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38
이동진 글.그림 / 봄봄출판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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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는 순간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이렇게 자연스레 동요가 흘러나왔다면 당신은 '노을'을 알고, 또 사랑하는 사람일 것이다. 

84년도에 창작가요제 대상을 받은 이 노래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랑받는 대표 동요다.

이 작품에 노랫말을 쓰신 분이 바로 이 책을 쓰신 이동진 화가시다. 이 책 말고도 동화책을 여러 권 내셨는데, 이 책에도 글과 그림을 모두 당신의 손으로 담당했다.

소개글에 보니 '산돌 이동진체'라는 폰트가 있다고 한다. 궁금해서 검색해 봤다.

혹시 제목의 저 폰트가 이동진체인가 싶어서 이 글씨체로 직접 써봤다.

많이 다르구나. 위의 폰트는 그냥 휴먼매직체인가??



'노을'의 노랫말에도 가을바람이 등장하는데, 바로 그 노랫말의 풍경과 배경이 되는 이야기가 이 책의 주제이자 소재다. 

유미, 유라, 유노 세남매가 살고 있는 시골 마을의 풍경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딱새가 왔다며 호들갑스럽게 누나를 부르고 있는 까까머리 남동생이 귀엽다. 딱새가 대체 어떤 새인지 서울 촌뜨기인 나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이 새의 울음소리에서 딱새가 나왔을 것 같다는 기분은 든다. 

감나무는 키워본 적 없고, 감나무에 열린 감을 직접 따먹어본 적도 없지만, 적어도 장독대가 있던 집에서는 살아봤다. 

장독대 위에 하얗게 눈 쌓였을 때, 그 너머 담장위에도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고, 처마 끝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던 풍경도 기억한다. 내게는 가을보다 겨울의 느낌이 더 강하게 남아 있나보다. ^^


지붕 위 볏단 얹은 집에 살아보지 못했지만, 어리던 시절에 시골에 가면 소똥 냄새에 코를 움켜쥐며 인상을 찡그렸던, 그러면서도 그 풍경이 신선하고 재밌어서 호기심에 겨워했던 추억들이 방울방울 솟는다. 


유라를 업고 있는 유미 옆에 붉은 꽃이 피었다. 미안하다. '수박바'가 떠올랐다. 아, 먹고 싶구나.^^



마당 있는 집에서 살아봤기에 수돗물 받아놓은 큰 다라이에서 물놀이 했던 추억도 자연스레 떠올린다. 김장철에 거기 가득 쌓여 있던 소금 절인 배추까지도. 


노랑색이 주는 강렬함은 아찔할 정도였다. 은행이 떨어지면 냄새가 고약해서 탈이지만, 은행잎 자체는 얼마나 낭만적이던가. 예쁜 모양으로 주워서 책에다가 끼워놓고, 나중에 한해 지나 발견하면 지난 가을의 냄새를 뒤늦게 추억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은 은행잎과 단풍잎을 시를 쓴 편지지에 붙여 코팅해서 썼던 기억도 난다. 이럴 때의 배경음악은 이문세가 진행하던 별이 빛나는 밤에~ 되겠다.^^


거북이 모양을 닮은 좌구산이란다. 거북구에 앉을 좌인가? 거북이가 앉아 쉬는 것 같은 모양의 산이란 뜻일까? 

그렇게 우리 고장을 대표하는 자연이 뭔가 있을 것인데, 그런 걸 관심 가져보지 않고, 있어도 알지 못하고 지내는 도시의 삭막하고 무심한 삶을 새삼 반성하게 된다. 


허수아비 하면 오즈의 마법사이지! 우리 옷을 입었음에도 그리 떠오르니 좀 미안한 걸!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요즘 아해들은 모여서 몸으로 뛰어노는 놀이를 많이 해보지 못했다. 해보지 못햇으니 알 길이 없고, 그렇게 소중한 놀이 문화가 사라져가고 있다. 고무줄 놀이를 고3이 되어 처음 해봤다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난감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애들은 일단 뛰어노는 게 제맛이건만!


지난 가을 하늘공원에 엄마와 함께 억새축제에 다녀왔다. 이제 억새와 갈대는 구분할 수 있을 듯하다. 일단 사는 곳이 다르잖아~


잠자리하면 나는 코스모스가 떠오른다. 가을에 시골 집에 가게 되면 길가에 가득 핀 코스모스 떼를 보게 되는데, 그때 주변을 날던 잠자리들이 너무 커서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다 가을이 가득 와 있다는 상징일 테지.


열심히 일하시는 아빠께 저녁 진지 드시라고 알려온 고마운 아이들. 땀흘려 노동한 대가로 가족을 먹이는 가장으로서 당당한 아버지의 풍경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렇게 노동은 정직하고, 노동은 따듯한 법이거늘...



온 하늘이 물들어 가는 시간. 아이들이 노을을 지켜보고 있다. 그렇게 발걸음을 뗄 수 없을 만큼 곱고 고운 노을을, 우리는 살면서 몇 번이나 보았던가. 그리고 몇 번이나 기억하고 떠올렸던가.



다시 한번 동요 노을의 예쁜 노랫말을 들여다 본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곱디 고운 시다.

시도 고운데, 여기에 노래까지 입혔으니 얼마나 아름답게 치장을 했는가.

이 노래를 부르던 씩씩한 목소리도 귓가에 울린다. 아, 이 노래 나도 참 좋아했었지.

내가 치던 동요 소곡집에는 이 노래가 없었다. 그런데 내 책보다 나중에 나왔을 법한 책에는 이 노래가 실려 있었다.

이미 있는 책이니 새로 사지 못했다. 얼마나 야속했던가.


안되겠다. 바로 노을 악보로 검색해 보니 이미지가 뜬다. 냉큼 인쇄했다. 날 밝으면 피아노로 쳐보리라. 

조카들도 이 노래를 알 것이다. 모른다면 가르쳐줘야지. 내가 피아노 치고, 아해들이 노래 부르고...

참으로 고운 정경이 될 것이다. 벌써 미소가 그려진다. 


엄청 더운 여름날에 가을 풍경을 상상하며 읽기에는 날씨가 다소 안 도와주지만, 이 더위 꺾이면 마주칠 그 가을 풍경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이 책을 통해 도시 아이들이 접하기 어려운 '고향'의 풍경이, 그 그리운 냄새와, 색깔과 소리까지 모두 재생되기를 소망해 본다. 참으로 예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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