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55 호/2014-06-23

 

[Keyword로 읽는 과학]외상 후 스트레스(PTSD), 이해와 믿음으로 극복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실종자 304명 중 292명(6월 17일 기준)이 주검으로 돌아왔다. 생존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담당자들의 무책임한 행동과 국가의 무능함에 온 국민은 슬픔을 넘어서 분노했다. 국가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위해 전문가를 투입하고 있지만, 유가족과 생존자가 상담에 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단원고를 위기 극복 연구학교로 지정했다는 발표도 이어졌다. 지금 생존자와 유가족은 어떤 아픔 가운데 있는 걸까.

■ 끝없는 절망의 시간이 온다

재난 직후(3~7일) 사람은 아픔과 피곤함도 잊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직후 실종자 가족은 잠도 못 자고 밤낮을 울며 실신 직전의 상태가 돼도 실종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에 팽목항으로 뛰었다.

시간이 지나면서(사고 후 1~3개월) 초기의 에너지는 점점 줄어들지만 유가족은 체육관에 모여 있으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매스컴과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사고를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갖는다.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건네고 죽은 아이의 유가족은 살아남은 이를 보며 우리아이 몫까지 열심히 살아달라며 진심어린 격려를 보낸다. 살아남은 아이도 용기를 얻고 열심히 살겠노라 다짐을 한다.

문제는 다음 단계다. 사고가 난 뒤 2~3여 개월이 지나면 끝없는 절망기가 찾아온다. 매스컴과 주변의 관심이 멀어지면서 자신들이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에 실망한다. 각자의 공간으로 돌아가면서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문제라는 생각에 막막하고 두려워진다. 잃은 가족과 함께 했던 공간에서 그리움과 슬픔은 더욱 커진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피로도 몰려들면서 두려움, 죄책감, 허무함과 같은 여러 감정이 뒤섞이며 깊은 슬픔에 빠진다. 유가족의 잇단 자살 기도가 그 예다.

친구를 구하려다 죽은 아이의 부모는 만약 내 아이가 친구에게 구명조끼를 벗어주지 않았더라면, 내 아이가 살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원망과 그리움이 커진다. 또 생존한 아이는 ‘그 친구가 살았어야 했는데’라는 미안함과 죄책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감정을 입 밖으로 낼 수 없다.

유정 한국사회과학자료원 연구원은 “이 시기에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회복의 중요한 시작”이라며 “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은 이 때”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아직 외상이 진행 중인 유가족에게 사고 직후 전문가가 찾아가 슬픔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 시기에는 재경험 현상(플래시백)도 두드러진다. 생존자는 사건과 연관될 수 있는 물건이나 상황, 냄새나 촉각만으로도 사고가 반복적으로 떠오르거나 악몽을 꾼다. 대구 지하철 사고의 트라우마 극복 과정에 대해 다룬 논문 ‘트라우마 내러티브 재구성과 회복효과, 2010’을 보면 사고 이후 노래를 못하게 된 성악과 학생의 상담 내용이 담겨있다. 사고 당시 다른 사람보다 숨을 잘 참아 기관지 손상이 적었음에도 더 이상 노래를 못하게 된 이유는 고음이나 음을 길게 끌기 위해 숨을 참을 때마다 사고의 고통이 떠올라서였다. 전문가들은 “일본 쓰나미 생존자의 경우 김치찌개에 올려진 두부를 보고 쓰나미에 휩쓸린 사람들이 생각나 구토 증세를 호소하기도 한다.”라고 말했다.

또 신경이 예민해져 작은 자극에도 과하게 반응하게 된다. 사고와 관련된 것을 피하거나 외부와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경향도 나타난다. 이 때문에 주변 사람이 도움을 목적으로 사고에 대해 이야기 해 보라고 묻거나 성급한 충고를 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오히려 당사자가 이야기하고 싶을 때 귀 기울여주고 언제나 당신이 옆에서 지원해준다는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 국가에 대한 신뢰 회복과 온 국민의 이해 필요해

끝없는 실망 끝에는 회복기(사고 6개월~1년 후)가 온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고를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이를 극복하고 새 삶을 꾸리겠다는 의지가 생기는 시기다. 사고를 잊고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찾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고는 기억의 일부로 남는다. 혼란과 갈등도 계속된다. 매년 4월 16일이면 평소보다 더 우울한 시간이 찾아오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내면의 죄책감과 불안감, 슬픔을 딛고 일어서야 심리적인 회복이 된다.

충격이 너무 커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경우, 해리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사고에 대한 기억만 지워져 사고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거나 사고의 기억을 ‘나’의 경험과 분리시켜 사고는 기억하지만, 내가 겪은 사고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정신분열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회복기에는 국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가 그들을 지켜줄 수 있다는 신뢰를 주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정부는 사고 경험자가 다시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지원하되 아픈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지 않아야 한다.

미국 정부는 9.11 테러 이후 전문가를 소집해 교통과 바다 생태계, 건축, 시민들의 충격 등 전 분야에 걸쳐 10년간 뉴욕시가 입은 피해에 대해 조사했다. 그동안 정부는 피해자들이 다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심리 치료는 물론 직업을 바꾸고 싶다고 하면 새로운 것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고 다른 주로 이사를 원하는 이에게는 주거를 제공했다. 혼자 있는 것이 두렵다는 이에게는 후견인도 지원했다.

또 매년 9월 11일이면 대통령이 TV 연설을 통해 나라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로 시작하여, 우리는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것임을 강조하며 국가에 대한 신뢰를 구축해갔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날이 갈수록 커져 생존자와 유가족뿐 아니라 온 국민이 세월호 사고의 외상을 겪고 있다. 생존자를 위한 국가의 지원은 단원고를 위기 극복학교로 지정해 낙인을 찍는 일부터 시작했다. 고등학생은 성인과 달리 가치관이나 자신만의 세계가 완성되지 않은 상태다. 단원고 학생들은 이 상황에서 일어날 것이라 상상조차 못했던 사고가 벌어지면서 자신들이 믿고 있는 모든 것이 무너졌다. 유정 연구원은 “어른이 외상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집을 보수하고 수리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학생들은 건물을 허물고 다시 짓는 재건축”이라며 “위기 극복 학교 지정은 다시 자신만의 새로운 집을 짓는 아이들의 토대에 ‘어딘가 아픈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외부 전문가가 아닌 학교 선생님이나 지역 사람들의 교육을 통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치유해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학교에 상담실을 늘리거나 수업의 일부를 활용해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이 서로의 감정에 대해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외부의 의식을 덜하면서 다시 축구도 하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자연스럽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미국이 9.11 사건을 극복하는 데는 국민들의 힘도 컸다. 피해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전 국민이 추모 촛불 점등을 하는 등 그들의 슬픔을 함께 하고 격려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를 받고 있음을 느끼는 것도 생존자의 회복에 중요한 요건”이라며 “그들을 잊지 않는 것, 그들 곁에 우리가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모든 이들이 이해와 믿음으로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글 : 이화영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http://scent.ndsl.kr/sctColDetail.do?seq=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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