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용 평전 - 애국과 매국의 두 얼굴
윤덕한 지음 / 중심 / 199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예전에 보았던 응답지가 생각난다. 혹 보았을 지 모르지만, 아니라면 같이 풀어보자

 

첫번째 질문

어떤 여인이 임신중이고, 현재 8명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그 중 셋은 귀머거리이고 둘은 장님이며 한 명은 정신지체아였다.
또한 그녀는 매독(에이즈같은 성병)에 걸려있는데...
그녀는 낙태를 해야할까요?

두번째 질문

전세계를 이끌어갈 지도자를 뽑아야 할 때입니다.
여기 3명의 후보들에 대한 사실들이 있습니다.

후보 a

부패한 정치인들과 결탁한적 있고, 점성술을 가지고 결정을 하며,
두명의 부인이 있고 줄담배를 피우고
하루에 8내지 10병의 마티니를 마신다.

후보 b

두번이나 회사에서 짤린적이 있으며 정오까지 잠을 자고
대학시절 마약을 복용한 적도 있고 위스키 4분의 1을 마신다.

후보 c

전쟁 영웅이다.
채식가였으며 담배도 안피우고 경우 에 따라서 맥주를 가끔 마신다.
불륜관계, 또한 가져본 적이 없다.


어떤 후보를 택하셨습니까?



당신이 선택하고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후보 a : franklin d. roosevelt(루즈벨트)
후보 b : winston churchill(윈스턴 처칠)
후보 c : adolph hitler(아돌프 히틀러)

그렇다면 먼저번 여인의 경우는 어떤가요? 만약 당신이 낙태에 대해 yes라고 대답했다면,,,
당신은 '베토벤'을 죽였습니다...

이 응답지의 의도와 지금 이완용 이야기를 하려는 나의 이야기가 완전 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완용 평전을 읽으면서 같이 떠오른 이야기라서 언급해보았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해 보자.

이 책이 나온 지는 좀 된 편인데, 아마 처음 나왔을 때 제목 때문에 여러 사람 놀래켰을 것 같다. 흔히 '평전'이란 단어를 우린 애국을 한, 혹은 그에 가까운 긍정적 의미의 인물에게 붙이지 매국노에게 붙이진 않았으니까.  물론, 특별한 예외는 있다. "위대한 폭군"이라는 제목의 진시황 평전도 있었으니까.  폭군이었을지언정, 놀라운 일도 많이 했다라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으니 놀라울 제목으로는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완용은 달랐다.  온 국민이 매국노라고 부르는 것에 결코 인색하지 않을 인물이니까.  그러나 그 역사의 적 이완용에 대해서 제대로, 혹은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 역시 드물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흥미가 많이 갔다.  그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는 거라면 절대 읽을 리도 없지만 용감(?)하게 책을 낼 사람도 없으리라 믿었으니까.

그렇지만 기대와 달리 책 초반 읽어나가는 것이 몹시 불편했다.  그것은 이완용에 대한 일반인들의 선입관을 깨주기 위해서 들어준 예시 때문인데 대원군과 독립협회의 이야기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서였다.  저자는 독립협회의 회장을 역임한, 독립협회가 옹호했던 이완용을 설명하면서 이 무렵까지의 이완용은 '매국노'는커녕 오히려 '애국'도 했음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백번을 양보해도 독립협회의 회장직이, 그들의 옹호가 이완용의 행적을 애국으로 포장해줄 수는 없다고 본다.  독립협회 자신이 결코 깨끗하지 못하니 말이다.  청나라에 대해서만 독립을 얘기하고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는 적극 옹호하는 자세뿐 아니라, 나라 되찾겠다고 애쓰는 의병활동에 대해서도 '폭도'라고 규정한 그들을, 제 나라 말도 모두 잊고 '미국인'으로 충실히 살았던 서재필의 옹호 따위야 이완용의 입장을 좋게 보아주기는커녕 더불어 도매급으로 욕먹게 하기 쉽단 생각 때문이다. (아마 서재필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내 눈엔 서재필도 조선의 꽃은 결코 아니었다.ㅡㅡ;;;)

또 대원군이 민비 시해의 제일 선봉이라고 얘기했는데, 며느리와의 사이가 무지 살벌했다는 것은 아는 얘기이지만 그가 민비 시해의 주범이라는 말엔 선뜻 동조하기가 어렵다.  일본의 전략이라는 것이 늘 조선인의 적을 조선인으로 내세우는 것이어서 그 일에 이용된 사람이 대원군이라면 또 모를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 역시 좀 더 공부가 필요하겠지만, 기존의 인식과 조사에 너무 파격적으로 다른 부분이어서 솔직히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민비가 저지른 일들이 결코 잘했다 할 일들이 없지만, 그렇다고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일본 칼잡이들을 시켜 왕비를 시해한다... 감정적으로도 이성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는다. (이런 혼란조차도 일본측의 깊은! 의도가 아니었을까.)

물론, 을사조약 때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고종이라는 사실에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주범과 종범이 있다고 종범의 죄가 가벼워질 수는 없다.  어차피 넘어갈 나라니까 피 안 보고 조용히 넘겨주자라는 식의 사고로 그의 매국 행위를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대외 관계의 모습을 오늘날의 대미 관계에 비추어 설명해준 부분들은 십분 공감할 수 있었다.  나 역시 답답하고 화나는 부분들이니까.  당시야 조선이라는 작은 우물 안에 갇혀 있던 사대부들의 좁은 세계관을 탓할 수 있지만 오늘처럼 정보가 열린 국제화 사회에서 미국에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며 또 거기에 기대어 권력과 부를 챙기려하는 잡배들의 행태를 무엇으로 용인하고 이해할까. 예나 지금이나 제 한 몫 챙기기에 바쁜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에 한숨이 나올 뿐이다.

또 한 가지 울컥!하게 한 것은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이다.  해방 이후 반민특위가 결성되었지만 시기적으로도 이미 늦었고 이승만 정권의 탄압으로 흐지부지 되어 결국 해체되었으니, 결과적으로 35년간 이민족의 식민지로 나라를 수렁으로 만들었던, 그에 앞장섰던 민족 반역자들은 단 한 사람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것이다.  처벌하지 않았기에 반성이 없고, 그들의 악행이 대를 거듭하여 지금도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뿌리가 썩었는데 어찌 아름다운 꽃과 달콤한 열매를 기대하겠는가.  민족의 정신을 바로 세우지 못한 그 과오를 어찌 바로잡을 것인가 한탄스럽다.

수년 전 이완용의 후손이 땅 문제를 들고 나오며 소송을 하였다. 도의적으로 절대 이해할 수도 용납할 수도 없었건만, 우리의 법은 당시 이완용 손자의 주장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일 터지고 나서 수습하는 태도도 혈압 팍팍 오르게 하는 종목이다.(ㅡㅡ;;;)

근래에 들어서 송병준 후손들이 재차 소송을 내었건만 법원이 기각했던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자자손손 잘 먹고 잘 살았던 이들이 오죽 많으며 독립운동한 대가로 자손 대대로 헐벗고 가난하게 억울하게 살아온 사람은 좀 많은가.  우리 근현사를 공부하고 또 말하다 보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여러번 한숨 쉬며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아니볼 수 없고, 아니 알 수도 없는데, 정신 건강에 참 해롭다^^;;;;

그렇지만 이렇게 알고자, 알리고자 하는 책들이 있어서 참으로 고맙다.  억울하고 분하고 화가 나도 더 열심히 알리고 퍼트리고 시정을 해야 할 테니까.  몇몇 불편한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별 네개는 충분히 받을 만한 책이다. 

내내 잘 먹고 잘 살다가 죽어서 묘비가 들어내진 것 외에는 아무 해도 없건만, (그가 민족에게 했던 반민족적 행위에 비해서 죽어 무덤 사라진 게 그리 대수인가?) 그 후손들이 얼굴 들고 못 사는 것만으로 그에 대한 역사적 심판은 과연 끝날 것인가.(이민 가서 역시 잘 먹고 잘 살 텐데, 과연 부끄러워는 하고 있는가. 그랬다면 소송을 하지 않았을 테지.ㅡㅡ;;)

역사의 심판이, 올곧이 바른 길을 향해 달려가길 바란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만고의 진리를 제발 보여줬음 좋겠다.  그래서, 이제는 근현대사의 기억을 더듬어도 아픔 다음에 속 시원한 만족감을 느꼈으면 한다.  그런 날을 우리가 만들어가야 함은 물론이다.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괜히 두 주먹 불끈 쥐어본다.

덧글, 그렇게 역사 교육 중요하다고 하면서 왜 역사 과목은 선택 과목인데?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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