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빵이, 그리고 장미가 필요해요.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은 엄마의 파업 이야기 희망을 만드는 법 9
다이애나 콘 글, 프란시스코 델가도 그림, 마음물꼬 옮김 / 고래이야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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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노리개, 슬기로운 해법

이상은 내가 제작 두레에 참여한 영화들이다. 그리고 어제 또 다른 작품의 제작 두레에 참여했다. 제목은 "귀향"이다.

최근 무슨 똥배짱으로 버티는지 이해할 수 없는 국무총리 지명자 때문에 더더욱 마음앓이를 하고 계시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을 영화이다. 정부가 나서서 더 보듬고 책임을 져야 할 분들이지만 늘상 이분들을 챙겨주는 것은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들이었다. 


몇 달 전에는 근무하는 곳 인근 대학의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을 한 적이 있다. 대학은 올해부터 임금인상을 약속하겠노라고, 지난 해 협상을 했지만, 막상 해가 바뀌니 입을 씻어버렸다. 전문대라 4년제 대학보다 학교 운영금이 부족하다나 뭐라나. 학교에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4년제 대학의 청소 노동의 강도와 2년제 대학의 노동 강도가 다르다던가? 무슨 변명이 이따위인지... 청소 노동자들의 파업은 일단락 되었지만 지금은 또 다른 플래카드가 붙어서 새로운 투쟁과 거기에 대한 연대를 분명히 고지하고 있었다. 이들의 긴 싸움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그리고 여기, 바다 건너 먼 나라에서도 비슷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멕시코에서 미국의 로스앤젤레스로 이민을 온 카를리토스네 가족. 이민 노동자인 엄마는 밤에 고층건물을 청소하고 새벽에 집으로 돌아오신다. 엄마는 출근 전에 잠자리에 든 아들에게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잘 자렴, 카를리토스. 천사가 너와 함께 있을 거야."


천사의 도시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잘 어울리는 굿나잇 인사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족들과 아침식사를 한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카를리토스가 함께 모이는 시간이다. 

그리고 엄마는 아들이 스쿨버스에 오르는 것을 보고 나서야 돌아와 지친 몸을 침대에 기댄다. 야간 근무가 더 피곤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들을 배웅하고 나서야 잠자리에 드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엄마는 로봇도 아니고 초인도 아니다. 평일에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밀린 집안 일을 해야 하니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이 늘 부족하다. 아픈 할머니의 약값도 보통 벅찬 게 아니다. 엄마가 이렇게 고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은 임금이 터무니없이 낮기 때문이다 .하루에 1억을 제하는 황제노역을 하는 이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는 노동과 급여! 몸이 부서져라 열심히 일을 하지만, 겨우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임금만 받고 있으니 생활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소중한 일자리이니 버티는 게 능사일까. 아니라고, 카를리토스의 엄마는 생각했다. 그녀와 같은 청소노동자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파업을 결정했다. 



노동자들은 똘똘 뭉쳤다. 신문에서도 이들의 행보를 알려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행진을 지켜보았고 관심을 가졌다. 

카를리토스의 같은 반 학급에는 또 다른 조합원들의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부모님들도 이 파업에 참여하였다. 선생님은 이 파업의 의미와 중요성을 설명해 주셨다. 선생님의 할아버지도 미국에 이민 와서 서러움을 당했던 세대였다. '공감'을 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시다는 건 아이들에게 또 얼마나 큰 힘이 될 것인가. 


파업이니 데모니 빨갱이들의 선동이라며, 너희 부모님들은 그런 일을 하시지 않지? 라고 물어보는 교사가 있는 어느 나라의 서러운 풍경이 떠오른다. 



엄마의 인터뷰 장면은 TV에까지 나왔다. 카를리토스는 엄마를 돕고 싶었다. 아이들은 똘똘 뭉쳐서 팻말을 만들었다. 


"나는 엄마를 사랑해요!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이 부분이 정말 뭉클했다. 아이의 대가 없고 계산 없는 순수한 연대가 벅찼고, 엄마가 청소노동자라는 것을 당당히 밝히는 모습이 부러웠다. 우리 나라라면 어땠을까?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나는 청소 노동자입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사회 분위기이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내 마음도 어두워졌다. 이는 "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나는 장애인입니다."와 얼마나 닮아 있는가. 우리 사회의 어둡고 습한 모습이 한꺼번에 노출된 기분이다.


투쟁은 계속 이어졌다. 연대의 손길은 주의 경계를 넘었고, 파업 노동자들은 이 시간을 축제의 장으로 바꿔버렸다. 그야말로 장관이 연출된 것이다. 3주일에 걸쳐 이어진 파업은 마침내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임금도 올라갔고 더 좋은 노동조건을 쟁취했다. 오랜만에 이루는 달콤한 잠은 천사들과 함께 하는 또 다른 축제의 초대가 되었다. 로스앤젤레스가 진짜 천사의 도시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엄마는 보다 여유로워졌고, 그 시간은 카를리토스와 함께 하는 소중한 추억의 그릇이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노동자들의 파업에 연대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받았던 그 따스한 동지애를 이제 갚아줄 때가 된 것이다. 카를리토스 역시 그 자리에 함께 하기로 했다. 어려서부터 아름다운 연대의 기억을 가진 이 아이의 미래가 기대된다. 아이는 더 당당하게, 더 단단하게 자랄 것이다. 



책의 말미에 루이스 로드리게스의 이 책의 배경이 된 2000년 로스앤젤레스에서 8천 명의 청소노동자가 펼친 파업과, 그 파업에 참가했던 돌로레스에 대한 글이 나온다. 이어서 "그래 우린 할 수 있어!"라는 그의 시가 실렸다. yes, we can!이라고 나도 함께 외치고 싶다. 이 땅에서 노동자의 땀이 제대로 대접받을 날이 언젠가 올 거라고, 교사도 노동자라는 게 당연히 인정될 그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그러니 우리에겐 연대만이 최선이고, 최고의 지름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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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4-06-21 0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동이 정당한 대가를 받는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겠지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나라이기도 하고!!
어머니들은 박봉에 궂은 일 하시며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워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을 내놓건만...
박성우 시집 <거미>에 청소하는 어머니 모습에 뭉클, 눈물났던 기억이...

마노아 2014-06-22 00:29   좋아요 0 | URL
노동자라는 이름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때가 되어야 대한민국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것 같아요.
경제 규모에 비해서 의식 수준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참 많아요.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 성숙한 그 나라를 포기하지 말아야지요.
박성우 시인의 시집도 찾아봐야겠어요. 읽고 싶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