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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이 책을 다 읽고 덮은 날이 5월 17일이었다. 5월 민주주의 시민축제 '그대에게'가 시청 광장에서 열렸고 슬픈 일이 참 많았던 오월을 눈물 대신 시민의 축제로 승화시키자는 취지에 공감하며 참석했다. 예전에 비해 확실히 숙연함은 줄어들었고 가족 단위 소풍 나오듯이 즐기는 시민들도 많이 보이고 한층 밝아진 분위기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월의 눈물을 아니 말할 수는 없었다. 1980년 이후 오월은, 광주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 찬란한 봄이, 이 따스한 햇살이, 계절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 싱그러운 계절을 영원히 유폐당한 사람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작년에 이 책이 출간됐을 때 많은 찬사를 들은 것을 알고 있다. 빨간책방 게스트로 한강 작가가 나왔을 때, 글에서 느껴지는 그 차분함이 작가의 목소리와 많이 닮아 있어서 신기해했던 것도 기억난다. 아껴두었던 책을 오월에 읽고, 그 오월이 다 지나기 전에 기록해 두려 한다.
5.18당시 이 책에서 '소년'에 해당하는 주인공 동호는 중3 학생이었다. 또래보다 작고 어려보여서 초등학생으로까지 여겨졌던 그 소년이, 계엄군을 피해 함께 도망치던 단짝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다. 죽음은 너무 순식간이었고 너무 끔찍했고 자지러지게 무서워서 소년은 자신이 목격한 것을 말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죽음은 마음 깊이 새겨져서 무엇이든 해야 했다. 소년은 도청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도왔다. 매일매일 감당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시신들이 몰려들었다. 도대체 이들이 왜 이런 꼴로 죽어야 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지만, 역시나 알 수 없던 것은 유족들의 행동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17쪽
그렇게 교육을 받았고 그게 당연한 세상에서 살아오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개죽음 당한 내 가족이 폭도가 아님을, 빨갱이가 아님을 이렇게라도 해서 증명받고 싶었던 건 또 아닐까. 이들은, 그들은 이미 낙인 찍혔다는 것도 모른 채... 이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마지막으로 정대를 본 건 동네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였다. 모습만 본 게 아니라, 옆구리에 총을 맞는 것까지 봤다. 아니, 정대와 너는 처음부터 손을 맞잡고 선두로, 선두의 열기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귀를 찢는 총소리에 모두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공포다! 괜찮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 대열로 돌아가려는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의 손을 놓쳤다. 다시 총소리가 귀를 찢었을 때, 모로 넘어진 정대를 뒤로 하고 너는 달렸다.-31쪽
정혜신 박사가 광주의 트라우마로 지금까지도 힘들어하는 분의 상담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분은 자신의 가족과 이웃이 죽어나가고 있는 그 상황에서 혼자 살아남은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었다. 정혜신 박사가 물었다. 그때 몇 살이었어요?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아주 어렸었다. 다시 물었다. 그 나이의 어린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상담자도 동의했다. 또 다시 물었다. 지금이라면, 어른이 된 지금이라면 달리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상담자는 망설였지만 여전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맞다고 대답했다. 정혜신 박사가 말해주었다. "당신 탓이 아니에요."
소년의 탓이 아니었다. 손잡고 달렸지만 그 손을 놓친 것도, 혼자 도망친 것도, 차마 말하지 못한 것까지도 모두... 하지만 소년은 묵묵히 이 비극을 열다섯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5월 27일 가장 뜨겁고 비참했던 광주의 도청에서 산화했다. 그리고 이 소년의 이야기는 실화다. 친구 정대까지는 몰라도, 열다섯 소년의 이 죽음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다.
작품은 제목의 주인공 '소년' 동호와 선주만 '너' 혹은 '당신'으로 지칭했고, 나머지 등장 인물들은 모두 1인칭으로 묘사했다. 이미 죽은 정대는 혼백이 된 채로 이야기를 진행시켰고, 나머지 인물들은 시간 차를 두고서 광주와, 광주 이후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때 도청에 있었던 그 학생, 그 청년, 그 여공들의 이야기 말이다. 그들 중 누구도 광주의 그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들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은 늘 광주의 그 시간이었다. 마치 온몸에, 유전자에 새겨진 것처럼... 이미 온 정신과 마음이 모두 그때 그 시간에 붙박혀 있는 채였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물을 잠가주세요. 손바닥에서 배어나온 땀으로 수화기가 끈적끈적했다. 예에, 의논해보겠습니다. 민원실 직원들은 인내심 있게 그녀를 응대했다. 꼭 한번 나이 든 여사무원이 말했다. 그만 전화해요, 학생. 학생 같은데 맞지요. 물이 나오는 분수대를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 잊고 이젠 공부를 해요.-97쪽
고3 학생이었던 은숙은 날마다 도청 민원실에 전화를 했다. 제발 분수대의 물을 꺼달라고. 아직도 초상집인데, 아직도 눈물 바람인데, 눈치도 없이 찬란하게 물방울 부서뜨리는 분수대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린 학생이던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99쪽
모든 출판물이 사전 검열을 당하고, 검은 먹칠이 죽죽 그어지던 시절, 그래도 진실을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연극을 올렸다. 한줄한줄 이어질 때마다 모든 싯귀가 다 자신들의 이야기 같아서, 은숙은 이 모든 것들이 초혼곡으로 들린다. 그리고 소리 없이 곡을 하는 연극 단원들 속에서 동호를 본다.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뜨고 소년을 본다. 온 삶이 장례식이 되어버린 몸으로 말이다.
김진수는 우리 중에서도 특별히 변칙적인 고문을 더 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 외모가 여성적이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
성기를 꺼내 탁자에 올려놓게 하고, 나무 자로 내려치겠다며 위협했다고 했습니다. 하체를 발가벗기고 영창 앞 잔디밭으로 데려가, 팔을 뒤로 묶고 엎드려 있게 했다고 했습니다. 굵은 개미들이 세시간 동안 김진수의 사타구니를 물었다고 했습니다. 석방된 뒤 거의 매일 밤 벌레와 관련된 악몽을 꾸었다고 들었습니다. -109쪽
이것도 실제 증언으로 들었던 내용이다. 저런 고문을 받았던 분이 의사가 되어 광주로 돌아와서 트라우마를 겪는 시민들을 돌보고 있다는 이야기. 고문을 받을 때, 이대로 대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는 이야기도 했다. 저것이 비단 남자에게만 해당되었겠는가.
삼십 센티나무 자가 자궁 끝까지 수십번 후벼들어왔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소총 개머리판이 자궁 입구를 찢고 짓이겼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 -166쪽
옮겨 적는 것도 누가 될까 저어되는 그런 장면이었다. 제 몸을 증오하고, 스스로를 경멸하게 만드는 고통과 모욕이 지속되었다. 그날 군인들이 지급받은 탄환은 모두 팔십 만발. 도시의 인구가 40만이었다는 것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광주의 시민 모두를 죽일 수 있는 탄환을 지급한 것이다. 그럴 필요를 느꼈다면, 정말 실행에 옮기지 않았을까? 그들 인간 백정들은....
성희 언니는 나와 달라.
언니는 신도 믿고 인간도 믿으니까.
난 한번도 언니에게 설득되지 않았어.
오직 사랑으로 우릴 지켜본다는 존재를 믿을 수 없었어.
주기도문조차 끝까지 소리 내 읽을 수 없었어.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한 것같이 아버지가 내 죄를 사할 거라니.
난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아. -151쪽
영화 '밀양'에서 자신의 아들을 유괴해서 살해한 자를 용서하려고 했던 전도연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이미 구원받았다고 말을 하는 유괴범의 고백에 신을 부정하고 자신의 신앙을 던져버린다. 그리고 그 신을 향해 도전하듯이 폭주하고 만다. 영화 개봉 당시 읽었던 어느 칼럼에서 유대인들은 이런 일이 있을 때 피해자에게 먼저 가서 용서를 구하고 그 다음에 신에게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했다. 어쩌면 이런 식의 가르침은 한국식 개신교에서나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선주의 저 고백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사하지 않고 사함 받지 않겠다는 저 다짐! 고 김대중 대통령께 가장 원망스러운 것 한가지는 학살의 주범들을 사법적으로 용서했다는 것. 희생자와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아무리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월권이었어요.
만약 만화처럼 내게 데쓰노트가 있다면, 제일 첫장에 광주의 학살에 책임있는 자를 제일 먼저 올리고 싶다. 모든 사실을 스스로 밝히고 죽는다... 뭐 이런 식으로. 그러나 그것은 모두 의미 없는 가정과 상상일 뿐. 현실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게다가 제2의 광주, 제3의 광주가 탄생하고 있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207쪽
근래에 보고서 또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문구는 "광주 유가족이 세월호 유가족에게"였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 국가 폭력으로 가족을 두번 세번 잃어야 했던 그들 말이다. 용산에서, 세월호에서... 그렇게 몇 번이나 광주의 비극은 재현되고 재생되고 재발하고 말았다.
사실 고민했습니다. 나는 할 말도 없는데 만나면 뭐하나. 그러다가, 어머니가 살아 계셨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니까.
그럼요, 어머니가 계셨다면 망설이지 않고 만났을 겁니다. 놔주지도 않고 끝없이 동호 이야기를 했겠죠. 삼십년 동안 그렇게 사셨습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허락이요? 물론 허락합니다. 대신 잘 써주셔야 합니다. 제대로 써야 합니다. 아무도 내 동생을 더 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써주세요. -211쪽
동호의 형이 작가에게 해준 이야기이다. 역시 정혜신 박사와 남편 분의 말을 빌자면, 사람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면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한다고 한다. 죽은 아이가 영희라고 한다면 영희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미안해서 다른 아이 이름을 붙여서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아이의 이야기를 피한다고 한다. 죽은 아이를 언급하는 게 미안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분들께는 더더욱 그 아이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다고. 그들은 아이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한다고, 마치 20분 이야기한 것처럼 두시간도 세시간도 이야기할 수 있는 분들이라고.
에필로그를 읽으면서 한강 작가가 얼마나 온몸으로 울며, 또 아파하며 이 글을 썼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작품에 몰입하다 보면 꿈도 꾸고 온전히 매료되어서 매소드 연기하듯이 취할 수 있다고 얼마든지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한강 작가는 이 이야기와 인연이 닿아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바로 이 작품의 '소년'과 말이다.
작가는 작품으로 광주의 비극을 고발하고 진실을 증언했다.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이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인은 음악으로, 미술가는 그림으로, 배우는 연기로... 교사는 가르치고 학생은 귀를 열고 배워야 한다. 아무리 그래도 바뀌지 않는다고, 투표해봤자 그놈이 그놈이라고, 세상은 이따위라고 울부짖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포기하기를, 그렇게 좌절하기를...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용산의 불구덩이를 만든 자들이, 저 바다 밑에 소중한 생명을 수장한 자들이, 그래놓고 그 모든 것들을 덮고자 하는 자들이 바라고 있을 테니까.
진실은 쉽게 밝혀지지도 않고, 진실을 전달하는 것도 어렵고, 그걸 지키는 것도 지난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춰서는 안 된다. 김대중 대통령님이 하셨던 것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면 담벼락에 침이라도 뱉어야 한다. 그렇게 아주 힘겨운 한걸음을 우리는 걸어내야 한다. 같이 손잡고, 함께 힘을 내어서 한걸음을......
그러니까 우리 독자들은, 이런 책을 읽고 또 읽고 주변에도 권하자. 놀라운 문학작품이면서 빼어난 르포작품이라고, 신형철 평론가의 추천사처럼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이라고, 기꺼이 추천하자. 이 역시 우리가 할 수 있는 한걸음이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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