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버틀러 : 대통령의 집사
버틀러에 관심이 갔던 것은 흑집사 때문이다. 그야말로 사심으로 택한 영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정도의 감동일 거라고 예상했고, 크게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꽤 좋았다. 특히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의 몇 십년에 걸친 연기가 압권이었다. 한쪽 눈이 더 크고 한쪽 눈은 약간 일그러졌는데, 이렇게 비대칭 눈이 더 다양한 표정을 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얼마 전 변호인의 송강호 보면서도 생각했다. 반듯한 대칭이 아니어서 오히려 풍부한 표정을 낼 수 있다면 그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목화 농장에서 죽도록 노동을 하며 엄마가 주인으로부터 학대를 받고, 그것 때문에 항의한 아빠가 눈앞에서 총살되는 것을 목격한 세실. 그 어마어마한 트라우마를 안고서 백인 주류 사회에서 백악관 집사로 수십년을 일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철저히 자기 자신과 밖으로 내보이는 자신과의 경계를 그으며 살아가는 일. 열심히 살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세상의 부조화와 그런 부조리함을 못 견뎌하는 아들과의 불화까지... 세실의 삶은 여러모로 벅찼을 것이다. 부당한 것에 대해서 부당하다고 말하며 폭력과 생명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투쟁하는 위험한 행보의 아들을 세실이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서로에게 미처 전해지지 못한 진심이 충돌하고 그렇게 아들과 아버지 사이에 골 깊은 주름이 자리했다.
그러나 시간은 그들 편이었다. 아들이 어떤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는지, 어떤 걸 희생하며 견뎌왔는지 뒤늦게 아버지는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살고 싶어하는 그 세상이 곧 자신이, 자신과 같은 유색인종이 살고 싶어 했던 세상이라는 것도. 관객은 이미 세실이 살던 시절과 달리 흑인 출신 대통령이 나와버린 미국의 상황을 알고서 보는 것인데도, 그들이 손에 땀을 쥐고 대통령 투표 결과를 지켜볼 때 함께 긴장하고 함께 환호했다. 그 간지 철철 넘치는 멋진 대통령이,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만큼 훌륭한 대통령이라고 꼭 집어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의 현주소에서는 그 정도의 대통령은 아주아주 부럽다는 걸 속쓰리게 인정한 탓이다. 영화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쏘는 장면이 있었다. 그야말로 헐~이었다. 저 나라에서도 몇 십년 전에는 경찰이 시민을 향해 물대포를 쐈구나....;;;;;;;
여러 대통령들이 나왔는데 그들도 참 연기를 잘해냈다. 짧은 시간 동안 등장했지만 존재감만은 무시 못했다. 역시 대가들!!
★★★★
86. 어바웃 타임
러브 액츄얼리를 아주 재밌게 보긴 했지만 시간 소재 영화가 흔해진 탓에 큰 기대 없이 보았는데, 뜻밖의 대박 영화였다. 이렇게 사랑이 폭발하고 이렇게 따뜻하고, 이렇게 근사한 영화라니!!!
주인공 팀은 성인이 된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이집 남자들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놀라운 비밀을 듣게 된다. 당연히 믿지 않았는데 정말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후 얼마나 다이나믹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겠는가. 히틀러를 제거하고 온다든지의 일은 불가능하지만, 자신이 살아온 시간 안에서의 시간 이동은 가능하다. 오 세상에! 내 인생에서 돌이킬 수 있는 선택을 다시 만들 수 있다면!! 영화 보는 내내 그런 생각들이 마구 스쳐지가나는데 팀이 완전 부러운 것이다!
초반에는 로맨틱 코미디답게 이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보여주었다. 한눈에 반한 여인에게 접근하기 위해 기회를 만들고, 그녀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비오는 날 잊지 못할 결혼식을 치르고 예쁜 아이도 낳아 길렀다. 참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멋진 인생이었다. 그리고 영화는 좀 더 진중하게 분위기를 잡았다.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에는 그 앞의 시간을 섣불리 바꿔버리면 그 오차로 인해 아이가 뒤바뀔 수도 있었다. 그러니 그 후에는 모든 신중해야 했다.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폐암 말기로 담배를 피지 않던 시절로 돌아가서 인생의 중요한 실수를 바로잡고 싶지만, 그렇게 시간을 흔들어 버리면 소중한 아이들과의 시간을 잃어버린다. 그걸 선택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내 생명과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아이들을 다시 인식하는 순간이 참으로 가슴 저릿했다.
일부러 시간을 돌이켜서도 살아보고, 어차피 벌어질 일이니 처음부터 즐기면서 보내기도 하고, 능력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두가지 경우로 인생을 모두 살아보라는 아버지의 조언도 지혜롭다. 사실 우리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야 하지 않는가. 우린 시간을 돌이킬 능력 따위 없으니까.
무척 따스하고 재밌고, 게다가 메시지까지도 좋았다. 일석삼조를 다 차지한 영화다.
레이책 맥아담스는 그야말로 사랑스러운 배우다. 초반의 촌스런 앞머리가 조금 별로였지만, 그걸 빼곤 다 좋았다. 특히 영화 포스터의 폭우가 쏟아지는 결혼식에서의 소동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내 결혼식 날씨가 저러면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은데 작품 속에서는 모두 즐기는 것 같았다. 주인공 남자 직업이 변호사인데도 결혼식 준비할 때 자기 능력으로는 스코틀랜드로 신혼여행을 갈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는 게 신선했다. 대한민국으로 치면 변호사가 결혼하면서 돈이 없어서 제주도로 신혼여행 가겠다고 말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의 전문직과는 대접이 다른가 보다. 이쪽이 더 건강해 보이는군.ㅜ.ㅜ
부모님의 바닷가 집도, 은퇴 후 즐겁게 사시는 모습도, 우애 깊은 여동생과의 관계도... 모든 게 참으로 좋았다. 늘 자신감 없고 실수 연발에 모태 솔로였던 팀이 이렇게 멋진 남자로 성장하다니...
그러고 보니 레이첼 맥아담스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에서도 부인 역이었는데, 그의 남편 되는 배우들은 어째 모두 시간 여행이 가능한가! 영화로라도 시간 여행이라는 스펙터클한 세상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참 예쁜 영화다.
★★★★★
87. 집으로 가는 길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게다가 대한민국의 현상황을 표현해 주는 영화를 만나면 감정이 북받쳐서 엉엉 울다 나오기 일쑤였다. 이 영화도 그랬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이 너무 피곤해서, 너무 힘들어서, 너무 기가 막혀서 눈물이 났다. 전쟁이 난무하는 아프리카 남수단 같은 데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은 감사할 일이나, 대한민국에서 사는 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다.
전도연은 인터뷰에서 보니 영화에 충분히 집중하지 못해서 연기가 부족했을까 봐 걱정을 했는데, 그 인터뷰를 보고 나서 영화를 보았는데도 그의 연기는 충분히 좋았다. 고수의 연기에 대해서도 말이 많던데, 난 고수 연기도 괜찮았다. '고비드'라는 별명을 가진 그답게 지나치게 잘 생겨서 오히려 감정이입에 조금 방해를 받기는 했다.^^
방은진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배역을 위해서 살을 찌우려고 했는데, 노로 바이러스에 걸리는 바람에 몸을 제대로 불리지 못했다고 한다. 그걸 굉장히 미안해 하면서 촬영 중간중간 밥을 두끼씩 먹으며 굉장히 애를 썼다고...
황금의 제국에서의 역할이 더 잘 어울렸고,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같은 배역을 더 좋아하지만, 이렇게 막장 끝에 다다라서 어찌할 바 모르는 못 배우고 힘 없는 소시민의 역할도 괜찮았다. 다양한 역할을 맡을수록 좋지~
미국에서는 자국 국민이 해외에서 죽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시신을 고국으로 찾아간다고 한다. 그러니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영화도 나오는 것이겠지.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이 해외에서 어떤 일을 당하면 대한민국은 그 국민을 위해서 대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재스민 혁명이 이집트로 번졌을 때 공항에서 발이 묶여 있던 우리나라 교민들이 떠오른다. 일본은 전용기로 냉큼 국민들을 옮겨 갔는데, 우리는......ㅠㅠ 사례가 그뿐 아니라는 게 서럽다. 이런 영화가 다시 만들어질 필요 없이, 대한민국 국민도 제발 대한민국으로부터 제대로 보호받고 살았으면 한다. 하긴, 요샌 경찰이 국민을 보호하는 사진(광주에서 시위대를 향해 등지고 서 있는 경찰)을 보고 당연한 걸 가지고 깜놀하는 세상이지. 환장할 노릇이다.;;;;
★★★★☆
88.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비슷한 시기에 잉투기가 나왔지만 이쪽은 별로 흥미가 가질 않았다. 내 관심을 끈 것은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다니던 대학을 때려 치우고 단돈 80만원을 들고 유럽 여행에 오른 4명의 청년들. 가져갔던 돈은 금방 똑 떨어졌다. 추워서 남쪽을 찾아 이탈리아로 갔다던 이들. 빈털터리 그들은 숙박업소를 홍보하는 엽기 찬란한 홍보 영상을 만들면서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이젠 스테이크 썰어가며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여행의 종착지 영국에서, 이 영화를 찍을 결심을 했던 감독이 선망해 마지 않던 가수의 뮤직비디오까지 촬영했다. 그야말로 꿈같은 일들이 기적처럼 벌어졌다. 애초에 시작은 찬란했지만 과정은 찌질했고 힘들었다. 이게 되겠냐고, 스스로를 잉여라고 부르던 이들은 금세 지치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포기도 했지만 곧 다시 일어났다. 서로 호흡이 맞지 않고 의견이 충돌해서 위화감도 들었지만 결국엔 다 이겨냈다. 대~박!
뭐랄까.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파울로 코엘료나 그밖의 여러 자기계발서의 공통된 메시지를 실현시켜 보여준 것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저 젊고 기발한, 엽기적인 상상력과 도전 의식이라면 뭐라도 해낼 것 같다. 이 청춘들을 격하게 응원한다!
★★★★
89. 프라미스드 랜드
맷 데이먼의 영화는 실망해본 적이 없다. 덜 좋을 수는 있어도 별로였거나 싫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주 성실하게 일하는 회사의 실력있는 임원이었다. 막 사장 직에 임명되었고, 이번 일을 제대로 마무리 지어서 회사로부터 단단히 인정받고 싶어했다. 그의 회사는 천연가스 회사인데, 경제적으로 무척 다운이 되어 있는 어느 마을에 가스관이 들어서도록 주민들을 설득하고 홍보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환경단체가 끼어들면서 일은 뒤틀리고 잡음이 생겨버렸고 머피의 법칙도 자꾸 일어난다. 그는 정말 열심히 일했고 성실하기까지 한데, 그런 그를 응원하는 게 잠 불편했다. 그의 뒤에 거대 자본을 가진 대기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석유에 대한 대안이라면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천연가스 개발이 정말 최선의 답인지 확신이 가지 않고, 그렇게 마을에 돈이 흘러들어온다고 해서 이 마을 사람들의 삶의 질이 과연 좋아질까 의문이 들고 여러모로 혼란스러웠다. 나와 같은 그 혼란스러움을 맷 데이먼은 잘 표현해 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그래서 그의 용감한 결정은 현실보단 영화에서 더 어울리지만, 그럼에도 실컷 응원의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이 작품에서 나름의 반전이라면 회사였다. 그래,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지. 더불어 떠오르는 국내 굴지의 기업도 있다. 하하하....ㅜㅜ
멧 데이먼은 이 영화의 각보을 맡았는데, 영화 스케줄이 안 맞아서 감독까지 겸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어이쿠... 참으로 재주도 많다. 부럽구나!
★★★★☆
90.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
1편을 4DX로 재밌게 보았던 탓에 2편도 그렇게 보려고 했지만 cgv에서는 상영불가가 되었고, 아쉬운 대로 3D로 보았다. 대한극장의 HFR3D였는데, 뭔 차이인지는 전혀 모르겠다. 다만 안경이 기존 안경보다 가벼워서 다 보고 난 뒤 얼굴에 자국이 덜 남았다는 게 좋았달까.
이 영화 보고 나서 얼마 뒤 케이블에서 반지의 제왕 1,2,3편을 연속을 방송해 주었다. 나는 그 중에서 2편의 후반부를 보았는데 10여 년만에 다시 보아도 여전히 흥미롭고 재밌는 것이 아닌가. 기술도 더 발달했을 것이고 감독도 동일하지만, 역시 반지의 제왕같은 매력은 호빗에서 찾기 어려웠다. 레골라스나 아라곤 같은 미모의 배우가 없는 게 절대적 이유일 것 같긴 하지만....;;;
1편과 달리 2편에는 레골라스가 등장해서 반가웠다. 누구는 세월의 흔적이 안타깝다고 하던데 내 눈에는 여전히 빛나는 요정의 미모였다. 늙지 않는 영원한 열일곱살 에드워드가 트와일라잇에서 보여줬던 나이듦을 생각한다면 뭐....;;;;
이 장대한 이야기는 호비 시리즈 다 보고 반지의 제왕 시리즈 이어서 봐야 완성되겠지만, 그러기에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그래서 내가 끝까지 다 못봤다. 뒤의 것 나왔을 때에는 앞의 이야기 다 까먹은지 오래고, 다시 챙겨보자니 너무 길고....;;;;
재미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영화도 길고 13,000원 주고 보기엔 좀 비싼 것도 같았고... 여러모로 만족감이 좀 떨어졌다.
★★★☆☆
91. 글로리아
칠레의 산티아고. 퇴근 후 밤마다 싱글 클럽에서 와인을 마시고 춤을 추는 글로리아.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혼을 한 한남자를 만나 달달한 연애를 즐겼는데, 기대와 달리 상대는 신사가 아니라 찌질남이었다. 그의 답답한 상황도 이해는 가지만, 그가 보여준 어른스럽지 못한 대처에는 글로리아처럼 화가 난다.
국내였다면 저런 싱글 클럽은 곱지 못한 시선으로 비쳐졌을 것 같고, 올 누드로 나온 글로이아 역을 맡은 배우는 중년의 나잇살을 보여주기보다 탄탄한 몸매를 만들기 위해서 당장 헬쓰클럽 개인 코치부터 구했을 것이다.
짐작해던 것보다 안정적이고 여유로워 보이는 칠레의 풍경이었다. 하긴,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아는 바가 거의 없었지... 대부분은 선입견일 터.
영화는 괜찮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도 알겠고, 그게 꼭 내 취향이거나 관심사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 영화 보고 나니 와인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애슐리 가고 싶다. 와인 무제한으로 마시게...
★★★☆
92.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여섯 살이 된 아이는 사립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면접을 보았다. 아버지는 아들이 남들과의 경쟁에서 지고도 분해하지 않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일류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는 아버지의 눈에 독하게 덤비는 구석이 없고 야무지게 뭘 잘해내지 못하는 아들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를 알아버렸다. 아이는 태어난 병원에서 다른 집과 뒤바뀐 것이다. 그러니까 남의 아이를 지금껏 내 아이로 알고 키워왔다. 세상에 이런 일이!
아이는 양쪽 집에서 뒤바꼈다. 서로 맞바꾸는 게 핏줄의 속성 상 마땅하겠지만 키워온 정이 있는데 그게 쉽겠는가. 서로 친해지기 위해 시간을 갖고, 주말마다 상대방의 집에 보내어서 익숙해지게 하고, 그리고 마침내 아예 엄마 아빠를 바꾸었다. 원래 혈연관계이고 또 자식을 사랑해 주는 부모님들이니 아이도 잘 견뎌낼 거라고 여겼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엄마 아빠도 힘들었는데 아이야 오죽할까.
영화를 보기 전에 단순히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아이를 바꿀 게 아니라 아들이 둘 생겼다고 생각하며 살면 되지 않냐고 단순하게 여겼다. 물론, 지금도 그게 정답이라고 여긴다. 그렇지만 그렇게 간단히 풀릴 리가 없지 않은가. 일본도 우리처럼 가부장적 사회이고 동양 특유의 혈연 중심 국가인데...
그러나 예상과 달리 신파로 흐르지 않고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를 펼쳐내는 게 고급스러웠다. 감독의 전작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과 '공기인형'도 무척 좋았던 기억으로 남았다. 뭔가 황당한 이야기도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 배우들의 열연도 좋았다. 유카리 역의 오노 마키 배우가 노다메 칸타빌레의 우에다 주리라고 생각했다. 둘이 무척 닮았네.
릴리 프랭키가 보여준 아버지가 참 인상적이었다. 저렇게 아이와 살을 맞대고 놀아주는, 거침 없이 망가지기도 하는 아빠가 아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돈 잘 벌고 능력 있고 깔끔하며 신사적인 아버지도 멋지지만, 아이가 사랑을 느끼고 정서적으로 더 안정감을 주는 아빠는 릴리 프랭키였다. 이 배우는 도쿄 타워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오, 재주가 많은 분이구나!
올해도 무비 꼴라쥬를 통해서 좋은 영화를 많이 만났다. 2014년에도 여전히 사랑하겠다. 무비 꼴라쥬 러브러브!!
★★★★★
93. 용의자
소문은 좋았는데 크게 기대하지 않고 갔다. 이날은 전날 직장에서 몹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래서 울적해 있었다. 마침 맥스무비 포인트가 연말에 사라진다고 해서 조조를 보러 갔다. 그리하여 5,000포인트로 본 영화는 그 갑절 이상의 재미를 주었다.
영화 시작 전에 나온 '카누' 광고에서 공유는 초식남 느낌이었다. 그런데 영화 속의 그는 원래부터 액션 배우였던 것처럼 날고 뛰더라. 교수형 장면에서 제 어깨를 부수고서 탈출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게다가 자동차 충돌 씬에서 진짜로 부딪힐 줄 몰랐다. 보통은 핸들을 꺾기 마련이니까. 감독이 작정하고 액션에서 한을 풀었구나!
내용도 괜찮았다. 특히나 식량 문제 해결이 한반도의 핵위기를 돌파하게 해주었고, 그렇게 한걸음씩 남북이 다가서며 공존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뭉클했다.
연기는, 조금은 아쉬웠다. 대사가 없이 표정으로 하는 연기는 훌륭했는데, 말이 좀 많아지면 북한 사투리가 조금은 어색하게 들렸다. 그래도 마지막에 창고 안으로 들어가면서 문 닫을 때 '니들 다 죽었어!' 하는 표정으로 삭 변하는 게 완전 멋있었다. 이날 수영장에 가서는 홍콩 바다를 헤엄치던 공유를 떠올리며 열심히 운동했다.ㅎㅎㅎ
여자 주인공 유다인은 너무 선이 가늘고 목소리도 힘이 없어서 지나치게 상남자스런 남캐릭터 사이에서 균형을 잘 못 맞추었다. 내 느낌으로는...
쿠폰도 있는데 이렇게 재밌을 줄 알았으면 좀 더 좋은 극장 갈 걸 그랬나? 4DX로 보면 충돌 씬에서 의자가 쾅쾅 울렸겠지.^^
아무튼, 올해 본 액션 영화 중에서 가장 재밌었다.
친구가 임신 막달인데 모자 교실에 공유가 왔었댄다. 무슨 CF 관련 홍보 대사인가 보다. 누군가 키가 어떻게 그리 크냐고 물으니 엄마 아빠 모두 키가 안 크신 편인데 자신은 농구를 많이 하고 우유를 많이 마셔서 키가 큰 것 같다고 대답했단다. 역시 상하 운동이 관건이야!!
★★★★★
94. 변호인
올해의 마지막 영화로 이 영화를 골랐다. 혼자 보았다면 좀 더 일찍 보았을 테지만 반드시 엄니를 보여드리고 싶었다. 사실 크리스마스 2부 때 예매를 해두었는데 엄니가 피곤하다고 안 보겠다고 하셔서 취소했던 전력이 있다. 덕분에 그날은 혼자 가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쓸쓸히 보았지....-_-;;;;
이날 병원에서 고된 일정을 소화하고 마무리로 영화를 보았다. 둘이 나란히 앉으려면 맨 앞줄에 앉아야 해서 뚝 떨어져서 앉아야 했다. 그편이 더 집중이 잘 되었을 수도...
이미 충분히 홍보가 되어 있고 입소문도 들었고 후기도 많이 올라온 터, 그래서 몇몇 장면들은 이미 본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영화가 주는 감동과 먹먹함의 크기가 줄어들지 않았다.
눈물이 터져나오는 지점은 87년 거리 항쟁 때였다. 치켜든 오른 손의 불끈 쥔 주먹이 누군가를 격하게 떠올리게 해서, 반대한다고, 토론하자고 소리 높여 외치던 그 사람이 보고 싶어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은 영화의 흥행으로 그분의 이름이 좀 더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지만, 불과 두어 달 전만 하더라도 그 이름은 천형처럼 금기어가 되어 있었다. 개그우먼 이경실 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일화를 방송에서 이야기했더니 주변에서 모두 걱정하며 말렸다고 한다. 서럽고 원통한 일이다.
작가 김갑수 씨는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꼽았고, 사랑하는 정치인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꼽았다. 나 역시 그렇다. 영화 덕분에 모처럼 맘껏 그분을 추억할 수 있어서 좋았고, 그래서 더 짠했다.
김현정의 뉴스 쇼에서 어느 심리학자였나 정신분석학자였나... 못된 사람이 욕많이 먹고 오래 사는 것이 통계로도 맞다고,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서 그렇다고 얘기했다. 그러면서 실례로 들어준 게 아직도 건강히 오래 사는 전.두.환. 반면 노무현 같은 사람은 그 스트레스를 못 이긴다고. 그래서 자살로 이어진다고... 하아...ㅠ.ㅠ
이승환은 연말 공연을 마무리 지으면서 이 영화 단관을 준비했다. 합정에 있는 영화관을 통으로 빌렸는데, 대부분은 자신의 지인들을 초대했고, 팬들은 22쌍을 추첨했다. 나도 응모했지만 똑! 떨어졌다. 흑흑... 그런 행운은 쉽게 오지 않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