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게 자유롭게 뻥! - 황선미 인권 동화, 중학년 베틀북 오름책방 6
황선미 지음, 정진희 그림 / 베틀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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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서랍, 내 지갑, 내 일기장, 내 메일, 내 컴퓨터 검색창 같은 것 좀 마음대로 뒤지지 말라고 나는 대들지 않는다. 다른 엄마들처럼 엄마도 직장에 다니면 좋겠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어떤 잔소리가 쏟아질지 뻔히 아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이란 고작해야 음식 깨작거리기, 뭉그적거리기, 말 안 하기, 멍하니 있기 정도. 덕분에 엄마는 나를 좀 게으르고, 느리고, 입이 짧고, 숫기가 없는 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착하다고.-18쪽

"너 요즘 수상해. 그깟 축구공 같은 것에나 정신 뺏기고 말야."
잔소리를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이번만큼은 가슴이 쿡 찔린 것처럼 아프다. 제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지. 엄마를 미워하기는 싫은데.-28쪽

그때까지 나는 잘 몰랐다. 내 심장이 어떤 건지. 터질 듯 벌렁거리고 아프기도 한 심장이 나한테도 있었던 것이다. 진짜 살아 있는 내 심장. 바보처럼 그걸 처음 깨달은 날이었다. 내가 나라는 걸 알게 해 준 짧은 시간. 심장은 누구한테나 있는 거지만 진짜 내 심장은 그날 다시 태어났다. 그게 그 축구공을 내가 가져야만 하는 이유다.-36쪽

내 통장은 제법 묵직하다. 저금통이 다 차거나 돈이 생길 때마다 은행에 저금했으니까. 그러나 손도 못 대는 돈. 대학 입학금으로 써야 된다나. 엄마는 늘 그랬다. 미래를 위해 오늘은 다 참아야 된다고. 놀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친구도, 졸린 것도 다. 나에게는 미래만 있고, 오늘은 없는 것이다.-37쪽

"필요한 건 엄마가 알아서 다 사 주잖아."
아, 이제 알았다. 나는 바로 이게 싫었다. 나한테 필요한 걸 왜 엄마가 알아서 사 주느냔 말이다. 갓난애도 아닌데. 뭘 고르고 선택할 권리 정도는 내게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47쪽

"어리구나. 넌 공부해야 할 어린애야."
라힘은 바느질하며 생각했어요. 일 대신 공부를 하면 누가 돈을 벌까요.
"공부해야 삶이 바뀐단다."
지금 일하지 않으면 가족이 굶어 죽을 거예요.
"너에게도 보호받고 공부하고 놀 권리가 있단다."
권리.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논다는 말은 알아들었어요.
일거리가 줄어들면 형들이랑 가끔 놀기도 합니다. 바느질이 잘못돼서 망친 공을 차지요. 그나마도 너덜너덜해졌지만 어린 일꾼들에게 그건 아이처럼 뛰어놀 수 있는 시간을 줍니다. 하지만 시간을 그렇게만 보내면 누가 가족의 끼니를 책임질까요.-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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