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싫은 사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마스다 미리의 책은 무척 담백하다. 그림도 간결하고 내용도 깔끔하다. 글자수도 몇 없는데 무척 공감이 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야말로 짧고 굵게!


카페 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수짱은 직장 동료가 싫다. 카페 사장의 조카 딸인 그녀는 말도 함부로 하고 날마다 불만 투성이에 점장인 수짱을 말로 깔아뭉개기 일쑤다. 실례되는 말을 해놓고는 농담~이라고 눙쳐버리고 불쾌감을 느낄 상대에게는 부담감을 주는 말로 더 이상의 반격이 나오지 못하게 해버린다. 반응이 늦게 나오는 편인 수짱은 이런 인물을 잘 상대해내지 못한다. 상대가 싫은 것도 싫지만, 그 상대로 인해 자신이 더 싫어지는 이 역효과 때문에 더더더 상대가 싫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성향의 수짱은 내 모습과 많이 닮아 있어서 꼭 내 이야기를 보는 것 같았다. 아흐 동동다리....ㅜㅜ


이것은 무척이나 사소한 일입니다. 하지만, 사소한 것도 계쏙 쌓이다보면 묵직해집니다. -26쪽


수짱에게 사촌 여동생 아카네가 있다. 여동생이 먼저 시집갈 준비를 하고 있어서 부모님으로부터 결혼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 이제 서른인 그녀는 직장에서 마흔살 노처녀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늘 똑같은 질문을 하고, 알려주면 귀담아 듣질 않아서 다음에 또 묻고, 손님 접대 뒤 응접실 정리도 하지 않고, 멋대로 휴가를 써서 자신에게 민폐를 끼친다. 2년간 교제하는 남자 친구가 얼른 프로포즈를 해줘서 직장을 그만두는 게 소원이다. 친구들이 결혼식을 한 식장은 피하고 싶고, 피로연에 입을 드레스도 같은 색은 피하고 싶다. 남친은 여전히 결혼 이야기에 뚱한 반응이고 이러다가 갈색 드레스를 입게 되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게'라거나 '시집을 보낸다'라거나, 그건 마치 어딘가에 선물로 보내지기 위해 키워진 것 같잖아. 80쪽


부모님, 특히 엄마는 잔소리가 유난히 심했고, 마치 자신을 잘 키워서 사위에게 갖다 바쳐야 할 상대로 말씀하시곤 한다. 옛날 분들 언어 습관이 그런 것이겠지만 고루한 생각에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딸자식을 시집 보내야 내 모든 걱정과 의무가 사라지는 것처럼 느끼실 수도 있다. 일견 이해가 간다. 공감도 가고...


'이런 게 마음에 들지 않아' 라는 타인의 불쾌감은, '너는 이런 일로 나를 화나게 하지는 않겠지?'라는 공기같은 협박. -44쪽


수짱의 직장 동료와 아카네의 직장 동료는 둘 다 진상이지만 수짱 쪽이 훨씬 심하다. 아카네 쪽은 마음 먹기에 따라서 지혜롭게, 혹은 부드럽게 넘길 여지가 있지만 수짱의 경우는 답이 없다. 게다가 사장의 친인척이기까지 하니 더더욱. 그러니 목 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새 직장을 구하기로 결심한 수짱을 응원한다. 그건 도망치는 것도 아니고 상대에게 굴복하는 것도 아니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은 시원함을 느끼는 게 당연하다. 


점원에게 잘난 척하면서 말을 함부로 하는 습관을 가진 아카네의 남친. 이런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있다. 겨우 그런 자리에서나 갑질하려고 드는 성미가 값싸 보인다. 그런 자리에서라도 위세 등등하게 보이려는 낮은 자존감... 아카네가 남친의 이런 모습을 뒤늦게 인식하기는 했지만 결혼을 앞두고서 곰곰이 생각해 본 것은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그걸 가지고 결혼을 하네 마네 시끄럽게 군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부드럽게, 그리고 상식적으로 반응해 주어서 내가 다 고맙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은, 결국 나와 관련이 있기에 더 싫을 것이다. 내가 무시하거나 안 보고 살아도 되는 사람이라면 크게 힘들지 않을 터인데, 보통은 직장 동료이거나 상사이거나, 더 심각하게는 가족이라는 게 문제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도 오늘을 살아가는 현실적인 나를 비쳐주는 거울 같았다. 이 작품도 꼭 그렇다. 아무래도 여자 만화라고 이름 붙일 만큼 여자의 심리 상태를 더 많이 반영하니 남자들보다는 서른은 넘긴, 직장생활도 오래 해서 진절머리도 많이 느끼는 그런 여자들이 더 이해하고 공감을 느낄 것이다. 더구나 시집가야 하지 않냐는 소리를 들을 나이 대라면 더더욱!!!


수짱의 표현대로 어른이 되면 새학년도 없고 졸업도 없고... 뭔가 역동적이고 격한 변화가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는다. 어제와 같은 오늘, 작년과 비슷한 올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렇게 자연스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본다. 그 안에서 켜켜이 쌓이는 시간이 주는 지혜가 분명히 있을 것이므로. 그렇게 알아가는 인생의 맛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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