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푸른 사다리
공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0월
구판절판


수도자는 순명(順命)해야 하고 수도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인간(humanitas), 흙(humus), 겸손(humilitas)은 모두 같은 라틴 어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24쪽

안젤로는 초콜릿을 노수사님들의 입에 넣어주고는 노수사님들의 식판에 담긴 밥을 자신의 입에도 넣었다.
“예수님이 당신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우리가 꼭 같이 고통받기를 정말 바라실까요? 토마스 수사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우리 엄마는 병실에서 자기는 아파서 물도 삼키지 못하면서 제가 친척들이 사 온 주스며 빵을 먹고 있는 걸 보기를 그리 좋아하셨는데요.”
-37쪽

할머니는 나를 사랑했고 아버지도 나를 사랑했으며 어머니도 나를 사랑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제각기 떨어져 불화했으며, 나는 그들이 나에 대해 퍼붓는 사랑에서보다 그들의 불화에서 나오는, 그들끼리의 관계 속에서 흘러나오는 불행에 더 깊이 영향받았다.
-47쪽

“가난한 자들을 돌보라 역설하면서 가난한 자들이 왜 가난하게 되었는지 도무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는 교회, 낙태하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왜 젊은 엄마들이 배 속에 든 자신의 아이를 죽일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조금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교회, 수백 명의 인명을 살상하려는 강대국의 무기 판매에 아무 경고도 하지 못하는 교회! 이혼은 죄라고 하면서 이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만큼 불행하게 사는지 보이는데도 모른 척하는 교회! 동성애가 무슨 취향인 줄 아는 교회! 그 교회가 나를, 여자들과 성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수도원의 형제들이 노동한 대가인 그 돈을 떼어먹고 도망간 수사들과 같은 수위로 처벌하려 하는군. ‘부자가 재산을 자랑할 때 약탈과 착취가 묵인되고, 군지휘관이 승전보를 알릴 때 대량 학살이 묵인되고, 고관대작이 권력을 뽐낼 때 폭력이 묵인되어 있는 것이 분명함에도 이것들이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자신도 그 부류 속에 있음을 의심하라!’하고 톨스토이가 말했던가......”
-67쪽

“긴 인생에서 겨우 한 해 늦추어졌을 뿐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잖아요. 우리 수련수사 때 수련장 신부님 말씀하신 거 전 가끔 생각해요. 나가는 것도 좋다. 길을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중요한 결정은 반드시 평화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69쪽

“미카엘이 제일 걱정이에요. 단식을 하고 계명을 지키고 계율을 지키는 거 너무 중요하지요. 중요하지만 가끔 미카엘은 매사에 너무 열심히라서 나는 그게 걱정이에요. 하느님 나라는 공부하듯 승진하듯 고시 보듯 내 힘으로 가는 데가 아니거든요. 속세에서 1등 하듯 여기서 단식 지키고 속세에서 근무 열심히 하듯이 여기서 기도 많이 하는 건 속세의 방식이지요. 하느님 나라는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기쁘게 살아내는 거예요. 복음은 지키는 것이 아니고 사는 거거든요.”
-107쪽

“힘들지요. 하느님, 이 늙은이를 빨리 데려가시지 않고 이렇게 내버려두어서 무얼 얻으시려는 건지 궁금하지요. 그러나 내가 물어도 늘 그렇듯 대답이 없으세요. 80년이 넘도록 물어도 대답 없는 양반이니 말이지요. 다만 내가 알게 된 게 있다면 내가 평화 가운데 있다는 거예요. 젊었을 때 나는 평화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이제 겨우 하나 알게 되었어요. 평화는 고통 가운데서, 혼란 가운데서, 병과 늙음 그리고 죽음 한가운데서 하느님을 붙들고 있는 거라는 걸.”
-108쪽

“미카엘 수사님, 요한 수사님. 서품을 받고 신부가 된다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 것도 또 좋은 일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지어내고 좋아하셨지 뭐가 되고 나서 좋아하시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너무 혼자 힘으로 모든 걸 하려고 하면 넘어집니다. 우리는 작고 가난합니다. 우리는 그저 그분께 모든 걸 맡기고 겸손하게 기다릴 뿐이지요. 우리가 해야 하고 오직 하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우리의 먹을 것, 우리의 입을 것, 우리의 시간과 선의를 그것이 모자라는 이웃과 나누는 거지요. 예수님은 교회 건물을 세우지도 않았고 시위를 주동하지도 않았으며 학교를 창립하지도 않았으며 한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전쟁터에 가시지도 않았잖아요.”
-108쪽

“나는 사랑에 대해 말하려고 했던 거야. 작고 가난한 형제에 대한 사랑...... 나는 예수가 승천하기 전에 주고 갔던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거야. 그런데 내 말투에는 사랑이 없었고 내 편지의 내용에는 평화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어. 왜 토마스 수사님을 간호하는데, 그 터무니없이 눈이 맑고 명랑한, 지금은 어린아이보다 못하게 되어 대소변조차 혼자 보지 못하고 넣어주는 음식의 반을 흘리는 늙은 수사님을 보면서 나는 그걸 깨닫게 되었을까? 그분이 하도 잔잔하셔서 내 얼굴이 비추어졌는데, 나는 거기서 사랑을 빙자한 증오로 가득하고 평화를 빙자하여 전쟁을 불사하는 가증스러운 한 영혼을 보게 된 거라구.”
-113쪽

태어나기 전에 인간에게 최소한 열 달을 준비하게 하는 신은 죽을 때는 아무 준비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라고 성인들이 일찍이 말했던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생각하는 인간은 분명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안다. 죽음이 삶을 결정하고 거꾸로 삶의 과정이 죽음을 평가하게 한다면 내 삶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런 질문에도 직면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저 이 모든 것을 신에 대한 원망으로 돌리고 싶었다. 그것이 훨씬 수월한 일이니까. 문제는 그렇게 책임을 신에게 돌려버림으로써 실은 나는 성장할 기회를 놓치고 있었다. 아빠스님이 이야기했던 “이 고통 속에서 신이 내게 물으시는 것”을 나는 알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인간은 고통을 겪을 때 실은 내가 이 고통 때문에 뜻밖에도 잃어버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165쪽

“안젤로 수사님은 정말 친척이 아무도 없었어요. ‘전 여기서 나가면 아무도 없어요’ 그러기에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정말이었나 봐요. 이 세상에 사고무친인 사람이 그렇게 날마다 방실방실 웃고 다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어요. 언제나 내게도 상냥하고 친절했지요. ‘문지기 수사님이 문을 지켜주시니 저는 정말 좋아요. 날마다 오갈 때마다 여기서 뵐 수 있으니 참 기뻐요.’ 아무것도 아닌 제게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 사람 하나밖에 없었어요. 순간 내가 뭐 예쁜 여자도 아니고 저게 정말일까 의심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정말 안젤로 수사님이 ‘수사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하고 이 문을 오갈 때면 저는 제가 누군가에게 참 기쁜 사람이 된다는 생각에 저절로 환해졌답니다. 가끔 그 젊은 수사님이 햇빛 속에 서 있을 때는 같은 남자가 보아도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꼭 늠름한 해바라기 같았고, 그냥 지상에 뚝 떨어진, 정말 안젤로라는 이름 그대로 천사였나 싶었어요.”
-166쪽

여자는 내가 내미는 포도주를 한잔 마시고 겨우 입을 열다가 다시 울었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어깨로 손이 갔다. 그렇게 위로의 손길을 뻗으면서 나는 내가 가진 지극한 슬픔도 그보다 더 지극히 슬픈 사람을 위로하면 덜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나의 고통을 잠시 잊었고 그녀의 고통에 깊이 감화되었다. 뭐랄까, 아래로만 치닫던 슬픔이 나의 아픔에만 집중되던 고통이 다른 이를 향해만 가던 분노가 평화와 위로와 나눔으로 반전되는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후에도 나는 마음이 아플 때는 다른 이들을 위해 나를 쏟는 것으로 나의 고통을 달래곤 했다. 어쩌면 치유는 위로받는 자에게가 아니라 위로하는 자에게 일어나는지 모르니까. 아니, 위로받는 자와 위로하는 자 두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고통받는다고 느낄 때야말로 우리는 어쩌면 가장 이기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168쪽

이상하다. 이 지상을 떠난 사람의 자취는 그가 남긴 사물에서가 아니라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발견된다. 죽어서 삶이 더 선명해지는 사람이 있다. 죽어서야 비로소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살아 있었으면 그저 그렇게 내 곁을 스쳐 지나갔을 평범하고 시시한 한 사람의 생이 죽어서야 모든 이의 삶 속에 선명해지는 것. 아마 대표적인 이가 예수였겠지. 죽은 몸이 벌떡 일어나지 않아도 그것이 어쩌면 부활이 아닐까.
-170쪽

“우리 안젤로가...... 우리 안젤로 수사가......”
그는 눈물로 범벅이 된 주름진 얼굴로 겨우 그렇게 말했다. 그의 거무튀튀한 입술에서 나오는 우리, 라는 말이 나를 무너뜨리고 말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노수사님이 다가와 나를 안았다. 나는 그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큰 소리로 그리고 오래 울었다.
-175쪽

“하느님, 참 늙고 병들어 쓸모없는 나를 데려가시지, 왜 그들을...... 왜 그들을.”
나는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닦으면서 내가 왜 그를 사랑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라거나 “여기서 뜻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면 마음속에서 일어났을 폭풍 같은 냉소가 그에게는 일지 않았다. 그는 약한 우리의 믿음으로 인한 고통을 이해했고 공감해주었다. 나는 그 후로도 가끔 생각했는데, 결국 진정하고 강한 믿음을 가진 이만이 약하고 흔들리는 이들을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211쪽

“요한 수사님, 악은 수많은 얼굴로 다가옵니다. 사실 사람인 우리가 그것을 식별하는 것은 은총에 의지할 뿐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도 있어요. 우리가 사랑하려고 할 때 그 모든 사랑을 무의미하게 느껴지게 만드는 모든 폭력, 모든 설득, 모든 수사는 악입니다. 너 한 사람이 무슨 소용이야, 네가 좀 애쓴다고 누가 바뀌겠어, 네가 사랑한들 아는 사람 하나도 없어...... 속삭이는 모든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어쩌면 옥사덕이나 남미 로메로의 피살이나 유신 혹은 광주 학살 같은 것은 아직 난이도가 높은 것은 아닐지도 모르죠. 이제 악은 다른 얼굴로 우리에게 달려듭니다. 소리 없는 풀 모기처럼 우리를 각개격파하러 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그것은 무의미입니다.”
-239쪽

“그런데 요한 수사 그거 아나? 이 세상에 참나무란 건 없다는 거 말이야. 참나무란 참나무 속에 속하는 여러 나무들의 공통 명칭이라는 것을. 자료를 좀 찾아보니까 수피를 잘라내어서 굴피집의 지붕으로 썼다는 굴참나무-우리 수도원에서 순교자를 여럿 냈던 옥사덕의 지붕 자재도 아마 이 굴참나무였을 거야-, 떡을 상하지 않게 감싸주었다는 떡갈나무, 예전에 신발 깔창으로 대기 좋았다는 신갈나무, 묵을 쑤어 먹으면 제일 맛있는 열매를 맺는다는 졸참나무, 거기서 열린 도토리로 임금님 수라상에 올릴 도토리묵을 쑤었다는 상수리나무...... 한마디로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가 다 참나무라는 거야.”
-313쪽

“참나무는 20년은 되어야 비로소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고 하네. 물론 그 전에 그 수많은 도토리 중에서 싹을 틔우는 것도 몇 개 되지 않고 말이야. 그렇게 싹이 났다고 해도 열매를 맺지 못할 뿐 아니라 죽는 일도 비일비재. 여러 해충에 약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 20년이 지나야 열매를 맺다니...... 그때 생각했어. 이렇게 약하고 어찌 보면 느린 나무에게 참이라는 이름을 붙인 우리 조상들을 말이야. 심지어 평균 수명도 짧았을 그 시기에 자신이 심었다 해도 살아서는 그 혜택을 보지 못할 그 나무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참이라는 말을 붙여주다니......
나는 어쩌면 우리 수도자들이 참나무 등속과 닮은 건 아닌가 생각해보았네...... 우리도 참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 속에 다 모여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이야. 우리를 모두 수도자라고 부르지만, 모양도 다 다르고 쓰임새도 다 다르고 심지어 제복들도 다르고....... 그렇지만 우리는 수도자,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거...... 닮았다고....... 그렇게 20년을 잘 참아내면 참나무는 수백 년을 살기도 하네. 풍성한 그늘과 열매를 주고 퇴비가 되는 잎을 주기도 하며 숯을 만들게 하고-통일신라 시대에 경주에서 피웠다는 연기 안 나는 사치스러운 숯이 이것이라네-표고버섯의 토양이 되기도 하지.”
-314쪽

‘압니다. 할 수 없는 이유 9999가지를요. 그러나 합시다. 이건 생명의 문제입니다. 이건 흥정의 대상도 고려의 대상도 아닙니다.’
-334쪽

영하 20도의 눈보라 치는 항구를 떠나 사흘 만에 도착한 그 나라의 남쪽 항구는 영상 1도. 생명과도 같이 보드라운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거제도의 주민들이 우리 배가 도착한다는 소식을 듣고 일제히 주먹밥을 준비해 부두에 나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맑고 신선한 이 나라의 물도 함께 말입니다. 우리 선원들은 그 광경을 보았습니다. 저는 생각했지요. 예수라는 이름도 없고 교회도 없고 심지어 십자가도 없는 이곳에서 진정한 크리스마스가 펼쳐지고 있다고 말이지요.
-341쪽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여러분’
-342쪽

두 사람이 죽었다는 말과 동시에 마리너스 수사님의 입에서 강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는 마치 죽음의 소식이라고는 세상에서 처음 들은 사람처럼 깊게 탄식했다. 순간 그보다 내가 더 놀라고 있었다. 나는 그가 전쟁을 겪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본 죽음은 내가 살아서 본 사람의 수보다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쳐갔다. 그런데 그는 나보다 더 깊이 탄식하고 있었다. 문득 그가 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어떤 죽음도 상투적이지 않다. 수십 억의 사람이 태어난다 해도 어떤 태어남도 진부하지 않듯이 말이다. 나는 그에게 온전히 나의 슬픔을 이해받고 있는 듯했다. 그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나는 미카엘과 안젤로가 죽은 후 처음으로 위로받고 치유받는 것 같았다.
-354쪽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더 깊이 절망하겠습니다. 더 높이 희망하기 위해서.
-37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