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읊조리다 - 삶의 빈칸을 채우는 그림하나 시하나
칠십 명의 시인 지음, 봉현 그림 / 세계사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열쇠/김혜순

 

역광 속에 멀어지는 당신 뒷모습 열쇠구멍이네

그 구멍 속이 세상 밖이네

어두운 산 능선은 열쇠의 굴곡처럼 구불거리고

나는 그 긴 능선을 들어 당신을 열고 싶네

저 먼 곳, 안타깝고 환한 광야가

열쇠구멍 뒤에 매달려 있어서

나는 그 광야에 한 아름 백합을 꽂았는데

찰칵

우리 몸은 모두 빛의 복도를 여는 문이라고

죽은 사람들이 읽는 책에 씌어 있다는데

당신은 왜 나를 열어놓고 혼자 가는가

당신이 깜빡 사라지기 전 켜놓은 열쇠구멍 하나

그믐에 구멍을 내어 밤보다 더한 어둠 켜놓은 깜깜한 나체 하나

백합 향 가득한 광야가 그 구멍 속에서 멀어지네 -48

 

소개된 시들이 하나같이 좋다.

그런데 아주 짧은 구절만 소개했기 때문에 전문을 찾아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책에 수록된 구절은 붉은색 강조 글씨로 표시했다. 

대부분 몇 구절 정도만 공개했다.

나머지는 여백과 그림이다.

글자수로만 따지면 책값에 어이 없어지겠지만,

그 한 구절 때문에 다른 시들을 찾게 되고,

익숙한 시인의 이름에서 빙그레 웃게 된다. 

순간을, 읊조려 보자.




 

자서/김영승


이 아름다운 밤......

내가 낯선 존재라니......

나는 참 기쁘다.

-56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김승희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어떤 일이 있더라도

목숨을 끊지 말고 살아야 한다고

천사 같은 김종삼, 박재삼,

그런 착한 마음을 버려선 못쓴다고

 

부도가 나서 길거리를 쫓겨나고

인기 여배우가 골방에서 목을 매고

뇌출혈로 쓰러져

말 한마디 못 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

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

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

그 가장 아름다운 것 속에

더 아름다운 피 묻은 이름,

그 가장 서러운 것 속에 더 타오르는 찬란한 꿈

누구나 다 그런 섬에 살면서도

세상의 어느 지도에도 알려지지 않은 섬,

그래서 더 신비한 섬,

그래서 더 가꾸고 싶은 섬, 그래도

그대 가슴속의 따스한 미소와 장밋빛 체온

이글이글 사랑의 눈이 부신 영광의 함성

 

그래도라는 섬에서

그래도 부둥켜안고

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

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

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

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66  

 

이 얼마나 따뜻한 시인가. 그래도라는 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주택가/김행숙


가정집이 무엇일까

어린 시절은 무엇일까

나는 20세기의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당신은 21세기의 어린시절을 기억한다

오늘날 주택가는 그런 곳

너희 엄마 집과 아빠 집의 규칙이 다르듯

누구나 다르게 살아가는 거야

똑같이 보이고 싶어하면서

 

큰 개를 키우는 사람은 큰 개에 의지하고

작은 개를 키우는 사람은 작은 개에 의지한다

자기 머리통보다 작은 개를 꼬옥 껴안고 우는 사람이 있겠지, 오늘밤에도 주택가는 그런 곳

버둥거리는 개가 있어

 

그것은 좋다는 뜻일까, 괴롭다는 뜻일까

말하는 개라면 사실대로 짖을까

말하는 창문이라면 수다쟁이 할멈일거야, 그녀가 마음씨 좋은 할머니래도 당신은 창가에서

더 이상의 독백을 잇지 못하리

밤에 주택가를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밤의 주유소로

환하게 달려오는 차의 속도가 부러워, 당신은 골목에서 걸어나와 골목이 없는 세계로 뛰어간다

착각처럼 무엇이 바뀔까

완전한 착각처럼 무엇을 굳게 믿을까

밤공기가 차가워, 나는 창문을 닫는다

투명한 유리창을 닫고

불투명한 유리창을 닫고 커튼을 쳐버렸다, 화가 난 듯했다

나는 보이지 않았다

-72

 

제목을 보는 순간 저 한구절이 얼마나 크게 와 닿던지......



자본주의의 사연/함민복

 

성동구 금호 4282번지

네 가구가 사는 우편함

 

서울특별시의료보험조합

한국전기통신공사전화국장

신세계통신판매프라자장우빌딩

비씨카드주식회사

전화요금납부통지서

자동차세영수증

통합공과금

대한보증보험주식회사

중계유선방송공청료

호텔소피텔엠베서더

통합공과금독촉장

대우전자할부납입통지서

94토지등급조정결과통지서

 

이 시대에는 왜 사연은 없고

납부통지서만 날아오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절실한 사연 아닌가

 

-74




삼 십 세/ 최승자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78

 

서른을 지나온 지는 한참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 울림에 공감한다. 




고독에 관한 간략한 정의/노혜경


공원길을 함께 걸었어요

나뭇잎의 색깔이 점점 엷어지면서

햇살이 우릴 쫓아왔죠

눈이 부시어 마주 보았죠

이야기했죠

그대 눈 속의 이파리는 현실보다 환하다고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기가 어려워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세상 모든 만물아 나 대신

이야기하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그러나 길은 끝나가고

문을 닫을 시간이 왔죠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기 위해서

나뭇잎이 아름답다고 했죠

-84




 

속눈썹의 효능/이은규


때론 헤어진 줄 모르고 헤어지는 것들이 있다.

 

가는 봄과

당신이라는 호칭

가슴을 여미던 단추 그리고 속눈썹 같은 것들

 

돌려 받은 책장 사이에서 만난, 속눈썹

눈에 밟힌다는 건 마음을 찌른다는 것

건네 준 사람의 것일까, 아니면 건네 받은 사람

온 곳을 모르므로 누구에게도 갈 수 없는 마음일 때

깜박임의 습관을 잊고 초승달로 누운

 

지난봄을 펼치면 주문 같은 단어에 밑줄이 있고

이미 증오인 새봄을 펼쳐도 속눈썹 하나 누워 있을 뿐

책장을 넘기는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은

출처 모를 기억만 떠나는 방법을 잊었다

 

아지랑이의 착란을 걷다

눈에 든 꽃가루를 호-하고 불어 주던 당신의 입김

후두둑, 떨어지던 단추 그리고 한 잎의 속눈썹

언제 헤어진 줄 모르는 것들에게는 수소문이 없다

벌써 늦게 알았거나 이미 일찍 몰랐으므로

 

혼자의 꽃놀이에 다래끼를 얻어온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것은 온다는 역설처럼 당신의 입김 없이도 봄날은 간다

 

화농의 봄, 다래끼

주문의 말 없이 스스로 주문인 마음으로

한 잎의 기억을

당신 이마와 닮은 돌멩이 사이에 숨겨놓고 오는 밤

책장을 펼치면 속눈썹 하나 다시 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올 거라 믿는, 꽃달

-88

 



푸른 밤/나희덕


너에게로 가지 않으려고 미친듯 걸었던

그 무수한 길도

실은 네게로 향한 것이었다

까마득한 밤길을 혼자 걸어갈 때에도

내 응시에 날아간 별은

네 머리 위에서 반짝였을 것이고

내 한숨과 입김에 꽃들은

네게로 몸을 기울여 흔들렸을 것이다

사랑에서 치욕으로

다시 치욕에서 사랑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네게로 드리웠던 두레박

그러나 매양 퍼올린 것은

수만 갈래의 길이었을 따름이다

은하수의 한 별이 또 하나의 별을 찾아가는

그 수만의 길을 나는 걷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생애는

모든 지름길을 돌아서

네게로 난 단 하나의 에움이었다

-90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최승자

 

한 숟갈의 밥, 한 방울의 눈물로

무엇을 채울 것인가,

밥을 눈물에 말아 먹는다 한들.

 

그대가 아무리 나를 사랑한다 해도

혹은 내가 아무리 그대를 사랑한다 해도

나는 오늘의 닭고기를 씹어야 하고

나는 오늘의 눈물을 삼켜야 한다.

그러므로 이젠 비유로써 말하지 말자

모든 것은 콘크리트처럼 구체적이고

모든 것은 콘크리트 벽이다.

비유가 아니라 주먹이며,

주먹의 바스라짐이 있을 뿐,

 

이제 이룰 수 없는 것을 또한 이루려 하지 말며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도다고도 말하지 말며

 

가거라, 사랑인지 사람인지,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죽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다만 무참히 꺾여지기 위하여.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내 몸을 분질러다오.

내 팔과 다리를 꺾어

 

 

-94


문득, 나를 위해 살아줘요... 라고 말했던 사람이 생각나서 잠시 심호흡을 해야 했다.


 

개여울/김소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97

 심수봉이 부른 개여울을 들어보았다. 여전히 처량맞고 청승맞은, 그러나 그게 매력적인 노래였다.



새우튀김/문숙


바다를 버리고서야 몸을 쭉 폈다

단단한 껍질을 벗고

노란 삼베옷을 입고 기름 속으로 뛰어든다

뜨거움이 스미자

육신에 남아있는 생의 관성으로

바싹 몸을 옹그린다

 

작은 삶이란

살기 위해 자주

제 꼬리를 확인하며 몸을 구부려야 하는 것

조금씩 익어가며

구부리고 펴던 기억마저 버리고 있다

 

튀김솥 밑바닥에 가라앉아

제 몸을 다 익힌 새우

점점 부풀어올라 반달이 되어간다

바닥을 박차며 몸을 솟구친다

창밖에선 하늘까지 물기둥 세우는 빗소리

기름 위를 둥둥거린다

오늘밤

캄캄한 하늘에 수염 달린 반달 여럿

노랗게 뜨겠다

-112

 

인터넷 정육점/조인선

 

달력을 넘기다 손이 찢어졌어요

어머니가 웃으시며 붕대로 감싸주셨어요

 

얘야 시간은 날카롭단다

  

-118

 

그야말로 촌철살인!!




결빙/정호승

 

결빙의 순간은 뜨겁다

꽝꽝 얼어붙은 겨울 강

도도히 흐르는 강물조차

일생에 한번은

 

모든 흐름을 멈추고

서로 한 몸을 이루는

순간은 뜨겁다

    

-128

 




슬픔을 모르는 사람/황혜경


몰라?

 

가장 쉬운 말로 하려고 했어

슬픔은 그런 것이니까

침대에서 양발로 딛고 내려오는 아침과

양발로 밀고 시작하는 젖은 아침의 무게가 다르지만

스케일이 큰 문장 뒤에 숨은 자잘한 단어들처럼

슬픔은 함께같이 원래 그런 것이니까

 

두 사람이 네 사람의 장례를 함께 치르고

나눠 갖고 난 후에 두 사람은

정말 내가 당신 같고 당신이 나 같다, 라고 했대

 

나는 함께같이 슬픈 것들과

더 잘게 애틋하게 슬픔을 잘근잘근

 

당신은 애써 슬픔의 영감(靈感)을 걷어차는 사람

부디, 제발이라는 말을 잘도 잊어버리지

 

당신은 포기가 빠르고 정해진 자리에 앉는다

자칫, 절도 있는 태도로 보여 당신은 대범한 사람이 되기도 하지만

몇 개의 슬픈 알맹이들이 어떻게 굴러가다가 짓밟히고 터지고 흩어지고 사라지는지도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고

짜임새라고 믿었던 올들이 어떤 계기로 풀리고 묶이고 매듭이 다시 생기는지 보이지 않는 그 슬픔의 과정을 모른다

 

고아에 감상적으로 접근하면 고독한 아이

나는 고아를 잘 모르지만 버려지고 외로워서 슬픈 아이

함께같이 슬픈 나도

 

발이 가장 은밀한 눈물의 부위라고 내가 숨겼을 때 주로 조증(躁症)인 당신의 성기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몇 도였을까 또 나를 비웃었을까, 생각하면

붉가시나무를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더 붉은지 더 따가운지

나는 난대의 훈풍 한가운데 서 있어도 춥고도 외롭고도 슬프다

 

두 사람이 네 사람의 장례를 함께 치르고

나눠 갖고 난 후에 두 사람은

정말 내가 당신 같고 당신이 나 같다, 라고 했대

두 사람은 부부였대

 

정말 몰라?

 

나는 함께같이 슬픈 것들과

당신이 없어도 정말 몰라도

슬픔과 슬픔을 모르는 사람의 거리를 이해하면서

나는 함께같이 슬픈 것들과 같이

나는 생각이 없는 사람보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을 나는 더 모르고 싶고

-148

 

근래, 종교적 성향보다 정치적 방향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게 된 것처럼, 생각이 없는 사람보다 슬픔을 모르는 사람, 공감할 줄 모르는 사람이 더 싫다. 그야말로 실격!



나만 없는 방/이제야


혼자 있어도 나를 들킨 적이 있다

 

내가 묻은 물건들이 걸을 때

나의 날들이 매달려 있다

 

하지 못한 말을 커튼에게 한다

수요일의 햇빛을 잡은 두 손은 어디 있니

말린 내 손을 맞잡으며 커튼을 닫았다

 

듣지 못한 말을 침대에게 한다

왜 오늘 밤은 천장에 별이 뜨지 않을까

접어두었던 책을 어제를 위해 읽었다

 

놓지 못한 말을 신발장에게 한다

우리가 걷던 시계 없는 길은 벽이 되었나

초인종이 없이도 외출하는 법을 배웠다

 

나는 없는데 방 안 가득

나를 아는 내가 있다

 

닦아도 닦이지 않는 시계가 있는 방

잊어도 잊히지 않는 달력이 있는 방

꿈에서 깨어도 다시 꿈을 꾸는 방

 

바닥 구석에 내 그림자도 있었다

-152

 



돌아와 보는 밤/윤동주


세상으로부터 돌아오듯이

이제 내 좁은 방에 돌아와 불을 끄옵니다

불을 켜 두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옵니다

그것은 낮의 연장이옵기에-.

 

이제 창을 열어 공기를 바꾸어 들여야 할텐데

밖을 가만히 내다보아야

방안과 같이 어두워 꼭 세상은 같은데

비를 맞고 오던 길이

그대로 이 속에 젖어 있사옵니다

 

하늘의 울분을 씻을 바 없어

가만히 눈을 감으면

마음 속으로 흐르는 소리

이제 사상이

능금처럼 저절로 익어 가옵니다

-162

 




/황인숙


밤은 네가 잠들기를 바란다

 

자장 자장 자장

 

밤은 차곡차곡 조용해진다

 

밤은 너를 잠재우길 바란다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자장 자장

 

밤은 혼자 있고 싶은 것이다

-170

 

밤조차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을...

그 고요한 밤을 제발 깨우지 말기를......




아스팔트 위의 지렁이/김개미

 

여기까지 오느라고 숨이 찬 게 아니야,  

숨이 차서 여기까지 왔어

 

-174



 

완벽한 불판/금란


친절하게 고기가 익어갈 때 우리는 젓가락으로 침묵을 만지작거렸네

 

눈에 까만 연기가 들어온다

연기와 연기와 연기가

 

불판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읽지 않은 책으로 쌓여가고

젓가락은 여전히 빈 페이지를 넘기고 있네

 

모든 오해는 시간을 까맣게 태우고 있지

 

핏방울이 떨어지는 불판 위

고뇌와 고통의 무늬가 다른 사람의 얼굴로 오는 저녁

드디어 골목이 어두워지고

늙은 거리의 누추한 냄새처럼 그곳에 도착했네

 

맨살을 뒤적이는 손가락은 하나씩 잘려 나가고 있다

 

어둠이 불빛에 데이듯 시간의 속살을 살짝 건드렸을 뿐인데

그들은 영원히 익지 않을 젓가락으로 앉아있네

 

불 안의 나는 고기처럼 뜨겁고

불 밖의 그들은 서늘해

안과 밖은 다른 나라의 골목으로 여기서 멀어지네

 

불판은 까맣게 타고 있는데

내 얼굴은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다

-188


완벽한 불판이라는 제목에서, 친절하게 익어가는 고기를 상상하면서 한 친구가 떠올랐다. 

고기를 가지고 장난칠 수 없는 친구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