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
장영희 지음, 김점선 그림 / 샘터사 / 2014년 4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장영희 선생님 글이다. 그리고 역시 오랜만에 보게 된 김점선 선생님의 그림. 두분의 조화가 참으로 곱다. 잘 어울리는 한쌍이다. 지금도 좋은 곳에서 두분이 두런두런 사이 좋게 담소 나누며 살고 계실 것만 같다.

 

바람 속에 답이 있다 - 밥 딜런

 

얼마나 많은 길을 걷고 나서야

그는 진정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흰 비둘기는 백사장에서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포탄이 휩쓸고 나서야

세상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까.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아야

다른 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친구여, 그 답은 바람 속에 있습니다.

그건 바람만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부분) -89쪽

 

밥 딜런이 고인이라고 생각했다. 응? 살아 있네? 밥 딜런이 꼬불꼬불 머리를 가진 흑인이라고 여겼다. 잭슨 파이브 시절의 마이클 잭슨 외모를 떠올렸다. 얼라, 근데 아니네? 그럼 내가 생각한 건 누구지???

 

노래도 있다. 퍼오고 싶었는데 아이프레임이라 주소만...

 

http://youtu.be/vWwgrjjIMXA

 

 

존 레논의 이매진을 떠올리게 한다. 얼마나 많은 길, 시간 뒤에 평화가 올 거냐고 묻는다면, 인류가 살아 있는 한 불가능한 건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들지만, 크리스마스 2부에 말하기에는 너무 부정적이구나.

 

음유시인으로 잘 알려진 밥 딜런의 유명한 노래 <바람 속에 답이 있다>의 가사입니다. 오래전부터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의 시들이 셰익스피어나 T.S. 엘리엇에 견줄 만하다고 책을 쓴 영문학자 소식도 신문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딜런(그가 좋아했던 영국 시인 딜런 토머스에서 따온 이름)의 시는 사람(a man)이지만 사람이라고 불리지 못하는 사람들(오랫동안 흑인 남자는 boy라고 불렸죠), 자유가 없는 사람들, 전쟁 속에서 희생되는 사람들의 '사람답게 살 권리', '생명을 지킬 권리'를 위해 싸우는 저항의 목소리, 그리고 '다른 이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줄 아는 따뜻한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그가 다른 유명한 시인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시들은 책 속에 있지 않고 우리 삶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90쪽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학급 자치 활동 시간에 두명씩 짝을 지어서 시를 발표하게 했다. 한 명은 시를 준비하고 다른 한명은 배경음악을 준비하면 되는 거였다. 내가 고른 시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못한 길'이었다. 내 짝이 무슨 곡을 준비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짝꿍 얼굴도 생각나지 않으므로...;;;;

 

그렇게 알게 된 로버트 프로스트의 이 시도 반갑다.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인생은 꼭 길 없는 숲 같아서

거미줄에 얼굴이 스쳐 간지럽고 따갑고,

한 눈은 가지에 부딪혀 눈물이 나기도 한다.

그러면 잠시 지상을 떠났다가

돌아와 다시 새 출발을 하고 싶다.

세상은 사랑하기 딱 좋은 곳

여기보다 좋은 곳이 또 어디 있을까. (부분) -117쪽

 

잠시 떠나고 싶지만 영원히 떠나고 싶지는 않은 곳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어차피 운명은 믿을 만한 게 못 되고 인생은 두번 살 수 없는 것. 오늘이 나머지 내 인생의 첫 날이라는 감격과 열정으로 사는 수밖에요. -118쪽

 

잠시 떠나고 싶지만 영원히 떠나고 싶지는 않은 곳이 바로 이 세상이고, 또 대한민국인 것 같다. 정치가 경제가 사회가 하 수상하고 어지러워서 떠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만 내가 태어나 내 모국어로 말할 수 있는 이 익숙한 공간을 영원히 떠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세상이 그런 것 같다. 오늘이 나머지 내 인생의 첫 날이라는 표현은 몹시 감동적이고 낭만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또 굉장히 아찔한 말이기도 하다. 그 옛날 무릎팍 도사에 나왔던 최진실이 다시 2,3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그 시절을 어떻게 헤치고 왔는데 다시 돌아가냐며, 지금이 제일 좋다고 말했던 게 떠오른다. 그렇게 말했던 그녀가 얼마 뒤 스스로 세상을 등지지 않았던가. 아, 역시 오늘 떠올리기엔 너무 슬픈 사람이다.

 

낙엽은 떨어지고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가을이 우리를 사랑하는 기다란 잎새 위에,

보릿단 속 생쥐 위에도 머뭅니다.

머리 위 마가목 잎이 노랗게 물들고

이슬 젖은 산딸기 잎새도 노랗습니다.

 

사랑이 이울어 가는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슬픈 우리 영혼은 지금 피곤하고 지쳐 있습니다.

헤어집시다.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그대 숙인 이마에 입맞춤과 눈물을 남기며. - 143쪽

 

이 시는 원문의 느낌이 어떨지 내가 알 수 없으나, 번역이 더 기가 막힌 게 아닐까 싶다. 사랑이 이운다는 표현도 그렇거니와 헤어집시다!라고 잘라 말하는 데에서 더 큰 사랑과 절망이 느껴진다.

 

직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따스한 공간이 도서관이다. 그곳에서 천천히, 온기를 느끼며 이 시들을 읽었다.

짧지만 황홀했던 시간이었다. 아름다운 시와, 신나는 캐롤송을 들으며 멋진 성탄 2부를 맞이해야겠지만, 현실은 어디 그렇던가.

 

그래도 오늘은 야곱과 함께 모처럼 시간을 보내는 날. 작은 촛불이 있을 것이고 와인도 있을 것이다. 잠시 다른 것들은 내려놓고 훈훈해 지자. 그래도 된다. 오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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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4 2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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