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위증 1 - 사건 블랙펜 클럽 29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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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에게 맞은 뺨이 부어오르고, 세면실 바닥에 웅크려 앉은 그의 찢어진 입술에선 피가 흘렀지만, 그럼에도 사실 그는 전혀 상처받지 않았다.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고, 두려움에 떨고, 울부짖고, 슬퍼하는 얼굴 바로 아래 그 엷은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형을 바라보는 눈에 그 냉혹함이 깃들어 있었다.
발버둥쳐봐야 소용없어. 내가 이겼으니까.
형이 진 거야.
히로유키는 깨달았다. 진작 깨달았어야 하는 진실. 그가 설마설마하며 물러서고, 시선을 피하고, 그럼으로써 점점 더 자라도록 거들어버린 끔찍한 것.
이것이 녀석의 본성이다.-132쪽

그렇다. 그애라면 마리코의 행동에 짜증을 냈을 게 틀림없다. 마리코만이 아니다. 마리코로 대표되는 위선. 순간의 기분에 휩쓸린 슬픔. 그애는 그런 걸 경멸할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던 반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난데없이 신성시된다. 갑자기 모두의 마음을 끌어모은다. 다함께 공통의 죄의식을 떠안는다. 그리고 그 죄의식이 구체적인 비난으로 닥쳐오지 않으리라고 밝혀지자 울면서 안도한다.
-157쪽

그날 밤의 진상을 엄마가 알 리 없다. 맹세코 엄마에게 말하지 않겠다고 아빠가 약속했다. 그런데도 겐이치는 이따금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겐이치를 조금 무서워한다는 것을.
나는 한 번 아빠와 엄마를 죽이려 했다. 강을 건너려다 돌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그 건너편을 보고 말았다.
그곳에는 아마 엄마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을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두 번 다시 그곳에 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본 것을 잊을 수는 없다. 내 몸은 여전히 작은 새처럼 아담하지만 안은 맹수처럼 변했다. 엄마는 그것이 두려운 것이리라. 난 맹수를 낳지 않았어, 작고 귀여운, 내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는 연약한 카나리아를 낳았다고, 하면서.-560쪽

마쓰코를 놀린 것은 오이데 패거리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물꼬를 트자, 그만큼 심하지는 않아도 반 아이들이 하나둘 똑같이 놀리기 시작했다. 먼저 나서서는 못해도 누군가가 시작하면 덩달아 놀려댔다. 그리고 오이데 패거리가 마쓰코에게 흥미를 잃자 함께 놀리던 다른 아이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손을 뗐다.
반면 많이 친하지는 않아도 마쓰코가 당한 일에 화를 내거나 걱정해주는 반 아이들도 있었다.
선생님도 가지각색이었다. 마쓰코를 괴롭히거나 놀리는 아이들을 야단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면, 그냥 못 본 척하는 선생님도 있었다. 마쓰코가 시달려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선생님도 있고, 가만있지 말고 너도 받아치라며 화를 내는 선생님도 있었다.
선생님도 완벽하지 않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전부 알지는 못한다. 선생님도 싫은 일은 하기 싫어하고, 성가신 것은 피하려 한다. 그리고 그런 선생님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있을 학생들이 오히려 잘못을 분명하게 인식할 때도 있다.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할 때도 있다.-580쪽

“학교에서 마쓰코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면 저도 생각이 있습니다. 제가 나가서 분명히 밝힐 겁니다. 미야케라는 아이는 살아 있어요. 마쓰코는 죽었습니다. 살아 있는 아이가 죽으면 곤란하다고 해서 말이 없는 죽은 아이에게 전부 덮어씌운다면 저도 가만있진 않을 겁니다.”-628쪽

“당신은 단 일 초도 우리 편이 되어준 적 없어요. 우리에게, 우리 학교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긴 해요?”
말을 할수록 몸이 떨렸다. 료코는 그 떨림을 억누르려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모기 씨가 우리 마음을 알 리 없어요. 미야케의 마음도, 아사이의 마음도, 하시다의 마음도 전혀 몰라요. 그저 우리 모두를 이용해 자기한테 유리한 이야기를 만들고, 자기가 싸우고 싶어서 안달난 적과 싸울 무기로 삼으려는 것뿐이잖아요!”-6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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