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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뭐든지 할 수 있어 ㅣ 그림책은 내 친구 3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글, 일론 비클란드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논장 / 2013년 12월
평점 :
로타는 요나스 오빠와 미아 마리아 언니한테 자신이 얼마나 휘파람을 잘 부는지 보여주며 한껏 뻐겼다.
"나, 참 신기해. 할 수 있는 게 정말 많아!"
게다가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했다.
"난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언니와 오빠는 여동생이 허풍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키 타고 방향 바꾸기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로타가 잘 하지 못하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로타는 방향 바꾸기만 빼고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여전히 자신감이 충만했다.
때는 겨울이었고 눈은 온 거리에 가득 쌓여 있다. 엄마는 크리스마스 빵을 만들고 계셨다. 그리고 아파서 몸져 누워 계신 이웃의 베리 아줌마에게 크리스마스 빵을 갖다 주라고 하셨다. 간 김에 심부름도 해드리라며~
다섯살 로타는 이 말이 반가웠다.
"난 아픈 사람도 잘 돌봐요. 난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요. 거의 다요!"
이 얼마나 자신감 충만한 긍정적 자세인가! 그러고 보니 조카 다현 양도 심부름 시키면 굉장히 즐겁게 한다. 세현군도 그나이 때는 그랬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해보일 때 스스로 생각해도 으쓱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누군가 내가 아는 길을 물어보는 걸 아주 좋아한다. 대표 길치인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에서 행복감을 느낀다.
로타는 엄마가 주신 쓰레기 봉지와 크리스마스 빵이 담긴 봉지를 들고 스키를 탔다. 뭐든지 할 수 있는 아이가 되기 위해서 방향 바꾸기 연습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전달해야 할 봉지는 뒤바뀌었고 소중한 친구인 인형 밤세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크리스마스 빵과 인형 밤세는 무사히 찾아왔다. 로타는 베리 아줌마의 집을 청소해 주었고, 아줌마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 주었다. 정말 싹싹하고 일도 잘 하는 로타다. 아줌마는 마지막으로 신문을 사다 달라고 하셨고 선물로 1크로나짜리 은화도 주셨다. 로타가 얼마나 신났을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신문을 사러 가기 전에 로타는 집에 잠깐 들러 보았다. 아빠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오시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크리스마스 트리는 오지 않았다. 시내에 트리가 모두 동났다는 슬픈 소식!
이렇게 추운 나라에서, 게다가 크리스마스를 중시하는 문화권에서 전나무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은 설날에 떡국을 먹지 못하고 추석에 송편을 먹지 못하는 것보다 더 섭섭한 일이 될 것이다. 지난 신정에 장염으로 떡국을 먹지 못한 다현 양이 자신은 떡국을 먹지 못했으므로 아홉살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아까 스키 타고 길을 나섰다가 밤세를 잃어버릴 뻔했던 로타는 이번에는 썰매를 타고 외출했다. 그리고 발견한 멋진 전나무를 가득 실은 트럭!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무는 모두 스톡홀름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이곳보다 수도로 가면 더 비싸게 잘 팔릴 테지. 어린 로타가 이해할 수 없고 인정할 수 없는 셈법이었다. 그렇지만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 기특한 어린이에게 반가운 기회가 생긴다. 크리스마스를 트리 장식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기회 말이다!
아이가 정직하게 계산을 하려고 한 것도 예쁘고, 그걸 지켜봐주고 도와주고 또 아이가 부채감을 가지지 않게 살펴봐주는 어른이 있는 게 좋았다. 비록 스키를 타고 방향 바꾸기는 하지 못하지만 나무를 실을 수 있는 썰매를 끌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식구들이 함께 장식하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예쁘다. 이렇게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쌓여가는 추억도 예쁘다.
요나스 오빠와 미아 아리아 언니도 모처럼 얄미웠던 로타가 사랑스러웠을 것이다. 뭐든 할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동생이 어떻게 보면 형님들 별이 자기 별 앞에 절을 했다는 꿈을 꿨다며 눈치 없이 말해서 형님을 미움을 샀던 요셉을 떠올리게 한다. 요셉과 달리 로타는 언니 오빠의 시새움은 받았어도 미움은 받지 않았다.^^
그야말로 북유럽의 풍경을 느끼게 해주는 겨울 책이었다. 지도를 펼쳐 놓고 스웨덴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꼭 확인해 보기를 바란다. 스웨덴 하면 떠오르는 게 뭐가 있는지 꼽아보는 것도 좋겠다. 나로서는 삐삐를 만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바로 이 책의 저자가 떠오르고, 영화 '렛미인'이 떠오르고, 이동진의 눈물 겨운 삽질 여행기가 떠오른다.^^
비록 크리스마스는 지났지만, 아직 우리집에 남아 있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서 이 책을 더 정겹게 읽었다. 로타보다 더 나이가 들었을 때까지,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다. 난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그 당시 내가 해낼 수 있다고 여겼던 것들은 많은 종류가 아니었지만,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또 하고 싶어하는 것들이었다. 이미 다 커서 어른이 된 지금은 해낼 수 없는 게 얼마나 많은지 충분히 알고 있지만, 그걸 쓸쓸하게 여기지 않게 된 것이 도리어 쓸쓸하게 느껴진달까.
이럴 땐 로타처럼 어깨를 당당히 펴고,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보는 것도 좋겠다.
"난 뭐든지 할 수 있어."
할 수 없는 몇 가지 빼고는 뭐든~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갖게 하는 책이다. 익숙한 그림체도 정겹기만 하다. 오랜만에 노래도 흥얼거려 보자. 더더더 싱그러운 기운이 맘껏 솟도록!
삐삐를 부르는 환한 목소리
삐삐를 부르는 상냥한 소리
삐삐를 부르는 다정한 소리
삐삐를 부르는 산울림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