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루시(뤽 베송, 2014)
뤽베송 감독이라니 굉장히 속도감 있는 영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목소리만 출연해도 참으로 핫했던 스칼렛 요한슨 주연이니 또 기대가 됐고, 한국배우가 우리말로 연기한다고 하니 최민식의 출연도 반갑기만 했다. 그래서 무척 시너지 효과가 좋을 거라고 여겼던 작품 루시는 그야말로 졸작이었다.
연기를 못해서가 아니라, 내용이 너무 황당무계해서가 아니라, 좀 급이 맞아야 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루시가 무협으로 치면 60갑자의 갑절의 갑절로 힘이 뛰고 있지만 인간 최민식은 그에 비하면 너무 먼지 같지 않은가.
루시가 우주와 물아일체가 되어가는 판에 80년대 느와르를 연상시키는 맞불 캐릭터는 격이 맞지 않는다.
가볍게 보기에도 많이, 많이 실망스러웠다.
★★☆
61. 두근두근 내 인생(이재용, 2014)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부랴부랴 책을 읽었다. 너무 많이 갈고 닦아서 자연스러운 멋은 부족했지만, 그래도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그런 작품이었다. 영화가 원작 소설을 넘어서는 경우는 많지 않아서 이번에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보았지만 역시나...;;;;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제몫을 해내고 원작에도 없던 힘을 실어준 것은 김갑수 옹 뿐이었다. 대사 없이도 표정만으로도 능히 제몫을 해냈다. 명불허전!
아이보다 더 아이같은 강동원은 예뻤다. '군도'의 그 서늘한 눈매는 온데간데 없었다. 송혜교는 열일곱 날나리로 보일 만큼 예뻤다. 그러나 거기까지.
아름이 역할을 어린 아이가 80대 분장을 하고서 할 게 아니라 노인 배우가 맡았더라면, 관객 반응은 더 별로였을까? 이 영화 개봉하기 얼마 전에 생을 달리 한 로빈 윌리엄스가 떠올랐다. 그가 성장 속도가 네배나 빨라 열살 나이에 40대 외모를 가진 아이 연기를 했던 '잭' 말이다. 좋은 배우들이 너무 많이 떠나간 한해였다. 갑자기 급 슬퍼지네...
★★★
62. 타짜 : 신의 손(강형철, 2014)
타짜 1편이 너무 강렬했다. 아무리 김윤석이 여전히 카리스마를 보여주어도 그때 그 맛은 아니었다. 시나리오가 기울고, 솔직히 배우도 기울지 않았던가.
아주 빠르게 화면이 변하고,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뒷통수를 치며 자극적인 장면들을 내쏟지만, 그래도 거기까지였다. 그런 눈속임이 작품의 함량을 채워주지는 못했다. 게다가 마지막 결판을 1편과 똑같이 가는 건 너무 안이하지 않은가.
이 작품에서 놀랐던 것은 신세경이었다. 평소 그녀의 별명이 베이글인 것이 이해가 안 갔는데 이번에 제대로 인증. 아, 진짜 글래머였네. 몰랐어, 몰랐어!!
까메오 급으로 잠시 나온 여진구. 그렇다면 3편엔 여진구가 주연???
★★★☆
63. 메밀꽃, 운수좋은 날, 그리고 봄봄(안재훈, 한혜진, 2014)
애니메이션 세편을 엮었다. 고딩 시절 읽었던 단편들이다. 추억에 젖어볼까나~ 하고 찾아갔는데, 버스를 잘못 타서 좀 많이 걸었다. 땡볕에. 어찌나 노곤하던지...
영화는 제목과 달리 메밀꽃 다음에 봄봄 그리고 운수좋은 날의 소개로 진행되었는데 제일 궁금했던 '봄봄' 편에서 그만 졸고 말았다. 아뿔싸.ㅜ.ㅜ
운수좋은 날의 인력거꾼 연기를 배우 장광 씨가 했다. 성우 시절 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다.^^
★★★☆
64. 자유의 언덕(홍상수, 2014)
9월은 다른 달보다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좋았다. 홍상수 감독은 워낙 호불호가 갈리는 편인데, 초기작의 언짢음과 불편함들이 근래에는 많이 옅어져서 기분 좋게 관람할 때가 많다.
이 작품에선 카세 료가 보낸 편지가 순서 없이 흩어지는 바람에, 편지를 받은 서영화가 읽는 순서에 따라 내용이 전개된다. 게다가 떨어뜨리고 줍지 못한 한장이 있기 때문에 극의 전개에는 비어버린 시공간이 생긴다. 이게 굉장히 특별했다. 그 바람에 마지막에 전개된 내용은 진짜 진행된 것인지, 꿈인지, 상상인지 여러 갈래로 생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객의 몫으로 남겨놓는 이런 결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작품은 그렇게 여지를 준 것이 참 좋았다. 루시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고, 인터스텔라도 그렇고... 여러모로 '시간'의 강력함을 느끼게 하는 영화가 많았다. 이 작품 굿굿!!
레스트리스에서 처음 보았던 카세 료. 참으로 선한 인상이다. 그리고 우리 선희에 이어 또 찌질하게 나온 이민우..ㅎㅎㅎ
권 역할을 맡은 서영화 씨는 아파보이는 배우에 참으로 적격! 화이에서도 병색 짙은 엄마 역을 했는데 깡말라서 그런지 그게 무척 잘 어울렸다. 실제로도 아프신 건 아니겠지?
★★★★★
65. 60만 번의 트라이(박사유, 박돈사, 2013)
가네시로 카즈키가 떠올랐다. 재일교포이지만 흔히 침작되는 이방인으로서의 서러움과 서글픔 대신 모험과 유머가 가득한 작품을 썼던 그 작가 말이다. 이 작품의 아이들은 재일조선인으로서 국적을 지키느라 믿기지 않을 만큼의 열악함을 딛고서 꿈을 키워나간다. 국제 경기에서 한국 학생과 만났는데 쟤는 진짜 한국 사람이 아니라 내가 오리지널이라고 말한 한국 학생 때문에 상처 받은 이야기조차도 무심하게 이야기한다. 오히려 이 밝은 분위기에 문정희의 목소리가 너무 무거워서 조화롭지 못했던 게 약간의 흠!
고백하자면, 이 작품 보기 직전에 물리치료를 받았는데, 영화 시간이 다가와서 치료 도중에 부랴부랴 극장으로 달려갔더니, 여지 없이 졸고 말았다. 작품이 재미 없었던 건 결코 아니다. 많이는 아니고 살짝 졸았지만 왠지 저 열심히 뛰는 아이들에게 무척 미안했음...;;;
환경이 사람을 만드는 터라, 이 아이들은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마치 그 어깨 위에 60만 명의 기대를 짊어지고 달리는 것처럼. 그런데도 소년다운 미소를 잃지 않는다. 여전히 씩씩하고 여전히 꿈꾸는 얼굴들이다. 보는 사람이 다 미안해질 정도로...
건강한 영화였다. 그들의 분투를 응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