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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블아디의 생일 파티 ㅣ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227
모리스 샌닥 글.그림, 조동섭 옮김 / 시공주니어 / 2013년 8월
평점 :
태어나서 한번도 생일 파티를 해보지 못했던 범블 아디가 아홉번째 생일을 맞게 되었다. 모두가 지나치거나 모두가 잊은 척하거나, 더는 축하해줄 이도 없는 상태에서 맞닥뜨린 범블아디의 생일 날은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모리스 샌닥의 생일과 똑같은 날짜를 택했다. 실제로 모리스 샌닥도 어려서 생일파티에 대한 어떤 풀리지 않은 아쉬움이 있었던 게 아닐까. 범블 아디의 마음이 꼭 이해가 되는 것이 내가 그랬었다. 부모님은 어린이 날이나 크리스마스 날에 선물을 주신 적이 한번도 없었다. 산타 할배로 변신한 부모님의 선물을 자랑하는 친구들을 늘 부러워했을 뿐이다. 생일 날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터라 범블아디의 마음이 크게 와닿는다. 가족이 축하해주는 생일잔치도 근사하지만, 친구들을 초대해서 왁자지껄하게 보내는 생일에 대한 기대가 분명 나에게도 있었다. 친구들을 초청한 나의 생일 파티는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아, 그때 그 기분이 확 살아난다. 친구들을 집으로 초청한 생일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구나.^^
범블아디는 식구들이 모두 식용으로 세상을 떠난 뒤였고...ㅜ.ㅜ 아델라인 고모님께 입양이 된 상태였다. 고모님이 준비해 준 카우보이 의상과 케이크는 충분히 훌륭했다. 범블아디도 무척 신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범블아디는 '파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친구들을 가득 초대해서 시끌시끌하게 즐기는 그런 파티!!
범블아디는 초대 카드를 보냈다. 파티는 무려 '가장 무도회' 형식으로 열렸다. 돼지 친구들의 저 찬란한 의상들을 보시라. 모두들 상상력이 넘치고 재치가 가득한 녀석들이다.
실제로는 돈이 많이 들어서 쉽게 해보지 못하지만 어떤 캐릭터를 재현해 보는 코스프레에 대한 로망이 있다. 좀 화려한 시대물 의상도 입어보고 싶고 무사 역할도 해보고 싶은 로망... 직접 해보진 못했지만 이렇게 그림 속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껴본다. 아, 조로도 해보고 싶다. 가면에 대한 로망!!!
그러나 애석하게도 파티의 흥은 오래 가지 않았다. 범블아디의 생일날 멋진 저녁을 함께 하기 위해서 고모님이 귤을 사들고 일찍 집으로 오신 것이다.
게다가 집안은 얼마나 난장판이 되어 있던가! 이 친구들이 얌전히, 조용히, 깔끔하게 놀았을 것 같지는 않다. 혹여 고모님이 늦게 오셨으면 좀 치워놨을까? 그건 장담하기 어려워 보인다.^^ 아무튼 엉망진창이 된 집안 꼴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버린 고모님! 아홉까지 세겠다고 했다. 그 안에 안 나가면 모두 '햄'으로 만들어 버릴거라는 무시무시한 협박까지!
아하하핫, 열도 아니고 아홉이란다. 범블아디의 아홉번째 생일을 이런 식으로 축하하시나?
이제 다시 파티는 없다는 엄포에 열살이 안 되겠다고 맹세하는 귀여운 범블아디! 돼지 세계에서 나이 아홉살이면 인간 나이로 몇 살일까? 모르지만, 뭐 크게 중요하지는 않다.
이래저래 버럭 성을 내긴 했지만 고모님은 여전히 범블아디를 사랑한다. 범블아디도 알고 있다. 이야기의 마무리가 급작스럽긴 하지만, 범블아디의 서운했던 마음과 들뜬 마음, 초조한 마음과 다시 기쁜 마음까지도 모두 자세히 전달되었다.
이 책은 모리스 샌닥의 유작이다. 그는 갔지만 아직도 그의 책이 종종 나오는 걸 보니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책들이 꽤 있었나보다. 왕성한 그의 창작 활동이 무척 다행스럽게 느껴지는 지점이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만큼 폭발적으로 즐겁거나 신나거나 좋지는 않았지만, 옛 생각도 나고 생일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었다. 게다가 '범블아디'라는 이름, 참 좋다. 발음부터가 예쁘다. 모리스 샌닥의 이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