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자유롭게 뻥! - 황선미 인권 동화, 중학년 베틀북 오름책방 6
황선미 지음, 정진희 그림 / 베틀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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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는 엄마에게 불만이 많다. 엄마는 경주의 하루 스케줄을 꼼꼼히 체크하고, 필요한 영양소도 빠짐없이 챙기는, 아주 적극적인 엄마이지만 동시에 지나치게 극성맞은 엄마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극성맞은 엄마는 요즘 드물지 않다. 


내 책상 서랍, 내 지갑, 내 일기장, 내 메일, 내 컴퓨터 검색창 같은 것 좀 마음대로 뒤지지 말라고 나는 대들지 않는다. 다른 엄마들처럼 엄마도 직장에 다니면 좋겠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어떤 잔소리가 쏟아질지 뻔히 아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이란 고작해야 음식 깨작거리기, 뭉그적거리기, 말 안 하기, 멍하니 있기 정도. 덕분에 엄마는 나를 좀 게으르고, 느리고, 입이 짧고, 숫기가 없는 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착하다고-18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좀 놀랐다. 큰 조카도 밥 먹을 때 지나치게 오래 걸려서 늘 혼나기 일쑤고, 숙제 하는데 백만 년은 걸리고 언니는 그때마다 잔소리 폭격을 가하는데, 이 책속의 모자 관계와 아주 흡사하지 않은가. 어쩌면 나의 조카도 나름의 반항으로 음식 깨작거리고 뭉그적거리고 멍하니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고민해 볼 문제다. 여하튼! 


경주는 현재 비밀이 있다. 경주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어준 축구공을 자신의 힘으로 장만하는 게 경주의 숨겨진 목표다! 


"베컴 될 거 아니잖아. 메시나 박지성처럼 될 자신 없으면 아예 다른 걸 노려야지." -29쪽


경주가 컴퓨터에서 '축구'라는 검색어를 넣었다는 걸 알아차린 엄마의 반응이다. 물론, 모두가 축구 좋아한다고 베컴이 되고 박지성이나 메시가 되는 건 아니지만, 베컴이나 박지성, 그리고 메시처럼 잘하지 못하면 축구 좋아하지 말란 법 없지 않은가.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는 것도 뭐든지 '서열'을 메긴다. 그 분야에서 탑이 될 자질이 보이지 않는다면 애당초 눈도 돌리지 않겠다는 심산! '아깝다 학원비' 관련 강의를 들었을 때 학부모들에게 주의를 주는 것 중에 이런 게 있다. 아이가 100점 맞았다며 신이 나서 달려왔을 때, "너희 반에 100점 몇 명이나 받았니?"라고 묻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힘들다고... 사람이니까 당연히 궁금할 것 같다. 그래도 일단은 축하해주고 잘 했다고 격려도 해주는 게 먼저 아닌가. 100점 너 말고 또 누구 있어?라는 질문, 우리 집에서도 숱하게 듣고 있다. 하하하...;;;;


엄마하고의 대화가 늘 저렇게 흘러가니 경주가 엄마에게 비밀을 갖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더군다나 요즘 사춘기는 한참 빨라져서 열살 경주는 셔틀 버스 타는 데까지 꼬박꼬박 나와 계신 엄마에게 창 너머로 손 흔드는 게 부끄러워질 나이가 되어버렸다. 엄마 눈에는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그래서 엄마가 시키는 대로 따라와주는 '착한' 아이로만 보인다. 그리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아이가 아주 잘 클 거라고 신념을 갖고 있다. 갈등은 예정된 순서다. 


(당근 주스와 도시락. 도시락을 쌀 때도 영양소와 깔맞춤까지 고려하는 엄마의 솜씨! 그러나 아이는 그런 엄마가 숨막힌다.)


경주가 피날레 런던 매치볼에 올인하게 된 건 우연한 계기였다. 시험지를 제일 먼저 내고 나왔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엄마와 만나기도 싫었다. 그렇게 운동장을 가로지를 때에 홀로 드리블을 하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우리 학교를 졸업한 국가대표 축구 선수 장문호였다. 장문호 선수가 차 보라며 건넨 공을 뻥뻥! 차면서 운동장을 힘껏 달렸다. 많이 뛰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가슴이 벅차서 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오랜만에 뜨겁게 뛰는 심장을 느끼며 아이는 환호했다. 그 기쁨을 안겨준 축구공을 제 힘으로 사려고 돈을 모았는데 그 과정이 녹록치 않았다. 



아디다스에서 나온 피날레 런던 매치볼이다. 축구공에 대해서 아는 바 없지만, 이 공은 무척 예쁘게 생겼구나! 실제로도 이 공은 일반 축구공보다 더 비싸다고 했다. 13만원이 좀 넘는 금액! 경주가 용돈을 모으고 자신의 저금통에서 다시 돈을 빼내고, 그걸 들키고,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을 잃어버리는 일련의 과정들이 숨가쁘게 흘러간다. 경주가 검색해서 알아낸 것처럼 파키스탄에서 이 공을 만들기 위해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아동 노동자들과 단순 비교한다면 엄마 아빠의 그늘 아래서 공부만 하는 경주의 삶은 비교체험 극과 극에서 우위를 점한다. 엄마의 장담대로 엄마가 하라는 대로만 쫓아가면 제법 순탄한 인생을 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평범한 들판도 사막이 되고 만다. 경주가 바라는 인생은 그런 게 아니다. 열살 아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게 있고, 갖고 싶은 꿈이 있고, 해내고 싶은 목표가 있다. 아이는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시간을 갖고 제대로 설명하려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고, 엄마는 아이가 본인의 소유물이 아님을 인정하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우할 자세를 갖춰야 한다. 어려운 일임을 알지만 그래야 서로를 향해 세운 날이 흉기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자, 이번엔 저 멀리 남쪽 파키스탄으로 가보자. 경주가 검색으로 알아냈던,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서 작은 손을 상처로 덮은 채 고된 노동을 감당해내는 9살의 가장 라힘에게로.


라힘의 아버지는 집을 나가셨다. 돈을 벌러 가신건지, 가난한 집의 가장으로 있기 힘들어서 집을 나간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는 동안 라힘은 아홉살 어린 나이로 가장의 책임을 지고 있다. 축구공을 바느질 하던 엄마는 눈이 멀어서 공장에서 일할 수 없게 되었고, 여섯 살 어린 여동생은 또래보다 작고 마른 몸을 해가지고 식구들이 먹을 물을 먼 곳에서 길어온다. 그리고 라힘은 공장에서 축구공을 만든지 삼년이 되었다. 오각형과 육각형의 조각 서른 두 조각을 꿰매는 데에 1620회 이상의 바느질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루 열두 시간씩 일해서 축구공 세 개를 만들고 라힘이 받는 돈은 우리 돈으로 약 오백 원. 그 돈으로 쌀 한 줌을 사서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여동생과 밥을 먹어야 한다. 고작 아홉 살인 라힘이 짊어진 세상의 무게다. 


"어리구나. 넌 공부해야 할 어린애야."
라힘은 바느질하며 생각했어요. 일 대신 공부를 하면 누가 돈을 벌까요.
"공부해야 삶이 바뀐단다."
지금 일하지 않으면 가족이 굶어 죽을 거예요.
"너에게도 보호받고 공부하고 놀 권리가 있단다."
권리.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논다는 말은 알아들었어요.
일거리가 줄어들면 형들이랑 가끔 놀기도 합니다. 바느질이 잘못돼서 망친 공을 차지요. 그나마도 너덜너덜해졌지만 어린 일꾼들에게 그건 아이처럼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하지만 시간을 그렇게만 보내면 누가 가족의 끼니를 책임질까요. -115쪽





인권 운동가들이 다녀가면서 라힘의 일자리가 위협을 받았다. 하루에 여덟 시간만 일을 하게 되었고, 주말에는 일을 주지 않는다 했다. 적어도 열다섯이 되기까지는. 그러나 라힘은 지금 아홉살이다. 자신처럼 여섯 살이 된 여동생 말리까가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서 공장에 왔지만, 인권운동가들 눈치를 본 공장주인은 말리까를 받아주지 않았다. 말리까는 그들 운동가들이 세운 학교에 가고 싶어했다. 무상교육을 제공하는 그 학교에 당장 달려가고 싶지만 내일을 위해 필요한 공부와 달리, 이들은 당장 '오늘' 밥을 먹어야 한다. 라힘은 엄마처럼 눈이 어두워지고 있다. 아직 10년도 살지 않은 인생 총량에서 아이는 고된 노동으로 육신의 병을 얻고 있다. 이런 현실이 비단 소설 속의 부풀린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저렇게 힘들게 만든 축구공을 맘껏 뻥뻥 차면서 놀지 못하는 저 어린이, 고사리 손으로 카카오를 재배하지만 평생 먹어보지 못한 초콜릿! 마음껏 뛰놀며 꿈을 품을 나이에 노동으로 찌들고 병든 몸으로 세상의 폭력에 노출된 이 가엾은 아이들... 영화 '설국열차'에서 단종된 부품을 대체하기 위해서 납치된 어린 아이가 떠오른다. 그런 희생 위에서만 달릴 수 있는 기차라면, 그런 희생을 눈감으면서 성장하는 경제라면... 이 세계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것이 옳을까?



두 개의 이야기를 데칼코마니처럼 엮어 놓았다. 서로 상반된 입장의 아이들이지만 모두가 자유가 구속된 아이들이다. 더불어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 첫번째 이야기보다 아무래도 두번째 이야기 쪽으로 마음이 쏠린다. 라힘은 말리까가 학교에 가서 글을 배우기를 원한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편지를 쓸 수 있기를... 자신의 눈이 멀기 전에 말이다. 이 아이들에게는 학교도 필요하지만 당장 매일매일의 식량을 제공해 줄 작은 텃밭이 절실하다. 감자와 토마토를 키울 수 있는 땅. 정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되묻게 되는 시점이다. 또 어른은 이런 아이들 앞에서 얼마나 작아져야 하는지...... 



약 한달 전 진로 탐색 시간에 아이들은 내 인생의 버킷 리스트 10개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의 리스트 중 빠짐 없이 들어 있는 내용이 성적문제였다. 전교1등을 해보고 싶다와 전교 100등 안에 들고 싶다가 비등하게 나왔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에 꼭 끼는 것이 성적 올리는 것이라니... 이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떠한지 한눈에 보였다. 건강한 아이가 자라서 건강한 사회를 만들 것인데, 지금 우리는 어떤 미래를 구축하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살고 싶은 미래,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미래, 우리가 갖고 싶은 그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 우리의 아이들은 더 신나게! 더 자유롭게 놀아야 한다. 그렇게 날개짓 해야 한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어른들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지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역시 황선미 작가님 답다. 이번에도 뭉클뭉클 울먹울먹 꿀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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