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과학

제 2015 호/2013-12-09

주파수 전쟁이 벌어진다…“700MHz를 확보하라”

‘주파수’ 확보를 놓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주파수 전쟁’은 주로 이동통신회사들 사이에서 벌어졌다. 국가의 공공재인 주파수를 기업에 할당하는 방법으로 2011년부터 ‘경매제도’를 시행했기 때문이다. 통신회사들은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원하는 주파수 대역을 확보하기도 했다. 일단 좋은 주파수만 손에 넣으면 타사보다 더 속도가 빠르고 안정적인 통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존에 쓰던 주파수와 비슷한 대역을 낙찰 받으면 시설투자비도 아낄 수 있다.

이러한 ‘주파수 대전’에 최근 방송업계들도 뛰어들었다. 새롭게 등장한 고화질 방송, 울트라HD(UHD) TV 때문이다. UHD TV는 현재 화질이 가장 좋다는 풀HD TV보다 화소(화면을 전기적으로 분해한 최소 단위의 점. 화소수가 많을수록 해상도가 높은 화면을 얻을 수 있다)의 숫자가 4배나 더 많아 영화관용 디지털 화면과 비슷한 해상도를 자랑한다. 이 정도의 해상도를 30인치 크기의 TV로 보면 실물과의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다. 문제는 이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기존 방송보다 훨씬 많은 전파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TV 방송을 가정까지 보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지상파 방송처럼 방송국 안테나를 통해 보내거나, 인공위성을 이용하거나, 이용자의 집까지 케이블을 까는 것이다. 케이블 방식은 직접 선을 이용해 송출하기 때문에 용량이나 속도 면에서는 다른 두 방법보다 편하다. 하지만 모든 시청자에게 UHD-TV를 보라고 유료 케이블을 까는 건 다소 어폐가 있다. 앞으로 UHD-TV가 점점 더 보편화 되면 이를 전파에 실어 보낼 대역을 확보해야 한다.

전파란 고속도로와 같다. ‘한 시간에 얼마나 많은 차를 보낼 수 있느냐’를 결정하는 건 제한속도보다는 도로의 너비다. 16차선 도로와 2차선 도로에 지나갈 수 있는 차량 숫자가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즉 이동통신기기의 데이터 전송속도는 주파수보다는 대역폭(전파의 폭)이 중요하다.

AM 라디오와 FM 라디오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AM 방송은 잡음이 많고 음질도 좋지 못한데 반해 FM 방송은 생생한 스테레오 음질로 깨끗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FM 방송이 주파수가 더 높아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대역폭 때문이다.

예를 들어 KBS2 FM 라디오는 주파수로 89.1MHz를 쓴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89.0~89.2MHz를 쓴다. 즉 0.2MHz의 폭만큼 넓은 길에 전파를 보내는 것이다. 반면 AM 라디오의 대역폭은 0.009MHz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겨우 사람 목소리 정도만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휴대전화도 대역폭 확보가 중요하다. 고용량 사진, 동영상 등을 주고받아야 하는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데이터 요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주파수는 어떻게 배분하는 걸까. 나라마다 주파수별로 다양한 전파기기를 사용해야 하니 국제적으로 쓸 수 있는 주파수의 대역도 서로 약속을 해서 정한다. 우선 주파수가 0.3MHz 이하로 낮은 초장파, 장파 등은 해상통신, 표지통신, 선박이나 항공기의 유도 등 비상용으로 많이 쓰인다. 0.3~800MHz 정도의 주파수는 단파방송, 국제방송, FM 라디오, TV방송 등에 고루 쓰인다.

그러다 보니 휴대전화 몫으로 할당되는 건 보통 800MHz부터다. 3GHz(기가헤르츠, 1GHz= 1,000MHz) 이상이면 직진성이 매우 강해져 인공위성이나 우주통신 등 특별한 경우에만 쓰인다. 결국 개인용 이동통신에는 약 800MHz~3.0GHz 사이의 전파만 쓰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에 통신사들은 이 주파수 내에서 어떻게든 최대한 서비스를 해야 하는 ‘제약’에 묶여 있다.

그런데 최근 이 규칙에 변동이 생길 여지가 생겼다. 이동통신 업계들은 구식 아날로그 TV 방송 종료 후 정부가 회수해서 가지고 있는, 700MHz 인근 주파수를 이동통신용으로 할당한다면 전파 부족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대안이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방송과 통신업계 양 진영에서 연달아 세미나를 개최하며 ‘700MHz 주파수는 우리가 사용해야 한다’며 자신들의 정당성을 알리고 있다. 통신업계에서는 ‘급속한 스마트폰 보급과 4세대 이후 이동통신 서비스 등장으로 새로운 주파수 대역대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대로 방송통신업계에서는 ‘아날로그 TV 방송에 쓰였던 700MHz대 주파수를 디지털 방송용으로 할당하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양측의 논리가 충돌하는 지점은 ‘공익성’이다. 방송 측은 주파수가 공공재인 만큼 자신들이 활용해야 더 국민편익을 보장한다고 주장한다. TV 같은 뉴미디어는 훨씬 고도의 영상압축 기술이 필요하기에 반드시 여유 주파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통신사 측은 더 값싸고 좋은 이동통신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다며 경제성을 무기로 내 세우고 있다. 정부는 주파수를 기업들에게 판매하지 않고 임대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런 ‘주파수 전쟁’은 이동통신과 방송 시장이 새로운 기술로 재편될 때마다 벌어질 전망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자료에 따르면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는 2013년 말까지 3,162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2011년 1월 기준 5,496TB(테라바이트, 1TB=1,024GB)였던 국내 무선 데이터 전송량은 2015년에 8.7배로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그러나 주파수는 한정된 자원이다. 전파가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공재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효율적이면서도 대중을 위한 정부의 전파활용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글 : 전승민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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