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일기 - 인조,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다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6
작자미상 지음, 김광순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1차 사료를 접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알려져 있지만 척화파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가 기울었을 마음은 대강 짐작이 간다.  그런 전제조건으로 책을 읽었음에도 쉽게 페이지를 넘기기 어려울 만큼 마음이 불편했다.  당시의 답답했던 국제 정세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의 현주소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침략해보지 않은('못한'이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얘기하곤 했다.  잦은 침략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민족이 뭉쳐서 이겨내었다고 역시 자랑하며 떠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무조건 맞지도 않다.) 그러나 침략당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침략 당한 사실에 대한 반성은 잘 보이지 않는다.  반성하지 않으니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극복해내지 못한다는 한계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사실 병자호란은 우리가 불러낸 전쟁이다.  광해군의 대북외교는 당시로서는 최선이었고 적절한 판단이었다.  그가 내치에서 어떤 잘못을 저질렀건 간에(솔직히 유교적 질서를 빼면 크게 잘못한 것도 별로 없다.ㅡㅡ;;;;) 임진왜란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 외교와 국방의 문제를 뼈속 깊이 깨우친 그의 이성과 판단을 능가하는 신하가 당시에는 없었다.  현실적 대안은 아무 것도 없는 채 오로지 명나라에 대한 의리 하나로 나라를 무너지게 한 이들이, 청나라의 말발굽 앞에 무릎 꿇은 것은 국가적 치욕 이상으로 개별적 어리석음의 소치였다.  더군다나 이후 인조가 보여준 행보를 생각해 볼 때, 그들을 동정하고픈 마음은 눈꼽만큼도 없다(ㅡㅡ;;)

이미 지나온 역사를 지금에서 돌이킬 수 없으니, 답답하고 화딱지 나지만 그래도 이런 부분들은 심호흡으로 넘어간다고 치자.  나를 더 황당하게 만든 것은 이 책을 만든 필자의 설명들이다.  광해군을 묘사한 부분도 인조 때의 탁상공론을 좇아가더니, 인조 손에 억울하게 죽은 소현세자와 그 가족들을 폄훼한 표현들 앞에서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설마 연구가 부족해서?  이건 부지런하지 못한 까닭 아닐까?  정말로 그렇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 싫고 무섭다.  당시 정황을 잘 모르는 독자가 이 책을 무비판으로 읽었을 때 입을 영향력이 두렵다는 얘기다.  (물론, 평범한 독자들은 이런 책에 별 관심 없다.  전공공부나 숙제가 아닌 한..;;;;)

그리고 더 씁쓸한 것은, 오늘의 우리 국제 형세도 당시의 조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현실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과 저자세 외교, 바른 말 쓴 소리 한 번 제대로 못하고 그들이 어떤 폭력을 휘두르건 지당하다는 듯 순종하는 모습들에 투영된 자화상들.  야구 경기 하나에도 우리는 강대국의 논리가 바로 들어가지 않던가.  현재 FTA협정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한숨과 뜨거운 눈물을 쏟고 있다.  우리가 이 현실을 극복해내지 않는 한, 과거의 조선이 현재의 대한민국이, 미래의 우리가 바라볼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숨만 쉬고 있을 수 없지만 기운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진정한 자유, 진정한 자립, 진정한 의미의 '독립'을 오늘도 목메어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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