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보다 - 동물들이 나누는 이야기
윤여림 글, 이유정 그림 / 낮은산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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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처럼 초원을 달리는 동물, 치타.

네가 젖먹이 동물 가운데 가장 빠르다며?
한 시간에 백 킬로미터 속도로 달릴 수 있다니, 멋지다.


글쎄, 난 잘 모르겠어. 그렇게 달려 보지 못했거든.



한 시간에 백, 이백을 달리는 자동차라도 주차장 안에만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듯이, 저렇게 초원을 달릴 수 있는 치타도 우리 안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동물의 가장 근본적인 성질을 억지로 누르게 만들 힘과 자격을, 누가 인간에게 주었을까.

구름처럼 하늘을 나는 동물, 쇠홍학.

너는 먹이가 많은 호수를 찾아
한번에 몇 킬로미터씩 날아가는구나.


여기서는 먹이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
그래도 가끔 날고 싶긴 해.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날 수 없지만.



스스로 먹이를 찾고 천적의 위험을 피해야 하는 야생의 환경보다 안전하게 먹잇감을 제공해 주는 동물원의 삶 중, 쇠홍학은 어느 것을 원할까? 자기 삶의 주도권과 방향을 결정할 기회를 앗아버린 책임을, 인간들은 어떻게 지고 살까?

나뭇가지를 타고 숲을 누비는 동물, 긴팔원숭이.

너는 팔이 길고 힘이 세서
나뭇가지를 타고 여기저기 잘도 다닌다더라?


그래, 팔 힘이 세서 난 이렇게 창살에 매달리곤 해. 하루종일.



아무리 높은 창살이라 하더라도 밀림 속 나무와 견줄 수는 없겠지? 운숭이는 동물원 밖 인간을 오히려 원숭이 보듯 할까?

파도를 타고 바다를 누비는 동물, 돌고래.

너는 어쩜 그렇게 똑똑하니?
조련사 말을 척척 알아듣잖아.
너희만의 말이 있어 서로 얘기도 나눈다며?


친구랑 나는 늘 이런 말을 해. 바다가 그립다고.



숲과 하늘이 그렇듯이, 바다를 대처할 수 있는 수족관 따위는 있을 수가 없지.
미안하고, 또 미안하구나.

얼음 들판 위로 떠도는 동물, 북극곰.

너는 원래 추운 북극에 산다면서?
때때로 먹이를 찾아 눈보라도 헤치고 말야.


추운 북극? 눈보라? 끼억이 나질 않아. 근데 여기 너무 덥다.



요즘은 북극도 얼음이 녹아서 살기 만만치 않은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너희들은 고향에 돌아가고 싶을 거야. 그렇지?

달처럼 어둠 사이를 가르는 동물, 올빼미.

캄캄한 밤에 날갯짓 소리도 안 내고 사냥한다던데.
먹잇감들이 도망갈 틈도 없다며?


내가 그렇게 멋진 사냥꾼이라니......
난 오늘도 가만히 앉아 있을 뿐인걸.
밤하늘을 날며 사냥을 하면 기분이 어떨까?



호그와트와 인간 세상을 오가는 전령은 되지 못하더라도 네가 살던 숲속에는 가야 할 텐데 말이다......

바위산 위로 뛰어오르는 동물, 바바리양.

너는 높이뛰기를 잘해서 이 미터가 넘는 바위도
훌쩍 뛰어오른다던데, 한번 뛰어 볼래?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
높이 뛰어오를 만한 곳도 없는데, 뭐.



모리 카오루의 '신부이야기'에 바위 산을 산양을 타고 오르는 할매가 나오는데 네가 바로 그런 친구였나보다. 용감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네가 이렇게 변해버리다니...ㅜ.ㅜ

함께 노래하고 사냥하는 동물, 늑대.

너는 가족이랑 함께 다니면서
숲이 울리도록 울부짖는다며?
그 소리가 마치 노래처럼 들리는 거고.


가족이랑 함께 노래하면 쓸쓸하지 않겠지?



일부일처를 고집하는 네가 가족과 헤어져 이렇게 외롭게 지내다니 안타깝구나.
인간에게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 네가 이리 갇혀 있는 것도 자존심이 상할 테고 말이야......

함께 집을 짓고 지키는 동물, 프레리도그.

정말로 넌 적이 나타나면 뒷발로 서서 개 짓는 소리를 내니?
그래서 네 이름이 '초원의 개'란 뜻이구나.


여기는 적이 없어. 그러니 소리 낼 일도 없지. 잠이나 자야겠다.



알아, 알아. 쳐들어올 적, 위험으로부터 도망칠 일이 없다고 해서 네가 고마워하지 않을 거라는 것......

해처럼 하늘 높이 떠오르는 동물, 콘도르.

넌 정말 대단해.
안데스 산맥 높은 곳에 둥지를 짓고,
날갯짓 없이도 몇 시간이나 하늘에 떠 있다니 말야.


......
저기 해까지 날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늘을 날 자유를 빼앗긴 순간, 네 목숨을 앗아간 것과 다름 없겠지?
너희에게 무슨 희망이 남아 있을까?

바람처럼 달리지도, 해처럼 솟아오르지도, 산 위로 바다 위로 뛰어오르지도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동물, 인간.


너희 사람은 아주 똑똑하다고 들었어.
자연을 이해하는 능력이랑
자연을 파괴하는 능력
모두 뛰어나다고.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 그 뛰어난 능력과, 빼어난 재주를 이토록 오만하게 사용한다는 것이 말이야.
그것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서 인간을 해칠 텐데, 바보같이 그걸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니 더 어리석은 거겠지.

우리는 서로를 보아야 해.
우리는 서로가 있을 곳에 있어야 해.
서로의 영역을 감히 넘보지 말아야 해. 그건 월권이야.
우리는 신이 아니니까, 서로 겸손해져야 해.
아니, 인간이 겸손해지면 충분히 안전해질 거야. 이 아름다운 지구에서......

낮은산의 책들은 언제나 기대를 갖게 하고 실망시키지 않는다.
내가 그런 책들을 읽은 건지, 출판사가 그런 책들만 만드는 건지 모르겠는데, 유난히 따뜻하고 메시지가 깊다.
그래서 정보가 없는 책이라 하더라도 낮은산 브랜드가 주는 힘으로 믿고 구입하게 된다.
아직까지 실망해본 적이 없다.

동물들이 원래 살던 곳의 모습을 표현할 때는 양쪽 지면을 모두 이용했고, 현재의 모습은 한쪽 면에만, 그것도 사각형 안의 작은 공간으로 더 축소된 모습을 보여준다. 동물 친구들의 현재 모습이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효과가 있다.
예전 모습을 질문할 때는 작은 글씨로, 그리고 지금의 상태를 답변할 때는 보다 큰 글씨로, 그리고 각자의 색깔을 담아서 표현했다.
작은 부분이지만 이런 것들도 무척 섬세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동물들이 동물답게, 인간도 인간답게, 자연은 자연답게, 지구는 지구답게...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잘 살 수 있는 공존의 세상을 꿈꿔 본다. 오래오래, 우리가 잊지 말고 지켜야 할 가치이며 약속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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