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워진 바람에 알록달록한 수면 양말이 가게 진열대를 채운다. 부드럽고 따뜻해 겨울철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수면 양말. 특히 손과
발이 찬 사람에게는 연중 필수품으로 인기가 많다. 의학적으로 ‘수족냉증’이라 하는데 증상이 심한 사람은 한여름에도 수면 양말을 신는다. 겨울이면
증상이 악화되면서 마치 손과 발이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사람도 많다.
■ 창백하고 하얀 손, 부러워 말자
수족냉증은 원인에 따라 세부질환을 나눈다. 그 중 ‘레이노 증후군’은 겨울철에 증상이 가장 뚜렷하다. 찬바람을 쐬면
손끝의 혈관이 급격히 수축하면서 혈액 부족으로 손이 하얗게 변한다. 파랗게 변하기도 하는데 피가 돌지 않으면서 혈액을 통해 받아야 할 산소가
부족해져서다.
정확한 진단은 찬물에 손을 담갔다가 꺼내 혈류의 변화를 살펴보는 레이노 스캔 검사로 한다. 혈액검사도 한다.
자가면역질환인 루프스나 류마티스 관절염 환자에게서 레이노 증후군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병과 상관없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심한 경우, 체내에서
혈관을 수축시키는 물질을 차단하는 약이나 혈관 근육을 느슨하게 하는 약을 먹으면 증상이 호전된다.
말초 혈관이 막혀도(말초
혈관 폐색) 수족냉증이 나타난다. 손보다는 다리가 차고 저리며 발등과 무릎 안쪽 맥박이 만져지지 않는 특징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혈관
주변의 신경과 조직이 괴사하기 때문에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대표적인 원인은 동맥경화다. 당뇨나 고혈압, 고지혈증이 있는 사람이
손과 발이 저리면서 차가워진다면 전문의의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
막힌 부위가 넓지 않을 때는 바람이 들어가지 않는 의료용
풍선을 막힌 부위에 넣은 뒤 부풀게 하거나 금속 그물망을 넣어 막힌 부위에서 확장시켜 혈관을 뚫는다. 시술이 어려운 경우에는 아스피린이나
항혈전제로 굳은 피를 녹인다.
척추공협착증도 말초혈관폐색과 증상이 비슷하지만 혈관 문제가 아닌 신경 이상이 원인이다. 척추공은
척추 중간 중간에는 팔이나 다리로 가는 신경가지가 나오는 구멍이다. 척추공협착은 척추공이 좁아지면서 신경이 눌려 팔과 다리가 저리는 등의
통증이 생기는 병이다. 척추공에는 충격과 염증에 예민한 신경 세포들이 위치해 있다. 또 가느다란 인대가 거미줄처럼 엮여 있어 염증이
생기기 쉽다. 염증은 부기를 유발하는데 부기는 혈류의 흐름을 방해해 손과 발을 차게 한다.
두 병의 차이점은 운동 후 휴식을 취할
때 드러난다. 척추공협착증은 신경 이상으로 항상 손발이 찬데 반해 말초혈관폐색은 혈관 문제로 다리에 혈류량이 줄어드는 휴식기에는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는다.
■ 손은 따뜻한데 머리는 차다고 말한다
신경 이상으로 수족냉증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질환은 말초신경병증이다. 증상은 손발이 시리고 저리며 무딘 느낌이 드는 등 다양하다. 신경은 길이가 긴 곳부터 증상이 나타난다는 ‘길이
의존적 법칙’에 따라 발끝에서 시작돼 발목과 무릎까지 이어지고 손도 손끝에서 시작해 손목까지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막상
환자의 손과 발을 만져보면 따뜻한 경우가 많다. 혈류는 정상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뇌에서 감각을 인지하는 신경에 문제가 생겨 실제 손과 발이
따뜻해도 뇌가 차갑다고 인지하는 탓이다.
말초신경병증은 단독으로 발병하기보다 다른 병이 생기면서 함께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그 중 많은 수가 요독증(소변으로 배출돼야 할 노폐물이 배설되지 못하고 체내에 축적되는 병)이나 당뇨 등 내과적 질환이다. 하지만
증상과 원인이 다양해 30% 정도는 초기에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신경 전도 검사와 근전도 검사로
신경 상태를 확인하고 혈액검사를 통해 원인이 될 수 있는 병을 찾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뇌의 감각 오류는 척수에 문제가
발생해도 나타난다. 감각수용체는 척수를 통해 대뇌로 전달되는데 척수에 염증이나 종양이 있으면 감각 인지에 이상이 생긴다. 증상은
신경병증과 마찬가지로 팔이나 다리가 시리고 저리는 것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잘 걷지 못하거나 배뇨 장애 등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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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는 손발을 얼린다
병이 아닌데도 손과 발이 차다면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 있다. 우리 몸은 흥분하거나
긴장하면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서 손과 발끝의 혈관이 수축한다. 손과 발은 혈류양이 줄면서 자연스레 차가워지고 축축해진다. 면접이나 시험을 앞뒀을
때 손이 차가워지는 것과 같은 이유다.
스트레스의 종류는 다양하다. 긴장, 걱정과 불안, 짜증 등이 모두 스트레스다. 전문가들은
“수족냉증이 있는 사람 중에는 평소 긴장을 잘 하거나 잘 놀라고,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이 많다”며 “평소에 지금보다 긴장을 풀려는 노력과 함께
요가나 명상 등이 도움이 될 수 있다.”라고 조언했다.
수족냉증은 신체의 병 때문에 생기기도 하지만 의학적으로 마음의 병이
원인이 되기도 한다. 평소 손과 발이 차가운 사람이라면 병원을 찾기 전 마음의 여유부터 찾아보는 게 어떨까.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