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과학

제 2324 호/2015-02-11

추천하기

“에이~ 취! 에이오오이이~ 취히!”

두꺼운 이불을 돌돌 말고 앉아서 연신 재채기를 해대는 태연. 감기에 아주 제대로 걸렸다. 아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온병에서 뜨끈한 보리차를 따라 태연에게 준다.

“어쩌다 이렇게 홀딱 감기에 걸렸어. 옷을 얇게 입는 애도 아니고, 집이 추운 것도 아니고, 주변에 감기 걸린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때,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태연의 목도리와 장갑이 아빠의 눈에 들어온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잽싸게 그것들을 들고 킁킁 냄새를 맡는 아빠, 순간 안쓰러운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태연의 머리를 콕 쥐어박는다.

“아야! 지금 환자한테 폭력 쓰시는 거예욧??!!”

“아빠가 목도리랑 장갑 자주자주 빨아야 된다고 했지! 저렇게 폭 삭은 홍어 냄새가 날 때까지 목도리를 안 빠는데 감기에 안 걸리고 배기냐?”

“헐, 과장이 너무 심하신 거 아녜요? 겨우 이틀 안 빤 양말 수준이더구먼. 그리고 목도리 더러운 거랑 감기랑 무슨 상관이에요?”

“상관이 많아도, 너~무 많아요. 얼마 전 기사에서 보니까, 보통 사람들의 목도리와 장갑에 사는 세균이 온갖 오물로 가득한 쓰레기통 안쪽 면보다 무려 4배나 많다고 하더구나. 그럴 만도 한 것이, 세균은 수분과 양분으로 자라는데 목도리나 장갑은 입김과 땀 때문에 수분이 충분하고 살과 직접 맞닿아서 피부 각질 등의 양분도 넉넉하거든. 세균에게는 그야말로 낙원이 따로 없는 거지. 거기다 면섬유와 달리 겨울옷의 소재로 많이 쓰이는 아크릴이나 폴리에스테르 같은 화학섬유는 세균들이 아주 잘 번식할 수 있는 구조를 하고 있단다. 지금 네 목도리와 장갑도 다 화학섬유니까, 세균이 무척 잘 번식했겠지? 그럼 감기에 걸리겠냐, 안 걸리겠냐!”

“대박! 그러니까 세균 입장에서 보면, 제 목도리가 먹을 게 넘쳐나고 머물기에도 더없이 쾌적한 7성급 호텔이란 말씀이세요?”

“바로 그거야. 그러니 너 같으면 그 좋은 데를 떠나고 싶겠냐? 마구 번식을 해서 세력을 확장하고 싶겠지. 조사 결과, 목도리와 모자에서는 피부 질환과 호흡기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황색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이 아주 많이 나왔고, 장갑에서는 특히 장염과 탈수를 유발할 수 있는 간균(Bacillus)이 많이 검출됐단다.

“피부병이나 장염까지 걸릴 수 있다고요?”

“그러니까 귀찮다고 이빨로 장갑을 물어서 벗는 습관은 제발 좀 그만해 줄래? 그러다 장염 걸리면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세상의 많은 음식과 잠시 이별할 수도 있단 말이다. 또 봄·여름·가을 세 계절 동안이나 밀폐된 장롱 속에 있던 겨울옷을 처음에 딱 꺼내 입으면 잠시 콜록콜록 기침이 난다거나 갑자기 없던 여드름이 생긴다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바로 오랫동안 겨울옷 속에서 쑥쑥 자라난 진드기, 곰팡이 균 그리고 섬유 먼지와 같은 유해 물질 때문이란다.”

“맞아요! 겨울옷 처음에 입으면 코끝이랑 목 같은 데가 간질간질하던데, 그게 세균 때문이었구나! 그럼 겨울옷은 어떻게 관리해야 해요?”

“가장 좋은 건 물론 빨래야. 특히 목도리랑 장갑은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빠는 게 좋아. 하지만 코트, 패딩 같은 겨울옷들은 자주 빨 수가 없으니까, 베란다에서 툭툭 먼지를 턴 다음 햇볕에 한 두 시간 정도 말려주면 어느 정도는 세균 번식을 막을 수 있단다.

“내 친구 보니까 뿌리는 살균제를 쓰던데, 그럼 손쉽게 세균을 죽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일시적으로는 세균이 죽지만 수분과 먼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한 바로 다시 세균이 증식하니까 장기적인 효과를 보기는 힘들지.”

“어쨌거나 제일 좋은 건 세탁이라는 건데…”

“그렇다고 막 빨면 비싼 소재의 겨울옷을 다 버릴 수도 있으니, 무척 신경을 써야 한단다. 소재별로 주의점이 상당히 많은데, 만약 그걸 다 외우기 어렵다면 소재별로 꼭 피해야 하는 것 하나씩만 기억하는 것도 좋아요. 예를 들어, ‘니트는 더운물 NO, 울 소재는 햇볕 NO, 기능성 아웃도어는 드라이클리닝 NO’ 이런 식으로 말이야. 다운 패딩 역시 드라이클리닝보다는 집에서 미지근한 물로 빠는 게 훨씬 좋지.”

“어? 생각보다 쉬운데요? 근데 비싼 옷은 무조건 다 세탁소에 맡겨서 드라이클리닝 하는 게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아웃도어랑 다운 패딩을 집에서 빨라는 건 뜻밖이에요.”

드라이클리닝은 의류의 기능성 막을 손상시켜 특수 기능을 떨어뜨리고 발수력도 저하시킬 가능성이 높거든. 그보다는 순한 중성 세제를 이용해서 집에서 미지근한 물로 빠는 게 훨씬 안전한 방법이란다.”

“놀라운 아빠의 빨래 지식을 들으면서, 또 한 번 느꼈어요. 역시, 배움엔 실천이 최고예요. 약주 드시고 새벽 4시에 들어오신 그 망년회 만행 사건 이후, 엄마에게 벌 받느라 매일 그렇게 열심히 빨래를 하시더니. 두 달 만에 겨울옷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셨잖아요. 정말 대단해요.”

“흑흑흑. 빨래 때문에 손바닥이 온통 주부 습진이야. 눈물 젖은 아빠의 손바닥 호~ 한 번만 해주면 안 될까?”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