마이너틱한 성향이 느껴졌다.  주류에서 벗어난, 그러나 비주류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오히려 당당하고 그래서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그의 주체성(?)이 느껴졌달까.

초반 삼미슈퍼스타즈의 창단과, 인천 소년들의 눈물 겨운(그러나 몹시 웃겼던^^;;;) 이야기들에 눈에 주름잡힐까 걱정했던 기억까지 난다. 너무 웃어서 입가의 근육이 아플 정도로

그러나 이 작품은 웃고 즐기는 데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부터 각오해, 준비해, 여기가 시작이야!하면서 진지함으로 들어가는데, 삼미의 마지막 경기를 보고 돌아온 주인공이 학교를 빼먹은 것에 대해서 부모님께 변명을 하며 고백하는 내용은 상당히 의미심장했다. 고등학생의 어린 나이로 소년은 이 사회 안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차이, 입장, 비전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의 눈물 어린 고백(혹은 구라?)은 아버지의 마음을 흔들었고 동요시켰고, 그 자신도 동화시켰다.  그는 자신이 판단한 사회의 모습에 순응하는 것을 택했고, 그 나름의 최선으로 한 길을 달렸다.  사회의 기준으로 보아 성공한 대학인, 직장인, 가장이 된 것처럼도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 길이 아님을 그는 어렴풋이 느낀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찾기 어렵다.  대체 왜? 왜 직장에서 잘리고 부인에게는 이혼을 당했는지, 그는 혼돈스럽기만 하다.

그때, 어린 시절 절친한 친구, 삼미의 추억을 공유한, 인생사 고단한 친구의 귀환은 그의 삶에 전환점을 준다.  우유 배달로 한달에 몇 십만원 버는 걸로 자족을 아는 그는, 나름의 철학을 갖고 있고, 때문에 팬도 갖고 있는 아주 독특한 사람이었다.  일반의 상식으로는 결코 이해가 불가능한 그의 생활, 그의 사고관, 이야기들은 주인공을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독자도 함께 변화시킨다.  그는 묻고 있다.  대체 무엇 때문에, 무슨 이유로 그렇게 악착같이, 아귀같이 달려들어 사느냐고, 여기서, 독자는 한 대 얻어맞은 충격을 느낀다. 왜냐고?

달리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게 사니까? 바보같다.  다들 그게 답이라고 하니까? 한심하다.  그럼 대체?  우리가 목표라고 여겼던 그 언덕에 올라갔는데, 그것이 꿈도 이상도 무엇도 아닌 그저 허무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 뒤에 따라오는 허탈함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경쟁'을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 왔다. 경쟁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경쟁 뒤에 매몰되어 버리는 자아와 인간미를 우리는 하찮게 방치해두고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테면 교사 평가제에 대해서 어느 전교조 교사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나는데, 평가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지독한 '경쟁'으로만 몰아가는 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했었다.  동시에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얻어가는 것에 대해서 반성을 하게 되었는데, 나 역시 경쟁의 무대 위에서 치열하게 싸워온, 그리고 힘들어 한 기억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주인공은 삼미를 다시 떠올려보았다. 친선 야구 게임에서 치기 힘든 볼 치지 않고, 잡기 힘든 볼 잡지 않는 그 이상한 경기에서 그들은 지고도 행복했고, 지고도 많은 것을 얻었다.  그는 아내를 다시 찾았고, 이제는 사랑해서 다시 한 집에서 부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인생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된 것이다.

(여기서 잠시 딴 생각이 나는데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애니스는 아내가 아이를 낳고 싶지 않다고 하자, 부부관계를 중단해버리며 그럼 같이 잘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이것이 얼마나 아내에게 상처가 되었을 지, 그녀의 기가막힌 얼굴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살면서, 한숨 나고 눈물 나고 마음 아픈 일이 얼마나 많던가.  그럴 때 내게 위로가 되어주며 씨익 웃게 만드는 말이 있다. "우리에겐 삼미가 있잖아."

괜찮다고, 그게 다가 아니라고, 더 좋아질 거라고, 막연한 위로의 말보다 더 힘이 되는 그 말, "우리에겐 삼미가 있잖아"...

멋진 책으로 다가와 준 작가 박민규씨에게 고맙고, 그래서 그 후 그의 작품들은 빠짐없이 사보는 열혈 독자가 되었다.   이분법으로 나누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이 책을 주변에 소개하고 나서의 반응을 살펴보면 재밌는 일이 있다.  뭔가 힘들고 마음에 위로가 필요한 이들은 '대박'이라고 말을 하며 쉬이 감동을 받고 또 다시 팬이 되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이루고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덜한 사람들은 그냥 재밌었다, 정도로 일축한다.  나의 눈이 편견을 갖고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단면들을 보면서 이 책의 매력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난 여전히 삼미를 응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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