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 - 소중한 것은 한 글자로 되어 있다
정철 지음, 어진선 그림 / 허밍버드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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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다

진다

 

꽃은 아름다움을 가르쳐 주는 게 아니라

아름다움은 오래 가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19쪽

 화무십일홍이라고 했지...


 

씨와 열매 사이에는 세월이 있다.

그것은 비, 바람, 곤충의 습격을 견디는 시간.

어떤 씨도 세월을 생략할 수 없다.-21쪽

 질러갈 수 없다. 누구도. 그건 참 공평하네......



 

봄에게 배울 점은 딱 하나, 뛰어난 위치 선정이다. 겨울 다음이라는 위치선정이다. 추운 겨울이 없었다면 봄은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 평범한 계절이었을 것이다. 내 능력을 키우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내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곳에 나를 데리고 가는 일이다.-22쪽


겨울 다음에 다시 가을이, 그리고 여름, 그 다음에 봄이 와서 다시 여름으로 회귀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어릴 적에 생각하곤 했지. 너무 급작스러운 온도 변화 때문에 말이야...


 

큰방이 큰방인 것은

곁에 작은방이 있기 때문이다.

 

작은 방이 사라지는 순간

큰방은 단칸방이 된다. -29


옷방이 있고 욕실이 있고 주방이 있고 서재가 있고 공부방이 있고 다용도 룸이 있고 있을 건 다 있다. 다만 칸막이가 없을 뿐......


 



삶은 한 장의 풍경화. 산이 있고 나무가 있고 물이 흐르는 풍경화.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달이 뜨는 풍경화. 때론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바람이 부는 풍경화.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저 그런 풍경화. 시시하고 지루하고 하품 나오는 풍경화. 그런데 잘 살펴보면 조금은 특별한 풍경화. 그림 속 어딘가에 내가 등장하는 풍경화. 그러니까 풍경화 속에 자화상이 들어 있는 풍경화. 자화상이니까 내 손으로 그려야 하는 풍경화. 하루에 점 하나라도 찍어야 하는 풍경화. 붓이 없으면 손에라도 물감을 묻혀야 하는 풍경화. 먼지가 쌓이면 안 되는 풍경화. 먼지 대신 세월을 쌓아야 하는 풍경화. 세월이 쌓이면 깊이가 쌓이는 풍경화. 깊이가 쌓이면 쉽게 탈색되지 않는 풍경화. 남의 집에 걸어놓을 수 없는 풍경화. 남에게 보여 주는 일에 정신 팔리면 안 되는 풍경화. 처음부터 끝까지 남에게 다 보여줄 수도 없는 풍경화. 남에게 같이 그리자고 조를 수도 없는 풍경화. 누구나 딱 한 장씩만 그려야 하는 풍경화. 처음부터 다시 그리겠다고 떼를 쓰면 안 되는 풍경화. 하지만 실수나 실패가 얼마든지 허용되는 풍경화. 잘못 그은 선, 잘못 칠한 색도 그 위에 덧칠을 하면 다 용서가 되는 풍경화. 등을 돌리지 않는 풍경화. 기다려 주는 풍경화. 그러니 쉽게 찢어서도 안 되고 마지막 순간까지 붓을 놓아서도 안 되는 풍경화. 다 그리고 나면 누구나 ‘그리 나쁘지 않았던 여행’이라는 똑같은 제목을 붙이는 길고 긴 풍경화. -44


내 손으로 그려야 하는 풍경화... 먼지 대신 세월을 쌓아야 하는 풍경화... 그리 나쁘지 않았던 여행이었다고... 

우리 모두 그리 말할 수 있는 풍경화 한폭 그려내야지. 암 그래야 하고 말고...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고

안 심은 데 안 난다.

 

기적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심는 것은

 

콩이나 팥이 아니라

안이다.-59



그래, 그러니까 로또에 당첨되려면 로또를 사야 하지 않겠어? 



 


 

시작이 반이다.

 

나머지 반은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끝내는 것이다.

 

저지르는 게 반,

믿는 게 반이다. -63

 그 믿음이, 참으로 힘들단 말이지. 무엇보다도 나를 믿어내는 게 말이야. 

 


 

탑은,

만든다고

하지 않고

쌓는다고

한다.

노력

위에

노력을,

정성

위에

정성을

쌓아야

탑이

솟는다.

 

Top도 그렇다. -66

글의 모양도 탑같네. 의도된 글자 쌓기...



 



별을 보려면 하늘을 보지 마세요. 땅을 보세요. 당신의 발끝 1cm 앞을 보세요. 그래요., 그곳이 별이에요. 당신도 별에 살지요. 너무 가까워 잘 보이지 않는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에 살지요. 우리의 눈은 지독한 원시. 가까이에 있는 아름다움은 오히려 잘 보지 못하지요. 가까이에 있는 사람도. 가까이에 있는 행복도.-97쪽



이런 문장 앞에서 지구는 별이 아니라 행성이라는 썰렁한 지적질은 하지 말자.

 


 

왼손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오른손을 만나는 일이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라고

친구의 성공에 박수를 보내라고

신은 우리에게 두 개의 손을 주었다.-104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자. 그 손이 언젠가 나를 향해 뻗어올 것이다. 언젠가는, 어떻게든...

 


 

아름답다, 의 첫 글자는

아!

감탄사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감탄부터 하라는 뜻이다. 느낌을 억누르지 말고 감정이 시키는 대로 반응하라는 뜻이나. 너무 깊이 들여다보지 말고 너무 세세히 분석하려 들지 말라는 뜻이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아름다운 것에서 아름답지 않은 이유를 찾아내려는 사람이다.

 

불쌍하다, 의 첫 글자는

불!

부정이다. -118


안 될 이유부터 찾는 당신, 변명만 찾는 그 입을 닫으라. 



 


 

깊은 밤이면,

잠 못 드는 새벽이면,

우리는 최선을 다해 외로운 척한다.

 

마치 낮엔 외롭지 않았던 것처럼. -142


모두들 그만큼 외롭다. 그러니까 혼자만 서러운 척은 이제 그만... 


 

결혼은

 

격이 맞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라

결이 같은 사람과 하는 것이다.

 

격혼이 아니라 결혼이다.-174


그 결맞는 사람, 대체 어디에 있는 거지? 일단 좀 보여달라, 달라, 달라......

 


 

총은 불법 무기이고 입은 합법 무기이다.

 

기능은 같다. -186



말로 지은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말로 입힌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새삼 깨달았던 지난 한주이기도 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했던 말들, 내가 들었던 그 말들...

당장 떠오르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워지지 않는다. 버려지지 않는다.

이고 지고 새기고 가야 한다. 그러니, 그 입을 조심하라. 아주 살벌한 무기이니까.



 

신은 당신을 위해 인생이라는 곡을 만들었고 가사는 붙이지 않았다. 가사는 당신 몫으로 남겨 놓았다. 신 작곡, 당신 작사.이 얼마나 행복한 작업인가. 자, 이제 악보 한 귀퉁이에 신이 육필로 쓴 가이드라인을 숙지하고 펜을 들면 된다.

 

어떤 가사를 붙여도 좋습니다. 후렴이 있어도 좋고 2절, 3절이 있어도 좋습니다. 사투리도 좋고 비속어도 좋습니다. 가슴이 시키는 대로 마구 쓰십시오. 하지만 딱 하나, 표절만은 안 됩니다. 남의 인생을 당신이 노래할 이유는 64분의 1박자만큼도 없습니다.-244




 가사처럼, 제목도 아직 미상입니다. 완성해 가는 중이라고요...


 

인생이 여든이라면

서른아홉은 아직 오전이다.

 

마흔도 쉰도

한낮이다.-294쪽


몹시, 위로가 되는 시간 알리미!


 


 

진주를 품은 조개는

함부로 입을 열지 않는다.-307쪽



가장 큰 무기도 될 수 있지만, 또 그만큼 위력적인 힘이 되어줄 수도 있는 그 입... 부디 소중히 다물고 있으라. 진주를 품듯이... 진주는 못 되어도 쓰레기는 품지 말아야지...


한글자로 된 아름다운 말들,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을 카피 달듯이 예쁘게 포장한 책이다. 기획이 신선하고 재미있는데, 때로 그 '한글자'에 너무 집착하느라 억지스러운 것들도 물론 있었다. 그렇지만 다 보고 나서 아 예쁘다~ 소리는 절로 나온다. 오래오래 두고 볼 정도는 아니라도 말이지.


리스트 중에 '왜'는 있었던가? '응'은? 아마도 '강'은 있었겠지? '공'은? '돌'도 좋다. '눈', '코', '귀'.. 소중한 한 글자가 아주 많다. 찾아보면 더 나오겠지. 한글자 아니어도 좋은 것들, 필요한 것들은 물론 많지만, 한글자의 여운이 크다. 가벼워서 더 무거운 한글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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