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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이야기 ㅣ 보림 창작 그림책
류재수 지음 / 보림 / 2009년 8월
평점 :
아주 까마득히 먼 옛날, 세상이 처음 생겨날 때의 일이다.
그때는 하늘과 땅이 맞붙어 있었고,
어두운 기운의 소용돌이만 세상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틈이 벌어지면서 맑고 가벼운 기운은 올라가 하늘이 되고,
탁하고 무거운 기운은 내려가 땅이 되었다.
하늘 나라의 천황닭이 꼬리를 치며 힘껏 우니
동쪽으로부터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때 하늘에는 해가 둘이나 생겨나고 달도 둘이 생겨 세상은 활짝 밝아졌다.
하늘에서 내리는 청이슬과 땅 밑에서 솟아나는 흑이슬이 한 덩어리가 되어 온갖 동물과 식물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도 많아지고 여기저기 마을을 이루며 살게 되었다.
'조선'이라고 부르는 끝없이 넓은 들에도 여러 마을이 모여 나라를 이루며 살았다.
그들은 착하고 씩씩했으며 부지런하기까지 했지마 해와 달이 두 개라는 게 문제였다.
낮에는 곡식이 말라죽도록 뜨거웠고 밤에는 땅이 꽁꽁 얼어붙도록 추웠다.
꼭 금성 같다. 금성에 가면 낮에는 더워 죽고 밤에는 추워 죽는다고 하던데, 하늘에 해와 달이 두개이던 시절의 이 나라가 꼭 그랬을 것이다.
아무튼,
조선의 사람들은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하늘을 다스리는 한울왕은 저들을 도울 자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흑룡거인이 해보겠다며 나섰으나 해는 뜨거워서 잡지 못하고, 달은 차가와서 놓치고 말았다.
평소 심술 맞았던 흑룡거인은 한울왕님께 야단만 맞았다. 고거 쌤통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조선의 사람들은 이번에는 땅을 다스리는 따님왕에게 제사를 지냈다.
따님왕은 백두거인에게 이 일을 맡겼다.
백두거인은 천근활에 천근화살로 해 하나와 달 하나를 쏘아 바다 속으로 떨어뜨렸다.
백두 거인의 손이 근사하다. '마지막 거인'에 등장하던, 온 몸에 그들의 역사가 새겨지던 거인의 문신처럼 보인다.
구름같이 표현한 바다와 파도도 근사하다. 저 위에 누으면 내 몸이 뜰 것만 같다.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시뻘건 태양!
이제 하늘에는 하나의 태양과 하나의 달만 남았다.
조선의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온 것이다.
세상은 살기 좋아졌지만 흑룡거인은 백두거인을 시기하기 시작했다.
거인 주제에 마음씀씀이는 밴댕이다!
한울왕은 아들인 한웅왕자를 내려보내 착하고 예쁜 처녀와 짝을 짓고 조선의 임금이 되도록 하였다.
하늘과 땅의 좋은 기운을 이어받은 조선 사람들은 번성하여 더욱 크고 부강한 나라를 이루게 되었다.
이 그림 무척 익숙하게 다가온다. 고구려의 고분 벽화 그림을 닮아서일 듯!
굵고 웅장한 느낌의 그림체가 고구려와도 잘 어울리고 '조선'과도 어울린다. 우리 역사니까.
조선이 잘 나가는 것을 가만 두고 볼 리 없는 흑룡거인이다.
포악한 흑룡거인이 한울왕 몰래 지상으로 내려와 이웃 나라를 충동질하여 살기 좋은 조선땅을 침략해 온 것이다.
닥치는 대로 짓밟아 부수고 사람들과 가축을 죽이는 흑룡거인!
이 숨막히는 뒷태는 진격의 거인을 연상시킨다. 오호 통재라!!!
충격과 공포에 휩싸인 조선 사람들은 따님왕에게 빌었다.
진노한 따님왕은 백두거인을 보내어 백성을 구하게 했다.
백두거인이 내려와 보니 조선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고 조선의 백성들은 이웃 나라의 노예로 살고 있었다.
이런! 백두거인이 내려오기까지 시간이 제법 걸렸나 보다.
백두거인을 보자 흑룡거인은 도술을 부려 커다란 용으로 변해 달려들었다.
백두거인은 흰호랑이로 변해 싸웠다.
도교의 사방위 신도 떠올리게 한다. 현무와 백호 말이다. 현무는 비록 용은 아니지만...
백일이나 계속된 싸움은 결국 독수리로 변신해서 도망가는 흑룡거인을 학으로 변신해서 쫓아간 백두거인의 승리로 끝났다.
땅으로 떨어진 흑룡거인은 모래가 되었고, 그곳은 넓은 사막이 되었다.
흑룡거인이 숨을 거두자 조선의 백성들도 힘을 내어 적들을 물리쳤다.
이제 조선의 백성들은 억압에서 벗어났다.
백두거인의 도움이 컸다.
언제고 조선 백성들이 위험에 처하면 다시 깨어나겠다는 말을 마치고 백두거인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의 잠이 깊을수록, 그가 깨지 않을수록 이 땅엔 좋을 것이다. 그만큼 평화롭게 지낸다는 의미일 테니까.
세월이 흐르면서 백두거인은 거대한 산으로 변해갔다.
자, 이제 눈치 채셨는가? 바로 백두산의 등장이다.
이 산을 중심으로 나라는 사방으로 넓어지고 세력은 날로 커졌다.
그리고 조선에는 백두산 노래가 전해 내려왔다.
"나는 일어나리라.
그대가 북을 치고 노래하면
그때 우리는
조선의 먼동을 다시 보리라.
나는 깨어나리라.
그대가 억눌려 신음하면
그때 우리는
조선의 먼동을 다시 보리라."
그런데 평화롭던 나라에 재앙이 닥쳐왔다. 몇 년째 비가 오지 않아 큰 흉년이 든 것이다.
땅이 갈라지고 사람들은 굶어 쓰러졌고, 새와 짐승들도 죽어갔다.
사람들은 아주 오랜만에 백두거인의 약속을 떠올렸다.
백성들은 백두산을 향해 기우제를 지냈다.
경건할 줄 알았건만, 기우제는 신나는 축제의 무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굶주리고 지친 것도 잊고 며칠이나 북을 치고 노래를 하며 흥을 돋우었다.
그리고 마침내 잠에서 깨어난 백두산, 백두거인!
세상을 뒤흔들 듯한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백두산 꼭대기를 내리쳤다.
산 꼭대기에서 시뻘건 불길이 솟아 오르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다.(화산 폭발했나보다!)
이내 먹구름이 세찬 비를 퍼붓기 시작했다.
역시 조선 백성들을 저버리지 않는, 약속 잘 지키는 백두산! 백두거인이다.
며칠을 두고 쏟아지던 비가 그치자 산 꼭대기에는 거대한 물웅덩이가 생겼다.
백두산을 맞춘 그대라면 이 물웅덩이의 정체도 알아맞힐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천지! 백두산 천지 되겠다.
이렇게 커다란 물이 곁에 있으니 농사 걱정은 덜었다.
(이 지역의 지형과 날씨는 염두에 두지 말자. 일단은!)
조선 사람들은 이후 언제나 백두산을 생각했다. 민족의 영산으로 자리잡는 순간이다.
다시 재앙이 닥쳐오면 저 백두산이 다시 깨어나리라는 믿음과 함께!
무려 도올 김용옥이 가사를 쓴 동요가 실려 있다. 게다가 작품 말미에는 동화 이해를 위한 성인강좌로 도올 선생의 '신화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다. 사진에 보이는 저런 글이 열장에 걸쳐 나온다. 하하핫....;;;; 거기에 프로이드도 나오고 융도 나오고 무의식이 어떻고 저떻고.... 나온다. 하하핫... 끝까지 못 읽겠다.ㅜ.ㅜ
책은 재밌게 읽었다(김용옥 글 빼고~). 개천절을 앞두고 뭔가 개천절에 어울리는 책을 읽고 싶었다. 이 책이 딱이지 싶었고, 잘 골랐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신화'를 좋아하긴 했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에 더 익숙한 것이 늘 민망했다. 그랬기에 주호민의 '신과 함께' 시리즈도 아주 좋아하고 재밌게 읽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조금 더 어린 친구에게 적합하겠지만, 초등 고학년 정도 되었다면 이젠 '신과 함께'를 읽혀도 좋겠다. 당장 울 세현군부터 읽으라고 책을 내밀어야겠다. 개천절 기념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