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과학

제 2239 호/2014-10-15

 

태연, 마치 흡착기로 잡아당기듯 TV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감미로운 목소리로 가을 명곡 ‘거리에서’를 부르고 있는 가수 성시경에게 백만 개의 하트를 날리느라, 아까부터 옆에서 태연을 부르고 있던 아빠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화가 난 아빠, 급기야 태연의 귀에 대고 빽! 고함을 지른다.

“아이고 머니나! 그렇게 깽깽 낑낑 내시 같은 목소리로 우리 시경이 오빠 노래를 방해하시면 어떡해요!”

“뭐, 내시 목소리? 이렇게 멋진 중저음을 내는 내시가 어딨냐?! 이래봬도 아빠가 한창 때는 한석규 목소리랑 똑같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엄마도 아빠 목소리에 반해 결혼했다는 달콤한 연애 스토리를 알랑가몰라. 실제로 최근 한 소셜 데이팅 서비스가 미혼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87%의 여성이 남성의 목소리에서 매력을 느껴본 적이 있고, 무려 75%는 남성의 좋은 목소리가 호감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대답했다는구나. 그 75%의 여성 중 한 명이 네 엄마였고, 평생 아빠의 중저음을 듣고자 결혼까지 하게 된 거지. 우하하!”

“헐, 그럼 제 귀가 고장 났다는 말씀이세요? 안 되겠다. 녹음을 해서 직접 들어보시면 될 거 아니에요. 아빠 목소리가 한석규인지 내시인지.”

“No! 난 녹음은 반댈세.”

“거봐, 내시 목소리 맞죠?”

“그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두 개의 버전으로 듣게 되는데, 그냥 내 목소리를 들을 때보다 녹음을 해서 들으면 좀 더 가늘고 높게 들리거든. 그래서 중저음을 선호하는 아빠는, 녹음된 나의 목소리를 정말이지 듣고 싶지 않구나.”

“진짜! 그러고 보니까 정말 그래요. 친구들이랑 놀면서 찍은 동영상을 보면 제 목소리가 실제보다 더 촐싹 맞게 들리더라고요. 왜 그런 거예요?”

“목소리는 폐 속의 공기가 성대를 포함한 후두부를 통과할 때 진동하면서 나는 것인데, 녹음기는 단지 이 성대 소리만을 저장해요. 그런데 보통 내 목소리를 들을 때는 기본적인 이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두개골을 울리면서 내는 깊은 울림까지 더해서 듣게 되지. 다시 말해, 그냥 들을 때는 성대 소리와 두개골 울림을 같이 듣는데, 녹음기는 성대 소리 하나만 녹음하니까 낯설게 즉, 좀 높고 얇게 들리는 거란다.

“헐, 내 목소리를 들을 때 뼈가 울리는 소리까지 듣는 거라고요? 완전 신기해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듣는 내 목소리는 뼈 울림이 빠진 거니까, 녹음기에 저장된 것과 거의 같겠네요?”

“그렇지,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아는 똑똑한 내 딸아.”

“아빠, 그런데 목소리는 성형할 수 없는 거예요? 전 낭창낭창한 매력적인 목소리를 꼭 갖고 싶은데, 가끔 제 목에서 돼지가 멱을 따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하거든요. 돼지 멱따는 목소리를 아나운서처럼 세련되게 바꿀 순 없는 걸까요?”

“흠, 아주 중요한 얘기야. 심리학 이론 중에 메라비언 법칙(The Law of Mehrabian)이라는 게 있는데, 그 법칙에 따르면 사람이 메시지를 전달할 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바로 목소리라는 구나. 그 다음이 표정, 태도. 그리고 대화의 내용이 맨 꼴찌야.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 데 정작 대화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목소리가 제일 큰 영향을 끼친다는 거지. 그래서 요즘엔 수술이나 주사를 통해 성대 길이와 폭을 조절해서 목소리를 성형하는 사람들도 있다는데. 하지만 굳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평소에 조금만 노력하면 얼마든지 좋은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단다.”

“정말요? 혹시 날계란 얘기 하시려는 거 아니에요?

날계란이 목소리를 좋게 한다는 건 아무 근거가 없는 속설이고, 대신 물을 자주 마셔서 성대를 부드럽게 하는 건 아주 좋단다. 특히 체온과 비슷한 미지근한 온도의 물을 마시면 목소리가 갈라지거나 툭툭 끊기는 걸 예방할 수 있지. 또 근육량이 많은 사람이 힘도 세듯, 꾸준한 발성 연습으로 성대 근육을 강화하면 더 멋진 목소리를 가질 수 있어요.

“성대 운동이요?! 성대로 역기를 들 수도 없는 노릇이고, 대체 성대는 어떻게 운동시켜야 하는 걸까요, 아버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자신에게 적당한 톤으로 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책을 소리 내서 읽는 습관을 들이면 된단다. 또 코로 숨을 쉬며 매일 30분 이상 걷거나 소리를 크게 내 웃는 것도 도움이 되지. 성대 점막을 건조하게 하는 음주나 흡연은 당연히 금물! 그리고 무엇보다 복식 호흡이 가장 중요해. 복식 호흡을 하면 흉식 호흡을 할 때보다 폐활량이 30%나 많아져 공명이 커지기 때문에 말이나 노래를 많이 해도 성대가 덜 피곤해져 좋은 목소리를 유지할 수 있단다.”

“음…, 뭔가 엄청 복잡한 거 같지만, 배로 숨 쉬고, 물 많이 먹고, 적당한 톤으로 수시로 중얼거리면 된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오늘따라 우리 딸, 왜 이리 똑똑한게냐!”

“아무리 똑똑해도 풀 수 없는 미스터리는 있답니다. 그렇게 잘 아는 아빠는 대체 왜 아직까지 목소리가 내시 버전인 거죠? 게을러서 실천할 수 없었던 건가요, 아님 아무리 노력해도 선천적인 목소리를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는 건가요?”

“어느 정도는 좋아질 수는 있지만, 아버지로부터 유전된 타고난 성대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단다. 각자의 개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건 어떻겠니, 똑똑한 딸아?”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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