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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봤어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평점 :
소설에 집중해 들어가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아마도 그동안 읽어온 김려령 작가의 책들이 청소년들을 주 대상으로 하는 글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선입견이 있었나 보다. 꽤 높은 수위의 문장들이 나오자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그제서야 이전과는 무척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이 문장을 누가 말한 것인지 되새겨 보아야 알아차릴 수 있는 문장은 피곤했다. 게다가 글이 무겁기까지 했다. 한 해의 마무리를 짓는 소설로는 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지나가자 몹시 집중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락방으로 올라간 아내 때문에 아래층에 있는 '나'가 무겁다고 했을 때 그저 무심히 지나쳤는데, 그 아내가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순간 이야기가 달리 보였다. 뭔가 불미스럽다고 여긴 것들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했던 것이다.
글쓰는 사람들을 소재로 한 것도 흥미롭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풀어냈듯이, 이 책은 소설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냈다. 죽이 잘 맞는 두 명의 후배를 엮어서 연작 소설을 기획하는 장면이 유독 재밌었다.
"육상경기가 한번만 열리는 게 아냐. 대신 우리는 작전을 달리해 보자고. 1부 작가가 장르 인물 다 감추고 달리고, 그걸 2부 작가가 요령껏 받아서 달리는 거야. 앞에서 살려놓은 거 뒤에서 죽일 수도 있고, 죽여놓은 거 살릴 수도 있겠지. 자메이카 팀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쭉쭉 달리든가. 누가 능력자인지 좀 보자. 자신 없어?"
"같은 팀이면서 왜 다 감추고 가야 하는데요?"
"낯선 곳에 뚝 떨어진 사람이, 생각지도 못한 세계를 포착할 수도 있거든." 74쪽
오, 이런 기획 정말 흥미롭다. 서간 형태로 주고 받는 글들도 이미 나와 있지만 이런 식으로 남의 글을 받아 자신이 완성하는 형태의 소설도 있을까 호기심이 일었다.
그러고 보니 좋아했던 드라마 중에 '떨리는 가슴'이라고 있었다. 여섯 명의 연출가와 여섯 명의 작가가 2부작씩 맡아서 총 12부작짜리 옴니버스 드라마를 만들었다. 등장인물은 같고 그들의 캐릭터 설정도 동일하지만, 누가 연출하고 누가 글을 쓰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확 달라졌다. 그럼에도 고수들인지라 전체적인 균형을 흩어놓지 않았다. 이런 매력적인 드라마를 주말 밤도 아닌 애매한 5시 정도에 편성해서 시청률을 바닥이었지만...;;;;;
섹스 전문 작가와 살인 전문 작가가 글을 이어 쓰게 되었으니 살고 죽이는 생사가 쥐락펴락 진행될 것 같았다. 꿈의 고지인 10만 부를 찍으면 세계에서 가장 큰 성기박물관을 짓겠다고 하고, 또 하나는 황금작두를 만들겠다고 했다. 각자의 취향이 반영된 소망이다.
하하하. 실제 십만부가 나가도 서울에 작은 전세방조차 마련하기 힘들다. 소설가에게 십만부는 그런 것이다. 심정적 부담은 돼도 한번쯤은 가뿐하게 밟고 가고 싶은 고지.
"우리는 시인이 아닌 걸 하늘에 감사해야 해. 시 쓰는 도욱선배는 만부만 나가면 당장 천문대를 살 거래."
"평론 하는 전소희는 천부만 나가도 나로호를 쏠 수 있지 않을까?" 77쪽
재밌게 썼지만 글쟁이들의 회한이 담긴 표현 같아서 조금 안타까웠다. 이 분야만 그렇겠냐마는......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뭇 사람들의 선망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지만, 그 인물의 내면에 깊은 우물이 있어 다가오는 사람도 빠지게 만들고, 본인도 그 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댄다. 문득, 장국영이 떠올랐다. 내 친구 하나는 장국영이 생존해 있을 때 그 얼굴을 보면 우울함이 읽혀져서 자살할 상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 전에는 나로서는 상상해 보지 못한 일이다. 하기사, 그렇게 말하자면 그 야무지고 사랑스러웠던 진실 언니는 어떠했던가.
폭력이 난무하는 집에서 성장한 주인공은 개천에서 용이 난 경우였다. 아내 역시 그런 인물이었다. 서로가 깊은 우물이어서 더없이 어두컴컴했던 두 사람이지만, 그랬기에 서로를 더 잘 이해할 것 같아 보이지만, 내 경험으로도 그런 조합은 그다지 좋지 않다. 서로에게 빛이 되어주질 못하고 안식이 되지 못한다. 스스로를 견뎌내고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버겁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주인공을 읽어내는 것이 조마조마했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로 인해 행복해하고, 모든 걸 다 내주더라도 채워지는 만족감을 느낄 때조차 아슬아슬했다. 기어코 무언가가 터질 것만 같아서.
제목이 독특했다. 이 제목은 이 책에서 두번 쓰인다. 한번은 가슴을 왈랑거리게 만드는 설렘으로, 한번은 가슴을 애잔하게 만드는 서글픔으로...
다른 사람의 눈동자에서 읽혀지는 나를 목격한다면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을까 싶다. 그 안에서 비치는 내가, 내가 바라는, 혹은 남들도 바라는 그럼 모습이라면 좋겠지만,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남엠게 내보일 수 없는 그런 모습의 나라면... 그런 나를 보았다면... 누구라도 내쫓고 싶지 않을까. 너를 봤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걸 인정해버릴 때, 뒷감당할 자신이 없을 테니 말이다.
너를, 봤어. 네 눈에서... 나를 봤어. 그것은 나였어. 세상이 가만 두지 못하고, 내가 어쩌지 못하는 가여운 내가......
200여쪽에 달하는 비교적 짧은 느낌의 소설이었다. 그런데 다 읽고 나니 전력질주로 장거리 달리기를 한 것 같은 피로가 몰려온다. 등장인물들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이 되어버린 탓이다. 힘은 들지만, 그 경험이 나쁘지 않다. 이런 인물들을,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된 것 같아서... 조금 더 연민을 가질 수 있게 되어서... 더불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지난 몇달 간 나를 참으로 힘들게 했던, 안 보고 싶지만 안 볼 수 없어서 더 슬펐던 그 사람이. 덕분에, 조금은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안에서 나도 보았으니까. 나 역시... 너를 보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