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제442호 2016.03.05
시사IN 편집부 엮음 / 참언론(잡지)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고려대가 성적 장학금을 없앴다. 장학금이 개인의 성취에 대한 상금이 아니라 구조적인 불평등을 조정하며 각자 처한 조건과 상관없이 공부를 장려한다는 의미에서 '장학'금의 본래 취지로 돌아간 것이다. 노동하지 않으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학생들에게 공부할 '시간'을 돌려준 것이다.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아주 바람직한 시도이고 결정이지만, 이것이 더 의미가 있으려면 개별 대학이 아닌 그 이상으로 확대되어야 더 큰 파장력을 줄 것이다. 장학금이 상금이 아닌 말 그대로의 장학금이 된다... 당연한 일인데도 그동안 참 당연하지 않아 왔다. 시립대의 반값 등록금이 국공립 대학으로 모두 확장되고, 고향 땅에 있는 대학에 진학해서 고향 땅에서 당당히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그래서 서울로 서울로 집중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풍경을 그려 본다. 아득해 보이지만, 그런 길로 갔으면 한다. 


김형민 피디의 '딸에게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도 재밌게 보았다. 무려 쿠빌랑 칸에게 맞서서 할 말을 해낸, 그렇게 국익을 지켜낸 인물이다. 쿠빌라이는 고려 왕족 영녕군 준이라는 자로부터 "고려 군대가 5만씩이나 되니 일본을 치는 데 도움이 되고도 남습니다"라는 허튼소리를 듣고 있었다. 쿠빌라이가 고려 군대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자 이장용이 이렇게 맞받아쳤다. 


"30년 전란으로 인해 다 죽어서 없어졌습니다."


세상에! 그 전쟁의 당사자에게 늬들 때문이잖아!라고 외친 게 아닌가! 쿠빌라이도 기가 막혔을 것이다. 간이 배밖으로 나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너희 나라에는 여자가 없느냐? 죽은 자는 있고 태어난 자가 없다?" 하지만 이장용은 움츠러들지 않았다.


"성은을 입어 (즉 몽골과의 전쟁이 끝나) 9년 동안 전쟁이 없었습니다. 그때 태어난 아이들이래봤자 이제 9살입니다. 폐하의 군인으로 쓸 수가 없습니다."


히야..... 감탄스럽다. 앞서 영녕군이라는 작자가 한 행위는 나라를 골백 번을 팔아먹을 해위. 왕족이라는 자가 저랬다. 병자호란 때 포로로 잡혀간 자식을 몸값 치르고 데려오면서, 지나치게 돈을 많이 지불해 이후 다른 백성들이 몸값을 지불할 수 없게 만들었던 어느 몹쓸 인사가 겹쳐 보였다. 징글징글한 놈들...


김형민 피디는 이렇게 잇는다.

몽골의 침략에 고려는 치열하게 항전했어. 그러나 전쟁이란 정의롭든 그렇지 않든 나라를 망가뜨리고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든다. 요즘 들어 전쟁이라는 소리를 함부로 내뱉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아빠는 견딜 수 없게 슬프다. 군사작전권도 갖지 않은 처지에 '대통령이 김정은을 제거할 결심을 해야 한다'느니 운운하며 떠드는 족속들이, 과거 쿠빌라이 옆 고려인들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또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며 테러방지법을 그토록 목 놓아 떠들다가 정작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이 자신이라는 사실도 몰랐던 총리를 본다면, 고려 재상 이장용은 몽골 말로 이렇게 외칠지도 모른다. "오오, 탱그리시여(오오, 하늘이시여)."


저렇게 내뱉어도, 나라를 팔아먹는데도 무조건 찍어주는 콘크리트 지지층이 있으니.... 오오 탱그리시여!!


리베카 솔닛에 관한 기사도, 하퍼 리에 관한 기사도 반가웠다. 얼마 전에 파수꾼을 읽어서 더 눈길이 갔다, 앨라배마 대학 학생들이 영문학부 건물의 이름을 '하퍼 리 홀'로 바꾸자는 인터넷 청원을 시작했단다. 현재 건물의 이름은 '모건 홀'인데, KKK의 리더였던 존 타일러 모건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그가 남북전쟁 때 불타버린 대학 재건에 재정적 도움을 줬기 때문이라는데... 우리나라 사학을 세운 친일파들의 이름이 스쳐지나간다. 아흐 동동다리, 아흐 탱그리시여!


표지 때문에 시사 인을 샀다. 한참 필리버스터가 물 오를 때였다. 하지만 배송이 지연되었고,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을 때는 허무하게 필리버스터가 중단된 뒤였다. 그러고도 얼마나 갖은 우여곡절이 지나갔던가. 정치가 생물이라는 것만 생생하게 경험한 지난 보름이었다. 하지만 표지의 문구처럼, 이 또한 '민주주의의 시간'임을 기억한다. 총선이 한달 여 남았다. 다급한 마음이 들지만, 짧은 시간도 아니라고 본다. 끝까지, 끝까지 고고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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