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선집 - Human Vol.1-14
최민식 지음 / 눈빛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사진가 최민식 선생님의 사진 모음집이다. 무려 55년의 사진 인생을 정리한 두꺼운 책이다. 거기에 선생의 인생과 철학이 잘 드러난 글도 함께 추려서 에세이로 엮었다. 사진을 들여다 보면 이 책이 왜 '휴먼'인지 느껴졌다. 인간을 향한 선생의 따뜻한 시선이, 신뢰가 뭉클하다.


인간적 관심과 삶의 진실에 대한 추구는 나의 전 생애 사진 작업을 통틀어 일관된 것이었다. 나는 사진을 통해 좀더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휴머니즘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어 보려는 신념으로 사진을 해 왔다. -18쪽



아이를 향한 조건 없는 사랑이, 환희가 느껴진다. 너로 인해 이렇게 행복했단다! 1968진주, 1990부산



얼굴 가득한 해맑음, 호기심, 한가지를 향한 집중력까지! 이 똘망똘망한 눈망울들! 1978부산, 1963부산, 1986부산, 1966부산


바람만 불어도, 낙엽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음이 터지던 마냥 즐거운 시절! 가진 게 적어 오히려 더 풍족했던 어느 한때... 1983부산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이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기 전에는 지상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서로가 책임져 주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 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61쪽



1992부산, 1991부산


어쩐지 좀 세 보이고, 어쩐지 좀 당당해 보이는 느낌의 이 언니. 그런데 왜 헤어지기 직전의 연인으로 보일까?

90년대의 드레스는 저렇게 풍성하고 장식 많은, 부케도 화려하게 늘어지는 게 유행이었다. 어느 순간에 심플하고 세련되게 바뀌었을까? 2000년에 결혼한 내 친구의 부케도 저런 느낌이었다. 


진리를 찾는 구도자, 자비와 자애로움을 몸소 보여주는 미소... 1996네팔, 1985부산



땟거리도 없던 시절에도 배움을 향한 목마름에 더 갈증냈었지. 서로서로 돌봐주며 이끌어주던 형제 자매들. 누가 봐도 붕어빵. 부산 1960, 1995



상궁마마같은 올림 머리, 그래도 드레스는 다소 심플해졌다. 저렇게 싱그러운 아들 달 낳고서 행복하게 해로하기를! 1996부산, 1988부산


나의 진짜 이야기는 사랑에 관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사진의 힘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의 사진이 자신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서로를 용서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었는지, 어떻게 사랑을 가르쳐 주었는지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288쪽


사진 발표의 수단으로서 나는 전시보다는 사진집을 선택하며, 그것도 흑백사진이 주류를 이룬다. 사진집이라면 하나의 주제를 차분히 검토하는 시간과 그것을 충분하게 묘사하는 공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실된 의미로 하나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 그것을 통제하여 같이 놀고 교향곡처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은 결국 나의 생각을 전달하는 것을 의미한다. -442쪽

음원이 아닌 'CD'로만 앨범을 발표하려고 하는 나의 공장장님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일본을 여행 중인 친일 고관들의 부인들이 미쓰코시 백화점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한일병합'에 찬성한 매국관료들이 부부동반으로 근대화한 일본을 견학한다며 방문했다.



훈춘사건으로 처형된 농민들

 

양팔이 잘린 농민 변씨

북간도 화룡현의 어느 마을에서 일본군의 방화로 마을 전체가 불타던 중에 30대의 변씨라 불리는 농민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라고 외쳤다. 그때 일본군이 군도로 변씨의 양팔을 내리쳤다. 필로 물든 땅에 쓰러지기 직전의 변씨를 뒤에서 보고 있던 선교사가 찍었는지, 이 한 장의 사진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이강훈의 증언)


이렇게 지켜낸 조국에서 역사는, 역사 교과서는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가. 


진실은 위대하다. 거기에는 끈질긴 생명력이 있고, 억압과 거짓의 신전을 무너뜨리는 신비한 힘이 있다. 사진에는 그것을 해낼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 -155쪽



사격훈련 중인 일본 경찰의 부인들


무섭다. 진심 무섭다.


평안북도 위원에서 훈련받는 경찰관 부인들

 

두만강 하류 훈춘 건너편 신아산에서 경찰관 부인회의 권총사격 훈련



윤봉길 의사의 관은 육군 묘지와 공동묘지 사이의 쓰레기장에 방치돼 있었다. 관 위에 십자가 같은 나무가 있었고 이미 백골화한 유체를 가네자와 의학생인 주씨가 알코올로 닦고 머리카락, 양복, 구두와 함께 수습해 고국으로 송환하였다.



마음이 아파와서, 사실은 제일 처음 찍은 사진을 제일 마지막에 실어본다. 두 손 모은 저 아이의 기도를 알 수 없지만, 어쩐지 소박할 것 같은, 그렇지만 간절했을 게 분명한 그 바람이 이뤄지는, 그런 평화로운 세상을 잠시 상상해 보며 마무리 짓는다. 세상은 너무 시끄럽고, 너무 폭력적이고, 너무나 무자비하며 부도덕하지만, 그래도 이 세상이 유지되는 게 이 세상이 소멸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었으면... 그것이 모두에게 공감될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성공한 인생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이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풀었는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우리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가장 민주적인 행위이다.

 

사진이 지니고 있는 힘이 가장 잘 발휘되는 것도 인간을 대상으로 할 때이다. 인간은 역사의 소산인 동시에 역사의 창조자이며, 스스로 자기 운명에 도전한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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