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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설 ㅣ 세계 작가 그림책 9
존 로코 지음, 이충호 옮김 / 다림 / 2014년 11월
평점 :
일곱살, 여덟살 정도였다. 눈이 아주 많이 왔더랬다. 사람이 다닐 수 있게 길을 만들었는데 그 바람에 양옆에 쌓인 눈높이가 어마어마해서 어리던 내 키를 넘을 정도였다. 언니들 모두 학교 가고 심심했던 나는 마당에서 눈 한바가지를 퍼서 햇볕 쏟아지는 마당에 뿌렸다. 햇빛을 받아서 반짝반짝 빛나는 눈송이가 몹시 예뻐서 혼자서도 지루해하지 않고 아주 재밌게 놀았더랬다. 어쩌면 반사도가 높은 눈 때문에 얼굴이 탔을지도 모를 그날의 기억이 종종 떠오른다. 오랜만에 그때 기억이 불려온 까닭은 이 책 때문이다.
월요일 아침!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멈추지 않고 내리던 눈은 귀가 시간에는 무릎 높이까지 쌓여버렸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온 뒤에도 눈은 그치지 않고 왔다. 덕분에 다음 날은 문이 열리지 않아 창문으로 드나들어야 했다. 어린 친구들은 온 세상을 덮어버린 눈이 신기하고 재밌을 뿐이다. 지치도록 뛰어놀던 아이들은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따뜻한 코코아를 마시며 난로 앞에서 추위를 녹이자니 발가락이 간질간질했다.
수요일에 아버지는 길을 내기 위해서 눈을 치우느라 열심이셨다. 하지만 제설차가 오기 전에는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의 눈이었다. 이제 아이들은 지겨워지기 시작했고 어른들은 걱정에 사로잡혔다.
목요일, 이 책속의 주인공은 자체제작한 이글루 속에서 추위를 피하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책 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것들 말이다!
금요일, 아이는 테니스 라켓을 이용해서 눈장화를 만들었다. 자기처럼 무게가 가벼운 아이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었다. 썰매도 끌고 왔다. 필요로 하는 물건을 사서 실어올 장비다.
토요일, 마침내 아이는 길을 나섰다. 지혜롭고 착하기까지 한 아이는 이웃집까지 모두 들러서 각각의 집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모두 접수했다. 테니스 라켓으로 만든 일종의 '설피'를 신고 1.5km를 걸어간 아이는 눈에 갇힌 집들이 필요로 하는 필수품들을 구해서 무사히 귀가한다. 지혜롭고 착하고 용감하기까지 한 아이다.
그리고 일요일! 제설차가 왔다. 아이들을 잔뜩 신나게 했던 그 눈은, 사실 위험하기도 한 자연의 흔적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까지는 몰라도 일주일 이상 되면 치명적일 수 있던 이 하늘의 흔적! 작품 속 이야기는 작가가 실제로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내용이다. 저 소년처럼 테니스 라켓을 썰매처럼 만들어 먼 길을 다녀왔던 것이다.
아이의 행보가 재밌고 놀라운 아이디어에 박수를 치고 싶고, 용기 백배, 봉사심 만배 모험에 엄지손가락 치켜세우고 싶다.
각각의 날에 화면에 낙서하듯 써준 요일들에서 시간의 변화를, 긴장의 증폭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읽은 세 권의 그림책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