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겨진 산하 - 김구, 여운형, 장준하가 말하는 한국 현대사
정경모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20년도 더 전에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이 겪었을 충격이 눈에 선하다.  이미 많은 사실들이 밝혀진 가운데 더는 숨어서 이 책을 보지 않아도 되는 이 시점에서도 충격적인 책으로 느껴졌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못내 아프고 안타깝다.

이승만, 박정희 등에 억울한 죽임을 당했던 우리의 민족 지도자 여운형, 김구, 장준하 선생님이 구름 위에서 시국을 걱정하는 역할로 등장하는데 어찌 보면 황당한 이 설정들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진지하게 연출되고 있다.   나아가 그들이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들의 오판들에 대한 소탈한 반성과 통한도 같이 보여준다.  물론 이는 저자의 생각과 판단이 그들의 입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지만, 그분들이 정말로 저승에서 우리나라의 지금 모습을 보고 있다면 똑같은 말을 하셨을 거라는 짐작이 들만큼 자연스럽고 또 온당한 지적들로 읽혔다.

그러나 기막힌 것은, 이미 5,60여 년전에 돌아가신 그분들의 입을 빌려 우리 현대사를 지적하는데, 또 작가가 이 책을 쓴 지 20년도 훨씬 지났는데, 우리는 여전히 그때의 그 답답하고 암울한 현실을 아직도 살고 있다.  그들을 죽였던, 그들의 죽음에 동조자였고 방조자였던 자들이 아직도 사회 곳곳에 깊이 뿌리를 내린 채 영향력을 발산하고 있는 오늘인 것이다.  그들의 더러운 거래가 올곧이 드러났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사회적 강자이고, 그들의 후예가 그 뒤를 이어 우리 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숨은 악행은 또 얼마나 될런가.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책 제목 참 잘 지었다고 감탄도 했다.  그 찢겨진 산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여전히 벌어진 상처로 힘겨워하고 있음에 동시에 서러운 마음도 들었다.  어느 때면 이 강산에 진정한 자유와 치료와 안식, 위로가 깃들 것인가.  그 날을 만들기 위해 더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일본은 재방송하듯이 여전히 망언을 일삼고 있는데, 우리 역사 교육의 현주소를 생각하며 혀도 차 보고...;;;;;; 답답하지만 한숨만 쉬고 있어서도 안 되겠다.  역사는 결국 정을 향해서 달려나가는 힘을 지녔으니까.  단, 그 속도를 빠르게 밀어주는 힘이 우리에게 요구되지만.

쉬운 책은 아니다. 내용을 어렵게 풀어낸 것은 아니지만 현대사의 기본 줄거리를 알고 있어야 책이 제대로 읽힐 것이다.  통사류로 대강을 파악한 뒤 이 책을 만날 것을 권한다.  그 만남이 꽤 인상적이다. 단, 가슴이 많이 아프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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