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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순간들 - 다큐멘터리 한국근현대사
박영수 / 바다출판사 / 1998년 12월
평점 :
품절
삶은 매 순간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큰 일에 이르기까지 우린 많은 갈등을 겪으며 심사숙고 끝에 혹은 충동적인 감정에 의해 선택을 한다. 그 선택의 결과가 나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작은 일이라고 한다면 후회도 기쁨도 내 안의 울타리 안에서 조용히 울릴 테지만, 그 선택이 만약 이 나라를, 이 민족을, 이 세계를 뒤흔든다면 어찌 하겠는가.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순간을 맞이한 많은 이들이 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 중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와 가장 가까웠던 시기, 즉 근현대사 속에 족적을 남긴 사람들은 그 파장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미치게 할 이들이기에 그 중요성이 사뭇 강조된다. 오늘은 삼일절인데, 그런 날에 더더욱 생각나게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결정적 선택의 순간, 운명의 순간들을 포착한 책이 바로 이 "운명의 순간들"이다.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 그 주도자였던 김옥균의 암살 장면부터 책은 시작하는데, 마치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극적 긴장감이 있었다. 뿐아니라 명성황후의 시해 장면도 그렇거니와 고종 황제와 순종 황태자의 커피 잔 속에 독약이 들어 있었던 장면 등등, 저자는 일반 교양서답게 쉽게 쉽게 설명을 해나가고 있다. 물론, 그 행간에 숨어 있는 의미와 역사적 중요성이란 한없이 깊지만. 그리고 부록처럼 문화사 혹은 풍속사도 같이 곁들여 설명하는데 무거운 정치 이야기에 약방의 감초 같은 분위기를 잘 돋워주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1998년인데, 그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던지, 혹은 저자의 시각이 그러했던 것인지 상당히 우익의 입장에서 좌익을 바라보는, 즉 우익을 옹호하고 좌익을 삐딱하게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별 다섯 개가 별 네개로 떨어진 것은 그 때문.)
대략 8년 전의 글이니 오래 되기는 했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가 '반공'은 아니었을 터인데 조금 불편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종종 눈에 들어오는 오타가 좀 실망스럽기도 했다.
근현대사의 많은 사건들을 모두 보여줄 수는 없으니, 책 끝에 부록처럼 용어 설명을 남겼다. 이 부분은 글씨도 작아서 백과사전을 보는 기분이었는데, 앞서의 쉬운 설명에 비하면 상당히 딱딱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것까지 불만으로 삼으면 오히려 내가 삐뚤어진 편이 될 것이다^^;;;)
쓴소리도 몇 개 했지만 대체로 좋은 책이었다고 감히 말해 본다. 일단은 책의 집필 목적에 성공했으니까. 쉽게 쓴 대중 교양서. ^^
살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많은 선택의 순간, 그 선택의 결과를 우리가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눈앞의 이익이나 혹은 나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으로 역사 앞에, 민족 앞에, 그리고 스스로에게 죄인이 되지 않는 우리를 소망한다. 땅은 물려 받았을지언정 두고두고 매국노 소리를 듣는 이완용과 그 후손같은 꼴을 다시 보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