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룻밤 머문 미도호스텔은 조식이 제공되었다.


토스트와 계란후라이를 직접 해먹고, 쥬스와 커피 등을 마시면 된다. 귤은 무한제공!

바로 직전에 가장 좋아하는 반찬은 계란과 두부라고 명명했던 내가 프라이팬을 잡았다.


전기렌지는 처음 써봤는데 화력이 안 좋았다. 왜 내가 쓴 것만 이래...

아무리 기다려도 달걀이 익지 않아... 결국 프라이가 에그 스크램블이 되어야 했다. 끙!



에그가 스크램블이 되어가는 사이 빵이 딱딱하게 굳어....;;;;

그럼에도 아주 맛났다. 또 다시 너그러움이 강림!


제지기오름을 가고 싶었지만 차없이 대중교통으로는 우리가 원한 시간대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과감하게 패쓰.

신천목장에선 들판 가득 널어놓은 귤껍질을 볼 생각이었지만 날이 흐려서 못 볼 것 같았다. 역시 패쓰!

서귀포 올레 시장에 들렀다가 김영갑 갤러리로 바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뿔.싸.

마실디가 아직 문을 안 연 것이다.

이런 낭패가! 

모두가 초콜릿을 파는데, 다른 집에서 산 초콜릿을 같이 보내달라고 해야 할 판...

하지만 들고 갈 수 없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과일집에 들어갔는데 손님한테 와볼 생각도 안 하신다. 

와봐달라고 해서 질문을 던졌다. 한라봉 천혜향 황금향 레드향이 어떻게 다르냐고.

사장님이 이렇게 대꾸하신다. 그것도 모르면서 사러 왔냐고. 헐!

장사할 마음이 없으심??

그렇지만 나는 수납이 불가능한 초콜릿을 갖고 있으므로 꾹 눌러참고 레드향 한상자를 샀다. 초콜릿을 같이 보낸 것은 물론이다.


자, 이제 김영갑 갤러리로 고고씽!

서귀포시에서 두모악까지 가는 버스는 한시간에 한 대 온다. 

30분을 기다려서 드디어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미리 일어나서 버스 맞을 준비를 하는데, 버스가 정거장에 서지도 않고 유유히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세워달라며 뛰어보았지만 이미 로타리를 벗어나.....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가...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하아... 제주 와서 내가 해보고 싶은 것 두 가지는, 그렇게 날아갔다. ㅠ.ㅠ


잠시 멘붕이 왔지만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김영갑 갤러리는 다음 기회에..ㅜ.ㅜ 

그의 그림을 서울 전시회에서, 책으로 만났으니 너무 서러워하지는 말자..ㅜ.ㅜ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지니어스 로사이! 안도 타다오가 건축한 미술관이다.

지난 밤 맨 뒷좌석에 앉았다가 한정거장 지나치는 버스를 빨리 못 세운 탓에 이후 우리는 맨 앞좌석에만 앉기 시작했다.

버스에 오르는 할머니들에게서 드디어 제주방언을 들었다. 

그 전까진 모두 표준어만 써서 제주 느낌이 덜했는데 통번역이 필요한 수준의 제주의 맨 언어를 들으니 이곳이 제주라는 게 실감났다.


검색해 보니 섭지코지 안에 있는 지니어스 로사이는 성산읍에서 5분 거리란다. 

그런데 기사님이 성산읍에서 내리면 한 시간은 걸어야 한다고 하신다. 

몇 번을 검색해도 여기라고 나와서 우린 과감히 내렸다. 하지만 거기 없...;;;;;

네비가 잘못 알려준 거라능!!

비는 오고, 바람은 몰아치고, 우린 목적지를 잃었고!

미술관에 전화해서 위치를 확인했다. 역시 섭지코지가 맞다. 그러니까 여긴 아니다.

카카오택시를 불렀다. 우리의 재앙이 이제 그만 끝나길 바랐는데, 최악의 상대가 남아 있었다.


기사님은 택시 몬지 6개월 됐는데 내내 제주 시내에서 몰다가 시외로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서울 어디셔 왔냐고 묻는다. 강남? 강북? 

내 친구가 강남 하나 강북 하나라고 했는데, 이분은 우리 둘 다 강남에서 왔다고 단정하고 강북 욕을 마구 쏟아냈다. 

강북은 글러먹었다나? 강남은 사람이 됐다고... 

그 근거가 자신이 찜질방에서 일해봤는데 강북 손님은 쓰레기도 제대로 안 버리는 자들이란다. 

강남에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느꼈다고. 하아... 이 얼척 없는 강남 부심은 대체 뭐지? 제주에서 일하시는 분이 왜??? 

그 후로도 고등 동창이냐 묻고 내 친구가 직장 동료라고 했더니 좋은 직장 다니나보다며 끝없는 오지랖을 떨었다. 

3900원 나왔으니 그리 멀지도 않은 거리였는데 엄청 피곤해졌다. 대재앙!!


마침 섭지코지에 도착했을 때는 반짝 날씨가 좋았다. 



비 그친 것만으로도 감사했는데 사진으로 보니 쨍한 날씨는 아니었구나. 

바람은 여전했지만 그래도 요 잠깐은 우산을 아니 들 수 있었다. 



입장권을 끊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먼저 간 곳은 지포라이터 박물관.



요기서 사진 찍을 때 내 친구가 '앙' 해보라고 해서 '앙!'하고 사진 찍었는데 이유가 다 있었다. ㅎㅎㅎ



예쁘다!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실물크기 지포도 팔고 있었는데, 얼마 뒤 생일이 돌아오는 애연가 친구에게 선물할까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화기물이라서 비행기에 갖고 탈 수 없다고 해서 포기했다. 

나중에 듣고 보니 화물로 부치면 됐을 텐데 거기까진 생각을 못했다.



그야말로 '비석' 그 자체다. 근사한 걸!


전시장 안에 피아노도 있었는데 친구가 연주도 해서 동영상도 담아봤다. 로맨틱한 시간~



그런데 여긴 지포박물관이고 지니어스 로사이는 어디에 있지??

다시 매표소에 가서 물어보니 지니어스 로사이는 지하에 있었다.

그래서 바다를 바라보며 입구를 향하는데 이곳이 절경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일정 짤 때 블로그에서 보았던 풍경이 여기였다. 직사각형 네모 뒤로 성산 일출봉이 보이던 그 풍경!

양 옆의 폭포는 흡사 인터스텔라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곳이 너무 멋져서, 어제부터 이어졌던 모든 삽질아, 모든 머피의 법칙이 다 용서되는,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지니어스 로사이 짱짱!!!

성산 일출봉을 직접 갔다면 더 좋았겠지만, 이렇게 보는 것도 충분히 멋졌다.



지하로 내려가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영상 전시실은 어둡기도 했고, 지하라서 좀 음산하기도 했고, 기묘한 음악소리지 더해서 여기가 꼭 지구가 아닌 것 같았다.

이어서 다른 방으로 갔더니 서로 대칭으로 이루어진 신기한 방을 발견했다.



그 앞에 역시 대칭으로 놓여있는 저 가지런한 슬리퍼. 

이유가 있나 싶어 한컷 찍었는데, 마침 옆방에서 사진 찍고 돌아온 여자 둘이 어뜩해!를 외친다. 자기들 신발 찍어갔다고... 

알고 봤더니 서로들 사진 찍는데 전시실 슬리퍼가 마음에 안 들어서 맨발로 사진 찍고 돌아오는 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발 마저 대칭으로 놓여 있어서 난 뭔가 의미가 있는 줄 알....;;;;


나올 때는 콜택시를 불렀다. 아까 카카오 택시에 디었으므로, 콜비 천원 더 내고 택시 타기로!

점심은 맛집으로 소문난 식당인데 갈치조림이 유명하고 재료가 다 떨어지면 그날 영업 끝나는 집이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15분. 자, 이제 짐작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우리 바로 앞의 손님으로 이날의 재료 끝! 주문 종료였다.

그렇지만 좌절은 금지! 꼼꼼한 내 친구는 플랜B를 만들어 놓았다. 맛나식당 근처에 다른 식당도 알아둔 것이다.



제주에 있는 동안 가장 황홀하게 맛있었던 건 천혜향 쥬스였다. 지니어스 로사이에서 우리가 원샷했던!

그렇지만 식사만 두고 이야기한다면 이날의 부촌식당 갈치조림이 가장 맛있었다.

전날의 저녁보다 덜 배고팠으므로 시장 덕분은 아니다. 1인분에 7천원으로 가격도 여전히 착하다. 굿굿!!

야곱은 제주에서 갈치조림 먹었을 때 너무 맛나서 국물 싸들고 오고 싶었다고 얘기했었다. 격하게 공감한다.

생선조림에 들어간 무도 처음 먹어봤다. 맛나네!!


그 다음에 가기로 한 곳은 김녕의 쪼끌락 카페



또다시 비바람이 몰아쳤고, 검색은 잘 안 되고, 검색하는 찰나에 손은 떨어져나갈 것처럼 아팠다.

풍력발전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어서 신기했다. 모습은 장관이지만 환경은 어떨까 싶었다. 소음도 심할 것 같고...



몰아치는 바람 앞에 내 모자는 힘이 없지!

김녕 성세기 해변인데 이 날씨에 요트 타는 애들이 있었다.

인근 학교 요트부 학생 같았다. 물에도 빠지고 그러던데 고생이 많더라..ㅜ.ㅜ



겨우겨우 찾아낸 예쁜 카페. 이곳에서 먹으려고 했던 건 이거였다.



바다를 닮은 김녕라떼. 그러나 애석하게도 얼음 음료였다. 우리는 미치도록 추웠고, 그래서 온음료를 시켰다.

하지만 우리 옆 테이블의 여성은 혼자 왔는데 꿋꿋하게 저 추운 날에 저 차가운 음료를 시켰다는 것! 진정한 용자!



작고 예쁜 카페였다.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화장실이 건물을 돌아가야 해서 추웠다는 게 유일한 흠!



이곳에서 몸을 살짝 녹이고 다시금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금속벽화마을로 향했다. 

날이 좋았다면 완벽했을 일정인데 추워도 너무 추웠다.

우린 우산이 하나 있었지만 뒤집어지도록 바람이 불어서 의미가 없었다.

게다가 사진을 포기할 순 없잖아!



금속벽화가 있고, 작품 설명이 함께 적혀 있다.

노랑색과 빨강색의 조화가 눈길을 끌었다.

원더우먼 복장의 해녀도~


'국가유공자의 집'이라고 적힌 문패가 안타까웠다.

제주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아픈 역사도 많은 곳이었지...

낚싯대 앞의 자동차가 옥의 티!



엄마 해녀와 아기 해녀 옆쪽 벽에 마주잡은 두 사람의 손도 있었는데 사진 칸이 부족하네. 아쉽아쉽!

날개 앞에서 사진은 당연히 찍었음! 나는야 천사~


작품도 멋지고 해변도 근사했지만 날씨가 가장 큰 적이었다. 여행의 절반은 날씨가 좌우한다는 말에 크게 공감!

게다가 무거운 배낭까지 진 뚜벅이들에겐 더 큰 시련.

넓은 이 공간에 우리 둘밖에 없었다. 파도 소리랑 바람 소리만 들렸다.


다음 일정은 쑥빵과 보리빵을 사러 덕인당에 가는 것.

그 전에 우체국에 들러서 엽서 두장을 부쳤다.

엽서는 정확히 일주일 만에 친구들에게 도착했고,

다음에 제주 꼭 가라고 했던 내 친구가 제주에 가 있다. 히히힛!



거듭된 삽질에 혹시나 하고 전화를 먼저 했는데 자기네 지금 내부 공사 중이라고 한다.

홈페이지에 찾아보니 지점이 두개가 있고 그중 하나가 공사 중인데,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은 영업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전화해서 확인해 보고 다녀왔다.

팥이 들어간 쑥빵을 시식용으로 줬는데 안 그래도 시장한 우리에겐 그야말로 꿀맛!

쑥빵과 보리빵을 각각 만원어치 샀다. 

그 둘을 섞은 것도 팔았는데 살까말까 고민하니 옆에 있던 다른 고객이 사지 말라고 신호를 준다. 

표정이 영 아니올시다였다. 

궁금했지만 패쓰!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내일 비행기를 탈 제주시로 돌아온 것이다. 



39,000원에 예약한 하하호텔. 사실 모텔이지만 이름은 호텔. 그렇지만 리모델링을 최근에 해서 아주 깨끗하고 넓었다.

전날 묵은 미도호스텔은 6만원이었는데 이 방의 절반 크기였다. 화장실도 절반 크기.

승마체험을 제대로 했으면 34,000원에 묵을 뻔했지만..ㅡ.ㅡ;;;;



이제 다시 마음의 폭을 넓힐 시간! 88대지고기집. 근고기를 주문했다. 1인분에 보통 150g이니까 근고기는 사실상 4인분!

든든하고 배부르게 먹었다. 흑돼지는 아니지만 이거슨 제주산 돼지고기! 


저녁 먹고 나서 친구가 오다가 본 바오젠 거리는 직접 찾아가보라고 한다. 

헐! 그동안 길치인 나는 친구 뒤만 졸졸 따라다녔는데 뭔가 운명의 순간을 맞닥뜨린 기분!!


분명 버스 타고 오면서 바오젠 거리라고 일러준 걸 듣긴 했는데, 그걸 다시 걸어서 찾아가려니 막막했다.

열심히 검색했는데 또 현재 위치를 못 찾아...;;;;

그래서 일단 본능적으로 '직진'했다.

몇 번의 위기가 있었지만 마침내 찾아내!!

누가 보면 얼토당토 않은 길찾기이지만 스스로는 막 대견해 했다능! 미션 클리어!

그렇지만 나중에 반대로 되돌아 갈 때는 또 헤맸다는 건 비밀!


거리를 한바퀴 돌았는데 오로지 중국 관광객을 위한 거리였다. 이곳에 대한민국 제주는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통신사 상점은 우리말이 한 개도 안 적혀 있기까지... 심하구나!



고기 먹었으니 커피 한잔은 필수. 마침 갖고 있던 쿠폰으로 아메리카노 두잔 주문. 여유롭고도 만족스럽도다!

이곳에서 서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먼저 교환했는데 끊임없는 진동 소리 드드드드드드


숙소로 다시 귀환해서 씻고 쉬었다. 이틀동안 예정했던 일정은 모두 18개였지만 이 중 10개를 소화했다.

아마 차로 움직였어도 18개는 무리였을 것 같다. 대중교통만 이용해서 이 정도도 선방!

친구는 이번이 다섯번째 방문인데 천지연 폭포와 덕인당 방문 정도만 겹치고 나머지는 모두 처음이었던 것 같다.

이 정도면 초행길과 재방문의 균형도 잘 맞춘듯!


두번째 날 밤이 깊어갔다. 잠은 오지 않고~ JTBC뉴스룸을 다시 듣고, 아침 방송인 김현정의 뉴스쇼를 다시 듣고, 그렇게 몇개의 팟캐스트 방송을 듣고나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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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5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16-02-25 23:19   좋아요 0 | URL
헤헤헷, 즐거운 여행 꼭 되길 바래요~ 무엇보다도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어요. 지니어스 로사이 추천하구요~ 저는 못 가봤지만 방주교회 넘넘 멋질 것 같아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