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 과학

제 1954 호/2013-09-11

솔잎이 없으면 송편이 아니다?

매년 추석이 되면 시골 할머니 집에는 두 개의 보름달과 수백 개의 반달 그리고 날카롭게 거꾸로 찢어진 초승달이 함께 뜬다. 이게 무슨 넌센스 퀴즈냐고? 아니다. 이건 100% 리얼이다! 휘영청 밝은 하늘의 보름달과 추석만 되면 더욱 동그랗게 살이 오르는 아빠의 각 없이 너부데데한 얼굴이 보름달이고, 찜통 가득 향긋한 솔잎 냄새를 폴폴 풍기며 익어가는 송편이 반달이고, 아빠를 째려보는 엄마의 쪽 찢어진 눈이 바로 거꾸로 뜬 초승달이다.

“어머니…, 송편은 그냥 맛보기로 몇 개만 만드셔도….”

“아니, 어멈아. 그게 뭔 소리여. 아범이 송편을 얼매나 좋아하는디. 송편 몇 개 먹드니 벌써 보름달마냥 뽀얗게 살이 올랐잖여. 긍께 한 삼백 개는 만들어야 하지 않겄냐.”

“그, 그럼… 솔잎이라도 깔지 말고 찌면 안 될까요? 하나씩 떼 내려면 손이 너무 많이 가서요.”

“그건 어멈이 몰라서 그려. 솔잎을 안 깔믄 그게 어디 송편이여? 걍 떡이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할머니 댁에만 오면 갑자기 간에 살이 쪄버리는 아빠는 심각한 마마보이 근성을 드러내며 엄마의 초승달 눈을 더욱 길게 찢는다.

“엄마 말이 맞아. 송편의 송이 소나무 송(松)자인 건 알지? 편은 떡을 점잖게 표현한 우리말이고. 그러니까 풀어서 말하면 소나무떡이란 얘긴데, 솔잎을 안 쓰면 그건 송편이 아니라고. 우리 엄마 진짜 똑똑하다. 앙, 엄마 좋아!”

“우쭈쭈, 우리 아범, 엄마가 좋아쪄유?”

“응, 좋았쪄요! 또, 소나무 잎에서 피톤치드(phytoncide)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여보가 알아? 피톤치드는 식물이 다른 미생물로부터 자기 몸을 방어하기 위해 발산하는 살균물질인데, 공기 중의 세균이나 곰팡이를 죽이고, 해충, 잡초 등을 막는 역할을 한다고. 뿐만 아니라 피톤치드는 사람 몸에도 완전 좋아요. 병실 바닥에 전나무 잎을 놓으면 공기 중의 세균이 1/10로 줄어든다는 연구나, 결핵균이나 대장균이 섞인 물 옆에 상수리나무의 신선한 잎을 놓으니까 몇 분 안 돼 세균들이 거의 다 죽어버렸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거든. 또 얼마 전에는 KBS의 한 방송에서 피톤치드를 많이 마시면 암세포를 죽이는 자연살해세포(NK-cell)들이 훨씬 더 활발하게 활동한다는 실험을 한 적도 있어.”

“소나무 이파리서 나오는 그 피똥싸구인가 먼가가 암도 잡는겨? 워매, 참말로 대단하구먼.”
“더구나 피톤치드는 활엽수보다 침엽수에서 훨씬 많이 나오고, 특히 소나무는 보통의 나무보다 10배 정도나 강한 피톤치드를 발산하는데, 이렇게 좋은 피톤치드를 포기하고 맹숭맹숭한 떡만 만들어 먹는다는 게 말이나 돼? 송편을 먹으면서 산림욕 효과까지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솔잎을 안 쓰는 게 말이 되냐고. 안 그래 엄마?”

“그람, 말이 안 되지. 근디 우리 아범은 워째 이리 똑똑한겨?

“엄마 닮아서 그렇지~~.”

“아이고, 귀여운 것! 그래서 옛날부텀 구더기나 바퀴 같은 벌레를 없앨라믄 소나무나 전나무 이파리를 뜯어다 그물망에 넣어놓고 그랬던 것이구먼! 나는 그게 피똥싸구 덕분일 줄은 오늘에사 첨으로 알았구먼.”

“아니 엄마~, 피똥싸구가 아니라 피․톤․치․드! 암튼, 그래서 소나무 옆에서는 퇴비도 안 만들잖아. 세균이 근처에 오지를 못하니까 퇴비가 잘 썩지 않아서 그랬던 거더라고.”

“그랬던겨어? 아들이 과학자니께 별거를 다 배우는구먼!”

“송편에 들어가는 녹두, 밤, 깨 같은 고물은 대부분 상하기 쉬운 음식재료잖아. 그런데 송편은 추석기간 내내 두고 먹어야 하는 음식인데다, 추석 날씨는 알다시피 꽤 덥단 말야. 그래서 똑똑한 우리 조상님들이 찜통에 솔잎을 깔았던 거야. 피톤치드가 세균을 막아줘서 송편이 잘 상하지 않거든. 어때, 여보야. 이제 송편 찔때 꼭 솔잎을 깔아야 하는 이유를 알았어?”

“근데 삼백 개씩이나 만들 솔잎을 어디서 따온담…. 당신이 뒷산 가서 따다 줘요.”

“알았어, 내가 따올게! 괜히 아무 솔잎이나 쓴다고 다 좋은 건 아니거든. 지난해 9월, 남부지방산림청이 2년간 산림병해충 방제를 위해 영남지역 2800헥타르(ha)의 소나무에 포스파미돈, 아바멕틴 등의 고독성 농약을 주사했다고 밝혔던 거 기억나? 솔잎혹파리와 솔껍질깍지벌레 등을 없애기 위해 사용한 건데, 농약의 독성이 워낙 강하다 보니 솔잎에 농약성분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거든. 농약을 처리한 지역은 위험성을 알리는 경고판이 세워져 있고, 또 약제를 주사한 소나무는 지면에서 높이 50cm 이내에 주사 구멍이 뚫려 있기 때문에 이런 솔잎은 피해서 따야 한다는 말씀~.”

“그런데 어머니, 송편을 많이 만들었다가 남는 것을 냉장고에 넣어두면, 나중에 먹지도 못하고 버릴 수도 있어요. 냉장고에 넣으면 딱딱해져서 못 먹겠더라고요.”

“어멈아, 그게 뭔 소리여. 떡이나 밥은 절대 냉장고에 넣어두면 안되는구먼! 차라리 냉동실에 넣어야 혀!

“맞아 맞아, 울 엄마 말이 맞다구! 떡이 ‘노화’된단 말이야. 떡이나 밥의 주성분인 녹말은 물에 끓이거나 쪘을 때 쫀득쫀득 점도가 높아지고 색이 반투명하게 변하면서 소화하기 쉬운 상태가 되는데 이걸 ‘호화’라고 해요. 쌀은 딱딱한데 밥은 말랑말랑 맛있는 게 바로 호화현상 때문이지. 그런데, 이렇게 호화된 녹말이 온도가 낮은 곳에서 수분을 빼앗기면 원래의 딱딱한 상태로 되돌아가거든. 이걸 ‘노화’라고 하는데, 노화현상이 가장 잘 일어나는 온도가 딱 냉장실 온도(0~5℃)란 말야. 그러니까 떡이나 밥을 냉장고에 넣는 건 노화돼라, 노화돼라, 노래를 하는 거랑 같은 거야. 그러니까 차라리 냉동실에 보관해뒀다 녹여 먹는 게 좋아요. 노화단계를 거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랑말랑 맛있어 지거든.”

“아이고 내 새끼, 엄마가 송편 삼백 개가 아니라 사백 개 만들어 줄 테니께 걱정일랑 붙들어 매, 알았징? 냉동실에 꽉꽉 쟁여놓고 먹어라, 내 새끼~~.”

“응응응!!”

명절 때마다 아빠는 바보가 되는 게 틀림없다. 할머니 치마폭에 머리를 파묻은 채 머리를 쓰다듬어 달라고 어리광을 부르는 저 행태 뒤에, 어떤 엄마의 보복이 뒤따르는지 너무나 잘 알 텐데도 언제나 저 버릇을 고치지 못하신다. 드디어 엄마의 눈에서 거꾸로 뜬 초승달마저 사라져버리고 이글이글 거친 불길이 타오른다. 이제 아빠는 끝장난 거다!

“어머님이랑 여보가 그리 좋다고 하시니까 송편 삼백 개 만들어 볼게요. 솔잎 듬뿍 깔고 푹푹 쪄볼게요. 느낌 아니까…. 아! 그런데 태연이 외가에 갈 때는 아범한테 된장, 고추장 담으라고 하고 집안 대청소까지 시켜도 되죠? 아, 그리고 추석 끝난 다음에 아범한테 명품가방 두 개 사놓으라고 윽박질러도 되죠?”

글 : 김희정 과학칼럼니스트

 

출처 : 과학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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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3 06: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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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3 13: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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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4 0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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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14 2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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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13-09-1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깨 든 송편을 무척 좋아합니다.^^
추석때 실컷 먹어야겠어요.ㅎㅎ

마노아 2013-09-13 13:07   좋아요 0 | URL
저두요~ 깨송편 맛있고 밤을 넣은 송편도 좋아해요.
근데 깨송편이 칼로리가 후덜덜 하다고 하네요. 자제해야겠어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