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4일 초강력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강타했다. 태풍의 영향으로 이재민이 430만 명에 12,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재산 피해는 집계하기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하이옌은 필리핀 타클로반에 상륙했을 때 순간 최대풍속이 초속 105m였다. 역대 태풍 기록 중 가장 강력했다고 한다. 한 여름도 아닌 늦가을에 기록적인 태풍이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태풍 하이옌이 발생했던 북위 5도의 해수온도가 당시 31℃를 넘었다. 엄청난 에너지 공급이 가능했던 것이다. 태풍 하이옌은 해수 온도가 가장 높은 저위도 해역을 통해 이동했다. 태풍의 힘을 약화시킬 저기압이나 차가운 공기나 육지를 만나지 않았다. 이런 요인들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오면서 슈퍼태풍이 만들어진 것이다.
겨울로 접어들기 직전인 11월에 발생한 태풍이 큰 피해를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 역대 태풍 기록 중에서 가장 인명 피해가 컸던 열대성 사이클론은 1970년 11월 방글라데시에서 발생했다. 폭풍과 해일을 동반한 바람은 최소 3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세기가 태풍 하이옌 보다는 약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의 인프라가 약해 희생자가 더 많이 나왔다.
■ 가을 태풍이 더 무섭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을 월별로 분석을 해 보니, 1971년부터 2013년까지 가장 많은 태풍이 만들어진 달은 8월이었다. 234개의 태풍이 북태평양 상에서 만들어졌다. 두 번째로 많은 달이 9월로 214개였다. 다음이 7월로 164개, 10월이 159개다. 여름 태풍의 수가 477개인데 가을에는 470개였다. 가을 태풍의 발생수가 여름에 못지않다는 말이다. 이중 9월에 우리나라에 영향을 주었던 태풍 수는 28개, 10월에 영향을 준 태풍 수는 3개였다.
그림1) 1971년부터 2013년까지 월별 태풍 발생 횟수 (출처: 케이웨더)
가을에 올라오는 태풍이 더 무섭다는 말을 한다. 여름 태풍보다 더 독하다는 이야기다. 정말 그럴까? 기상청에서 1904년부터 2013년까지 인명피해 및 재산피해 순위를 발표했다.
인명 피해에서 가을 태풍은 전체 10권내에 2개가 들었다. 재산 피해는 10위권 내에 4개가 포함됐다. 인명 피해는 1980년대 이전이라 약한 태풍에서도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산 피해를 보면 가을 태풍이 훨씬 더 강했음을 알 수 있다.
표1) 태풍으로 인한 인명 피해 순위(기간 : 1904-2013)
표2) 태풍으로 인한 재산 피해 순위(기간 : 1904-2013)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남긴 태풍은 모두 가을 태풍이었다. 2002년 9월 태풍 루사는 246명의 인명 피해와 5조 1000억 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냈다. 2003년 9월 태풍 매미는 131명의 인명 피해와 4조2225억 원의 재산피해를 남겼다. 1959년 9월에 찾아온 태풍 ‘사라’는 849명의 인명 피해를 가져왔다.
그림2) 태풍 루사의 소용돌이와 강한 비구름이 만들어지는 위성영상 (출처: 케이웨더)
최근 10년간(2002~2011년) 우리나라는 총 138회의 자연재해를 입었다.(소방방재청 재해연보) 이 중 호우나 태풍이 77회로 전체의 55.8%를 차지했다.
호우 피해는 7~8월, 태풍피해는 9월에 가장 많이 발생했다. 호우나 태풍 피해액 중 상위 1~3위가 태풍 피해였다. 강력한 태풍이 우리나라의 자연재해의 주요 원인임을 알 수 있다 이 중 가을 태풍의 피해가 가장 컸다.
■ 그럼 왜 가을 태풍은 강력하게 발달하는 것일까 가을 태풍이 강력하게 발달하는 이유로 먼저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 온도 상승을 들 수 있다. 태풍이 발생하는 해역의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서 강력한 태풍이 발생할 확률이 높아진 것이다. 이동경로의 해수 온도가 높아지면서 태풍이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는다. 그러다 보니 북상하는 태풍의 세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또한 태풍 발생 해역의 해수면 온도는 9월에 가장 높다. 우리나라 주변 바다의 해수 온도도 높기 때문에 가을 태풍이 강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 북태평양고기압의 계절적 수축도 한 몫을 한다. 여름철에는 강한 북태평양 고기압의 세력으로 태풍이 직접 우리나라로 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가을철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수축하면서 우리나라 쪽으로 통로를 만들어준다. 여기에 가을이 되면 북쪽에서 차가운 공기가 내려온다.
태풍과 기온 차이가 커지다보니 한반도에는 강력한 대기 불안정이 만들어진다. 이런 이유로 여름 태풍보다 더 많은 비가 내리고 바람도 더 강해진다. 그러다보니 가을철 태풍의 피해가 커지는 것이다.
유엔 정부간 기후 위원회가 2013년 9월 27일 5차 보고서를 발표했다. 세계의 해수 온도 상승은 최근(1991-2010년) 20년간 0.19℃다. 그러나
우리나라 주변 해수 온도 상승은 무려 0.81℃나 상승했다. 지구 평균 해수면 상승은 년 3.2mm나 된다. 그 이전 보다 거의 두 배나 빨리 상승하고 있다.
우리나라 주변의 해수면 상승은 세계 평균치보다 4배가 높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런 변화는 태풍의 강도에 영향을 준다.
제주대 문일주 교수가 1951년부터 2008년까지 국내에 영향을 미친 태풍의 최저 기압(氣壓) 변화 추이를 조사했다. 그 결과 태풍의 최저기압이 감소하는 경향이 뚜렷이 나타났다. 이 이야기는 태풍이 점점 강력해진다는 말이다. 문일주 교수는 해수 온도 상승으로 인해 앞으로 슈퍼태풍의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
그림3) 태풍 최저기압 변화 추이 (문일주교수 논문)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산하 기후데이터센터(CDC) 연구진은 태풍의 에너지 최강지점이 바뀌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1982년부터 2012년까지 태풍 자료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태풍의 에너지 최강 지점이 10년마다 53∼62㎞씩 적도에서 극지방 방향으로 올라온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것은 지난 30년간 태풍의 세력이 강력한 지점은 적도 부근에서 약 160㎞ 멀어졌다는 뜻이다. NOAA의 제임스 코신 연구원은 "일본과 한국이 큰 위험에 놓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도 점차 아열대기후구로 바뀌어 나가고 있다. 기후가 변하면 우리나라도 가을이 아닌 겨울에도 태풍이 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강력한 슈퍼 태풍은 더 많이, 그리고 더 자주 영향을 줄 것이다. 무엇이 슈퍼태풍의 발생을 막을 수 있을까?
바로 기온 상승, 해수 온도 상승, 해수면 상승을 막는 길이다. 지구 온난화를 저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합의와 노력이 시급한 이유다.
글 :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