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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을 공개합니다 - 하나의 지구, 서른 가족, 그리고 1787개의 소유 이야기
피터 멘젤 지음, 김승진 옮김 / 윌북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헝그리 플래닛'과 '칼로리 플래닛'에 대한 호평을 알고 있다. 그 덕분에 책도 소장하고 있지만, 읽지는 못한 상태에서 그 책들의 모태가 된 이 책을 만났다. 1992년 말에서 1994년 초에 30개국의 평범한 가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15명의 사진작가들이 꼬박 2년을 바쳐서 만든 이 책은, 작가들이 전 세계 30개국의 평균 가족을 찾아가 일주일간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들과 그들의 삶의 현장을 사진으로 담아낸 것이다. 우리가 가진 물건들의 의미와 그것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력, 나아가 지구의 미래를 생각하는 소비란 무엇인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 (헝그리 플래닛은 전 세계 서른 가족이 일주일 동안 소비하는 식품 전체를 보여 주는 작업이었다!)
이 사진을 찍고서 벌써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따라서 당시에 평균치로 보였던 모습들은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너무 옛날 것들이다. 그렇지만 나라에 따라서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을 사는 경우도 있고, 누군가는 전쟁으로 더 열악해졌을 것이고, 누군가는 급작스러운 물질적 풍요를 맛보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제시하는 지표들은 지금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감안하고서 봐야 한다.
시작은 아프리카 대륙부터였다. 말리의 가난한 진흙마을에 살고 있는 나토모 씨 가족의 모습이다.
그들이 갖고 있는 살림살이가 너무 소박해서, 아니 너무 초라해서 충격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 251달러의 나라에 많은 걸 기대할 순 없지만 식구수보다도 세간이 더 적은 것처럼 보인다. 가진 게 없어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는 물론 없는데, 20세기 말이어도 이건 너무 심한 게 아닌가... 싶었다.
세계의 텔레비전이다. 20년도 더 지났으니 지금 보면 구형 중의 구형이다. 그렇지만 저 볼록한 TV를 우리집에선 작년까지 사용했다. 뭐, 잘 나오기만 하면 되는 거지만, 사실 잘 나오지 않았으므로(16:9 화면 재현이 되지 않으므로) 바꿨다. TV가 인류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보인달까. 그나저나 역시 TV를 가장 잘 보는 방법은 편안한 쇼파 앞인 건가?
아시아의 몽골로 가보자. 집안의 세간 살이를 모두 공개하는 가장 큰 사진을 찍은 장면인데, 몽골의 이동식 천막집 게르는 가장 적은 노동력으로 이 사진을 완성시키게 만든 일등공신으로 보인다. 그냥 천막 한쪽만 걷어냈다. ^^ 아버지가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물건이 텔레비전인데, 그 순위답게 제일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2위의 부국이었던 일본의 가장 평범한 가족의 집을 공개하고 있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성공한다면 다른 나라도 문제 없을 것 같아서 첫번째 사진을 일본으로 골랐다고 한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복닥대는 도쿄에서 한 가족이 가진 물건을 죄다 늘어놓을 만한 공간부터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좁은 집에서 나온 물건들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다. 사진에서부터 일본 느낌이 난다.
일본 다음은 중국인데 이 사진을 찍던 당시에 유엔 183개국 중 부유한 순위로 149위 였다고 한다. 하하핫... 세상 참 많이 변했다.
미국의 평범한 가족이 사는 모습을 공개했을 뿐인데, 확실히 다른 집들에 비해 부티가 났다. 엄마 아빠의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 공통적으로 성경이었다. 당시 지표로 선진국 중 꾸준히 교회에 나가는 사람 비중 1위를 차지한 나라 답다. 이렇게 신앙을 중시하는 나라인데... 참 역설적이다.
이 책에 소개된 가족들은 대체로 웃는 얼굴이었다. 꾸민 웃음이 아니라 정말 화사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이 묵직해졌다.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없다고 엄마 아빠가 동시에 말했다. 가치 있는 것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전형적인 저녁 식사로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참으로 고단하고 가난한 삶이다.
이렇게 먹을 게 많은 세상인데 저녁을 늘 굶는다니... 설마 종교적 이유의 단식인 걸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아이슬란드가 이렇게 잘 사는 나라인 줄 몰랐다. 뭐 몇 년 전에 크게 휘청이긴 했지만...
이 추운 북국의 나라는 겨울 해가 짧아서 사진 찍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다. 준비 마쳐놓으면 해가 질 시간이니까.
악기를 연주하는 가족이라니, 정말 근사한 걸!
아이슬란드의 역사를 축약해서 알려주고 있다. 오, 관심 가는 걸!
세계의 화장실이다. 좌변기라도 있는 곳과 구멍 하나 덜렁 있는 곳들이 동시에 눈길을 잡는다. 쿠웨이트 화장실이 가장 번쩍번쩍 빛났다는 게 최대의 반전이랄까.
이 작품은 그 후 20여 년 뒤 이 나라들의 평범한 가족들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재취재를 하면 더 의미있을 것 같다.
문득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쓸데없는 물욕으로 갖고 싶은 건 얼마나 많은지... 외적으로만 풍요롭고 내적으로는 빈곤한 것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나는 둘 다 풍요롭기를 원하지만....;;;;
이제 헝그리 플래닛과 칼로리 플래닛을 읽어야겠다. 그쪽이 더 자극적일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